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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Mar 27. 2020

미대생이여,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커리어 체인지 4. 새로 배워야할 기술을 선택하기 


어떤 기술을 새로 배우겠다고 한 결심에 대해서 밝혀 둘 말이 있다. 


이미 살아온 29년의 인생의 무게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능력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문과생이라서, 예체능생이라서 틀렸다고 생각하고 새로 학부 편입을 준비한다거나, 또 다른 종류의 시험을 준비하는 길은 선택하지 않았다. 어떤 틀에 나를 끼워 맞춘다고 정말 다른 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2018년 당시 단순히 취준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직업이나 내가 하고 싶은일,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했었다. 동시에 어디든, 뭐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돌아다녔다. 


'미술계를 떠나서 새사람이 되겠어요' 라고 외치고 다니지도 않았고, 미술일을 하던 내가 미술계에만 함몰되고 저평가를 받는 것 같아 새로운 시장에 나를 위치시켜보겠다는 생각이었다. 무작정 갱생 프로젝트로 들어가거나, 스케이팅을 새로 배워서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되겠다는 식의 절치부심이라기 보단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생각한다. 


계속 그 다음일, 다음 프로젝트, 다음 도시로 날라다니면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미술계의 파도에 휩싸였다. 내가 결정하는 것 보다 나에게 일을 부탁하는 클라이언트, 아티스트, 갤러리, 미술관의 결정이 내가 두 달뒤에 어느 나라에 있게 될지 결정했다. 내 삶에 통제권도 없었고, 허덕이고 있었고, 나만의 물결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 3년이라는 나름대로 정한 시간은, 그리고 3달이라는 취준 기간은 앞으로 더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 만든 바다속의 공기방울 같은 내가 숨 쉴수 있는 공간이었다. 


내가 모델이었던 조각상. 투탕카멘의 머리를 들고 있다. 


진정 사람이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그 시장과 업계에서, 이전에 했던 것 만큼 존중을 받고 동료들과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일을 하기 위해 새로 배워야한 다는 기술엔 뭐가 있을까? 


미대생들이야 말로 잘 알지 않을까? 

취미 미술 학원을 다녀서 기본적인 데셍과 회화는 배울 수 있어도, 작가가 되는 것과는 다르다는 걸. 

내가 배우기로 결정 한 것들은 앞으로 10년은 먹고 살 분야를 탐색해보고, 내가 하면 할 수록 실력이 늘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이 뭔지 정의 해보고 싶었다. 


크게 두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일하면서 계속 배워 갈 수 있도록 기본을 갖출 것 (툴 사용, 업계 용어, 케이스 스터디 등)

2. 3년간 완전히 다른 일을 시도할 기회를 나에게 주겠다는, 첫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 것 

 

어떤 스킬을 배워서 새로운 업계에, 새로운 직군으로 '진입'하겠다라는 마음을 먹으니, 기준과 목표가 나의 바깥에 있지 않았다. 전적으로 내가 어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뇌를 쓰고 노동을 하느냐는 스스로 어떻게 조율하느냐의 문제니까. 그러니 공포때문에 이것 저것 닥치는 데로 들을 것 같았던 초반과 달리, 실제 준비하는 과정에선 개인의 내적인 훈련으로 받아드렸던 것 같다. 


1. 무슨 수업을 들을 지 카테고리 설정 


수많은 수업이 있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5월 부터 8월까지 3개월간을 준비 기간으로 잡았다. 

첫번째 달은 잡서치 & 업무 역량을 파악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를 데일리 수업으로 들으며 많은 사람을 만나는 시간으로 잡았고. 

두번째 달은 숙달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기술과 마케팅을 집중적으로 들었다. 

세번째 달은 포트폴리오로 넣을 만한 자료들을 만들 수 있는 4주~8주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 자료를 보고 여러가지를 시도해보며, 동시에 1:1 면접이나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받으러 다녔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거칠게 마케팅부 vs 사업부로 나눠서 리스팅을 해보았다. 


마케팅 직무로 간다면 

- 구글 아날리틱스 

- 콘텐츠 마케팅 

-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마케팅 

- 마케팅 직무 (인하우스/에이전시) 컨설팅 


사업 분야로 간다면 

- 마켓 리서치

- 액셀 

- 사업 분야별 트렌드 & 네트워킹에 대한 정보 

- 인턴쉽 정보 등 커리어 패스 & 인력 pool이 보통 어떤지 파악

- 영업/운영/지원/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어디가 잘 맞는지 분석 


면접 대비를 위한 준비 

- 자기소개서 

- 면접 

- 인상 & 메이크업 

- 퍼스널 브랜딩 수업 


뭐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조직생활을 오래 한 적도 없고, 소규모 사업장에만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을 end-to-end로 맡아서 진행을 많이 했지만, 뾰족한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어필 할 부분을 만들어야 했다. 업무용 툴이나, 요즘 회사에서 기대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것들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파이팅 넘치게 매일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장소, 새로운 커뮤니티에 다니면서 미술계에만 국한되어 있던 나의 인맥과 경험을 재평가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일을 해봤고, 멋진 일 부터 구린 일, 이상한 일까지 안 해본게 없는데 그냥 해보면 어때. 한두번 실패한다고 미술계에서 내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빚도 2000만원이니까 몇년 일하면 값을 수 있는 돈이야. 

내가 초라하고, 아는게 없는 천둥벌거숭이같이 느껴질 때, 지방 소도시에서 서울 처음 올라왔던 스무살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마다 되뇌였다. 


다행이, 겉으로는 (적어도 겉으로라도) 워낙 해외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업무 미팅을 주로 다녔던 나의 행색이나 나이가 경험없는 취준생 같아 보이진 않았다. 수업을 통해, 여러 모임을 통해서 회사원들을 많이 만났다.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직장인들은 안일하게 회사를 다니는, 영혼 없는 사람들이라고 치부 했던 지난날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모두가 분야별로 전문성을 쌓아가면서 치열하게 일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모두들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도 가난하기도 매한가지 였다. 그 정도의 차이와 미래의 가능성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포토샵을 배우면서, 툴이나 기술은 유튜브를 통해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포트폴리오나 일하는 것도 벤치마킹을 통해서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고급 정보, 어느 회사가 어떻게 일하고 거기선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는 내부 사람만 가지고 있다는 진리도 깨닫았다. 


엑셀을 배우면서, 정보를 구조화하고 협업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고, 커뮤니케이션 하고, 사업의 목표와 방향에 맞게 꾸준히 다듬어 나가는 일이라는 점에서 내가 했던 업무와의 접점을 찾아냈다. 비록 아는 함수 하나 없이 시작했지만, 깔끔한 서식을 본적도 없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자료가 중요하고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해는 현장경험이 없었으면 몰랐을 일이었다. 



그래도 연락 오는 곳은 없었다. 로켓펀치, 페이스북, 잡플래닛을 돌아다니면서 이력서를 넣었고, 콜드 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했는 데. 정말 한.군.데.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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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면접기회를 찾았는지 5편에서 계속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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