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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Apr 04. 2020

혹시 사람 뽑으세요?

커리어 체인지 5. 나는 어떻게 인턴부터 시작하게 되었나

    "내가 미대라서 떨어지는 거 아닐까?"

    "나이가 많아서 그런거 아닐까?"

    "어학성적도, 대외활동도, 수상기록도 없어서 떨어지는 거 아닐까?"


이력서를 넣어도 계속 연락이 없을 때 처음엔 의기소침 했다. 시간이 갈 수록 자신감은 떨어지고, 이대로 망하는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당시 재정상태나 여러모로 당장 일을 시작해야 했다. 너무 늦은건 아닐까 진짜 늦게 되진 않을지 초조해졌다. 우울해하고 있다가 이 상태로 서른살이 되면 정말 어느 회사에서도 받아 주지 않을 것 같다는 위기감까지 들어 자다가도 벌떡 깨서 채용공고를 스크롤하는 날이 이어졌다.


지금 포기를 하고 다시 미술 프리랜서일을 하거나, 될 때까지 밀어붙이거나 두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1) 계속 공식 채널로 리서치하고,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최적화)

    2) 인맥을 활용한다. (세일즈)

1번이 계속해서 안되니, 없는 인맥이라도 2번으로 갔어야 했다. 인맥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


미대를 나와서 실상 나를 도와 줄 수 있는 업계 선배나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없었기에 직장인 커뮤니티를 찾았다. 탈잉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몇가지 추려볼 수 있었다. 동호회나 커뮤니티를 가입하는 건 난이도가 높아보였고, 당장 취준으로 일정 변동도 잦고 자신감이 땅바닥에 있는 상태에서 1:多로 사람을 만나는건 부담 스러웠다. 그래서 1:1 멘토링을 신청했다. 내가 직접 영업을 뛰기 전에 나는 시장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어떤 태그가 붙을 지 사전에 고정관념을 겪어보고 (미대 출신), 전략을 생각해보고 싶었다.(n년차 다른 업계 경력)


나에겐 사무실이 좋아야 한다는 이상한 조건이 있었다. ㅎㅎ


1. 탈잉 마케팅 직무 컨설팅

탈잉에서 1:1로 디지털 마케팅 컨설팅을 하는 분과 4주 동안 만나서 마케팅 부서에서 어떤 일을 다루게 되는지, 경력개발은 어떻게 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과연 내가 마케팅에서 요구하는 스킬과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해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JD에 나와있는 직무영역은 추상적이라 긴가민가 했다. 경영학 또는 MBA등 학력과 인맥, 남성의 비중, 대기업 인턴 및 유학파 선호등 사업개발 영역은 미대 졸업에 관련 분야 경력없이 신입으로 지원하기엔 리스크가 크다는 판단도 이때 섰다. 마케팅 직군이 회사에서 실제로 매일 어떤일을 하고, 어떤 자료를 보고, 어떤 보고를 올리고, 회의에선 무엇을 논의하는지 상세하게 질문하고 눈으로 업무 내용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최종 결정을 마케팅 직군으로 했다.


마케팅에서 세부 영역으로 나뉘는 업무 분야 중 어디를 강점으로 가져 갈지 고민하다가, 가장 인기가 많은 퍼포먼스 마케터 쪽으로 수업을 보강 했지만 대부분 퍼포먼스 마케터가 가는 커머스 & 리테일 영역은 확실한 성적표를 원했다. 몇 %, X배 매출 증가 등 성과를 원했지 지금 당장 내가 배우고 할 수 있는 도구사용, 시장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지 않았다. 콘텐츠, 커뮤니티, 이벤트 등 제너럴리스트로서 Capa를 보여 줄 수 있는 지원자로 포지셔닝 하기 위해서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마케팅 튜터들을 많이 만난게 도움이 되었다.


2. 원티드 이벤트

이즈음 스타트업 업계로 방향을 굳혔기 때문에 스타트업 채용공고가 올라오는 원티드에 매일 방문하고 있었다. 이력서 코칭과 1:1 멘토링을 해주는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어느 직군에 신청해야할지 몰라 구글캠퍼스 BD 담당하시는 분에게 이력서를 보여드렸다. 사진에 가슴골이 들어나는 쇼핑몰 시절 프로필을 넣어놔서 지적을 받았다. 그리고 미술 경력과 다른 분야로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술경력을 강조하는 것 보다 지원하는 사업분야에 맞게 간소화 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당시 나는 연대기 순으로 된 이력서에선 탈피 되어 있었지만, 타업종에서 보기엔 지나치게 정보량이 많긴 했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소속되서 일했던 조직 경험을 나누어 직무경험을 쓰고 레퍼런스로 <부산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등 여러 프로젝트를 나열하는 식으로 작성했었다.  


원티드 멘토링을 갔을 땐 이미 여러 수업을 듣고, 포트폴리오 형태로 가져갈 수 있는 레퍼런스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차원에서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블록체인 회사에서 '영어를 잘하고, 마케팅을 할 수 있는, 20대 여자' 지원자들이 몰리고 있다는 정보를 얻기도 했고 결국 취직으로 이어졌다. 이때 하이퍼커넥트에서 대거 나와 있었는데, 해외사업 총괄 PM인 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에서 글로벌한 서비스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로 서비스 비즈니스 하는 스타트업에서 영어를 잘하고, 여러 나라에서 일하고 영업하며 사업화 시킨 경험이 있는 걸 좋게 본다는 포인트도 얻어냈다.  


"영어, 글로벌 경험"

"미술, 크리에이티브 분야 전문성 - 콘텐츠 제작"

"전시, 세미나, 파티, 이벤트 주최 및 진행 가능"


이 세가지가 나의 무기 였다.



서류는 계속 떨어지니까, 인사팀 담당자나 회사에서 정한 연차 기준에 부합하지 않거나 학교, 나이 등 부차적인 문제로 내가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지도 않고 떨어트린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지원자격에 N년차 이상의 경력을 조건으로 포함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직마다 판단하는 기준이 확실히 다르다. 나에겐 조건에 부합하는 연차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실력이 있는지 검증해보고 싶어하는 회사가 필요했는데 잡플래닛 같이 전산으로 처리되는 시스템에선 '미대' 부터 불리했다. 아예 학교 이름이나 학과 이름이 검색이 안돼서 '기타'로 등록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2018년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철학과 커뮤니티에서 쏟아지는 글을 열심히 따라가면서 국내에서 가장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회사를 알게 되었다. 공채가 진행중이었지만 비개발자 직군은 없었다. 마침 내가 페이스북에서 공고를 봤던 주말에 콘퍼런스에 후원사로 참여, 발표가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우선 참여신청을 하고, 회사가 어떤 곳인지 더 알아볼 요량으로 - 혹시 다른 괜찮은 회사가 있는지도 보고 - 콘퍼런스에 갔는데 발표를 듣고 반해버렸다. 인간이 기술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고 우리 삶을 조직하고 있는지 관심이 많다. 그날 발표에선 경제 시스템과 국가 경계, 네트워크와 웹의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블록체인 거버넌스와 탈중앙화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였고,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발표를 듣는 내내 마음이 초조해졌다. 나는 여기서 뭘하고있지? 빨리 동참해서 이뤄내고 싶다라는 대책없는 열기도 느껴졌다. 유럽과 아시아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프로젝트, DMZ 경계를 다시 상상해보는 프로젝트 등 다양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스케일과 비전을 가진 프로젝트였고, 블록체인 산업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날 발표가 끝나고 나서 인사를 드리고 물어 봤다. "혹시 사람 뽑으세요?"


명함은 받아왔고, 이력서도 보냈는데 또 연락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이메일이 스팸으로 갔을 수도 있으니 다시 이메일을 보냈고, 사업 운영 총괄 이사님과 면접을 볼 수 있었다. 그 분도 증권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도 다른 분야에서 블록체인 업계에 온 사람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블록체인 자체가 신기술이고, 새로 생겨난 시장이니까. 정글짐 같은 커리어를 가진 나에게 면접 기회를 주신 건 콘퍼런스에 가서 발표를 듣고 리좀으로 30분 수다를 떨면서, 애정과 열정을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8월 내 생일날,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수습으로 취직을 했다.

스물 아홉. 인턴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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