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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Apr 24. 2020

이직을 생각하게 되는 시점

커리어 체인지 7. 전문성과 소울서칭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직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미술일


이직이란 개념이 내게는 새로웠다. 퇴사도 마찬가지다.

미술은 프로젝트 단위로 다양한 팀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 짓고, 그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갔기 때문에 다니는 회사를 '관두는' 경험이 없었다. 또는, 커리어라는 관점 자체가 없었다고도 볼 수 있다. 어떤 프로젝트를 하면 자연스럽게 그다음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몇 년 전에 일했던 분들과 인연이 이어져서 새로운 일을 맡기도 하고, 특별히 일을 구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꾸준히 일을 했다.


다른 일을 고를 땐 미술계 노동 조건이 거의 동일하다 시피해서 (물론 무급이나 돈을 내고 해야 하는 인턴쉽 같은 악질도 있지만), 전시나 작품 계획이 충분히 흥미로운지만을 따졌던 것 같다. 웬만하면 해외로 직접 출장 가거나 여행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프로젝트만 골라서 살다 보니 4대 보험을 받으며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4년 넘게 일을 지속한 것도, 큰 사고 없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조차 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출 나게 능력이 있어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기 보단, 정말 하다 보니 뉴욕까지 가 있었던 셈이다.


정신 놓고 있으면 회사의 노예가 되어 있던 첫 직장


이것은 꿈인가.. 생시인가..


다양한 일은 해봤지만 조직에서 정해진 직무의 업무를 보는 건 처음이라 설레었다. 직장인이라면 왠지 하얀 셔츠를 입어야 할 것 같아 유니클로에서 하얀 셔츠와 청바지를 구입했다. 스타트업이니 운동화를 신으면 될 것 같아 따로 정장구두를 신진 않았다. 처음 회사에 갔는데, 인사팀의 간단한 신입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동기도 있었다. 노트북에 보안 프로그램도 설치했어야 했고, 팀장 대리로 있던 매니저님을 따라 이런저런 팀에 인사를 드리러 다녔다.


"안녕하세요, 오늘 입사한 인턴 김혜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설렘은 얼마나 오래갔을까? 지금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 조직과 동료에게 신뢰를 얻고 싶은 마음은 끊임없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출근길, 퇴근길, 점심 먹고 나서 수다 떠는 와중에도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과연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뭘 하면 이 상황이 더 나아질까?


이런 고민들은 항상 긍정적이거나 생산적이진 않다. 때로는 좀먹는 생각이 되고, 사람, 조직, 상황에 대해서 비관적인 사고로 빠진다. 고민을 해결하고자 다닌 직장인 자기 계발과 네트워킹, 책 읽기를 맹렬하게 해 봤다. 그럼에도 내가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할 엄두도 나지 않는 문제들은 쌓여만 갔고, 그만큼 저녁에 야식에 술을 마시거나 불평, 불만은 늘어만 갔다.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그 문제가 바뀌리라는 기대도 없으니 이런 고민들은 비생산적이었다.


다만, 회사 일의 특성상 성심성의껏 모든 일에 임하고,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붓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초기 회사일 수록 사업 모델이나 조직의 변화가 많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했다. 그리고 변해나가는 방향이 점점 불투명해지자 괴로웠다. 이 회사는 계속해서 나에게 다른 걸 요구할 거고, 그 변화에 맞추려 그리고 회사 내부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 버둥거리다 보면 내 세계는 점점 작아지리라 생각하니 초조해지기 까지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팀과 매주 하는 콘퍼런스 콜을 끝내고 나니 힘이 쭉 빠졌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주말 동안 고심해서 준비한 회의인데 별 성과 없이 지나갔다. 무력감이 이래서 무섭다.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면 애당초 열심히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변해가는, 좀비가 되어 가는 내가 무서웠다.


프로젝트 100개 해보셨나요?


버티지 말고, 움직이자


회사 일에 오너쉽을 가지고 영혼을 갈아 넣으면 누구나 성장하고 성과를 낼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공식은 신화일 뿐이다. 이제 주니어뿐만 아니라, 심지어 경영진을 포함한 모든 현대인은 회사가 한 개인의 삶과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걸 안다. 또한, 커리어의 정의도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기업도 없어지고 새로 생기는 지금, 특정 회사에서 했던 직무는 조직과 사업영역, 시장과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므로 특정 회사의 브랜드나 연차가 쌓인다 해서 자연스럽게 '업력'을 보증해주는 경력은 생기지 않는다.   


첫 이직을 생각하게 된 시점은 회사에서 내가 하는 역할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틀 때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할 육체적, 정신적 여유가 여러모로 소모되는 사건들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이 상태로 지속되면 긍정적인 성장을 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회사 일로 힘들고 내가 작아진다고 느낄수록 사이드 프로젝트를 늘렸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땐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멘토를 찾아다니고, 회사 밖 동료들을 만들었다. 샌프란시스코 사무실과 일하면서 영어 글쓰기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절치부심 하며 주말을 쏟아부어서 영어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직장인을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기웃거리고, 운동도 시작하고...


내 에너지를 나를 위해 쓰고자 하는 욕구,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원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란 걸 증명하다 보면, 회사에선 더욱 절실하게 회사에 충성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성과를 내야지 뒷말을 듣지 않는다. 딴짓러로 찍히는 순간 어떤 일을 하더라도 책잡힐 각오를 해야 한다. 


 회사에게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 '선'은 조직마다 다르다. 오랫동안 일하려면 꼭 알고 있어야 하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일하는 방식, 개인이 성장하는 방식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울타리가 필요한지, 어떤 규칙은 지킬 수 있는지 내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에 대해서 고민해볼 기회인 셈이다.  일을 잘, 열심히 해서 조직 내에 머무르려는 노력의 10분의 1만 떼어다가, 나와 회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내가 건강하고 오래 일하기 위해 어떤 '환경과 기회'가 필요한지 생각해보고 어떤 목표를 세우고 노력을 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이직'이라고 생각한다.


이직을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옵션이 100개나 생긴 것 같았다.

- 블록체인 업계를 완전히 떠나서 새로운 산업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 마케팅이 아니라 더 구체적인 전문성을 찾아보고 싶다.

- 미술계에서 했던 일까지 경력으로 포함해서, 경력직 이직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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