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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May 10. 2020

4월: 저 퇴사 했어요

April is the cruelist month 

<가계부 월간 결산>에 기고하고 있는 혜진킴입니다! 미스페니 선생님의 상담을 받고 시작하게 된 월간 결산입니다. 저는 푸른 살림 협동조합의 M밸런스 코칭 기본과정을 2019년 9월~2020년 1월 듣고, 매달 가계부를 말일에 정산하고, 경제활동과 살림을 되돌아보는 일기를 씁니다. 좋았던 소비 Top 3와 후회가 되는 최악의 소비 Top 3도 선정하고 있습니다.  


1. 변화가 많은 4월 


회사의 사정으로 권고사직을 당했다. 갑자기 닥친 건 회사나 생계활동뿐만이 아니다. 2년간 연애했던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정리했다. 회사 근처에서 지내던 원룸을 갑자기 이사했어야 해서 30분 동안 상자에 쓸어 담고 1톤 트럭에 내 짐을 담았다. 중단기 계획에서 큰 변수가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생겼는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나를 다독여야겠다는 생각이 보호 본능이 강하게 느껴졌다. 가계부를 보니 생존본능과 모순되는 방향으로 발휘된 것 같지만...


2. 현금흐름에 비상등이 켜졌다. 


컴퓨터도 필요하니까, 아이패드도 가지고 싶었으니까, 갑자기 퇴사하게 됐으니 시간이 있어서 배우고 싶었던 것, 읽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결제하다 보니까 마지막 출근하는 날 다음날 월급을 200% 써버렸다. 퇴직금이랍시고 받은 월급통지금도 몽땅 다 써버렸다. 절대 하지 말자고 결심했던 신용카드 할부도 18개월로 하고, 계획에 없던 소비가 늘어나니 망했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거나 외식을 하는데도 무감각해졌다. 


이렇게 슬픈 일이 많은데 그 몇만 원 아껴서 뭐해?라는 서글픈 생각과 분노가 뒤섞이니 나는 정말 무서운 소비러가 되었다. 기분 좋게 써도 항상 조심해야 하는데, 뇌 어느 부분이 마비된 것처럼 스스로를 보상해주고 싶어서 위로해주고 싶어서 고삐를 풀었더니... 징글징글하지만 제일 벗어나기 힘든 부분은 대출과 신용카드 빚과 돈도 본인이 값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삐를 끊은 사람이 다시 고삐를 찾고, 컨트롤을 찾고, 앞으로 이끌고 나가야 한다. 스스로 수습을 해야 한다. 


소비로 잠깐 즐겁고, 집에 할 것이 생겨서 기쁜 마음도 잠깐이고 앞으로 생계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지금 이 정신상태로 돈 벌 일을 생각해야 한다는 게 버겁지만, 어떻게 보면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큰일 나니까 또 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몰아 놓은 내가 미우면서도, 어찌 되었던 건 내 행동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일을 저지르고 실제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능력과 건강이 있어서 다행이다. 


3. 비상금이 있어서 다행이야. 


말 그대로 4월 마지막 주는 정말 끔찍했다. 잘못한 건 알아서 가계부를 적지도 않았다. 무서웠지만, 더 이상 정산과 현실을 미뤄놓을 순 없으니 책상 앞에 앉아서 엑셀을 할 수밖에 없었다. 5월 연휴에 통장과 카드 내역을 열어서 정산을 했다. 역시나, 은행 대출 상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결국 영혼을 끌어 모은 현금으로 신용카드를 모두 정리하고 나니, 1년 전과 동일한 대출금이 남아있어서 허탈했다. 그래도 현금흐름이 완전 제로가 아닌 건, 100% 대출과 소비로 채운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적금을 해서 모은 비상금이 500만 원이 있다는 것이다. 


비상금을 빼도 당장 한 달 생활비 100만 원과 빌라 선샤인 멤버십, 트레바리 멤버십, 요가 3개월, 헬스 3개월, 엄청나게 많은 책과 집이 나에겐 있다. 괜찮을 거야.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야. 

'나는 나를 무조건 지지한다.'라고 되뇌면서 다독여보기로 했다. 

내일은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재난 지원금을 신청하러 은행에 가기로 했다.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을 다니니 실업급여도 신청할 수 있고, 스스로가 대견하다. 




>>> 잘 산 거 top 3

1. 퇴사 축하 책 선물 285,310원 

월급날에 지르려고 모아두었던 책 보따리를 주문하고 책 탑을 만들었다. 뿌듯한데, 일주일에 1~2권 읽는 속도로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읽'은' 책을 서재에 나두는게 아니라 읽'을' 책을 놔두는 법이라고 모 작가는 이야기했지만, 양심상 이제 책은 안 사야 하는데 계속 욕심이 날까? 큰 책장 2개를 사서 넣고, 목록을 만들면서 태그를 달고 있는데 나의 관심사와 그 변화 과정을 볼 수 있어서 신기하긴 하다. 그러다가 다시 읽고 싶은 책도 발견하고, 꼭 읽어야 할 책도 다시 리스트업이 되니까 너무 몰아세우지 말자. 그래서 좋은 소비 탑 1에 넣었다. 


2. 레이저 노트북 1,522,800‬원 

회사에서 Dell XPS를 썼는데 터치 스크린이 되는 모델이라 240만 원 정도의 고가 모델이었다. 그땐 영상 편집까지 해야 하는 줄 알고, 필요한 사양 중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사달라고 요청한 건데.. 나에게 남은 건 2011년에 산 11인치 맥 에어 한대뿐이어서 노트북을 새로 구입하게 되었다. 

스타트업으로 취직한다면 맥을 보통 지급하니까, 윈도우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맥은 사양에 비해 너무 비싸기도 해서, Dell과 샤오미 중에 고민하다가 세일하는 레이저 노트북 스텔스 13인치를 구입했다. 

아주 만족한다. 

가볍고, 성능도 좋고, 무엇보다 가격 대비 정말 예쁘고 배송을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어서 딱이었다. 

레이저의 뱀무늬 로고도 너무 마음에 든다. 


3. 반포장 이사+탕수육 비용 203,000

최대한 빠르고 즉시 정리하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선뜻 도와주겠다고 했고 앱을 사용해서 반포장 이사를 바로 그다음 날 부를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웠다. 반포장 이사는 이동시간을 포함해서 2시간 만에 끝낼 수 있었고, 이사하는 날이라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서 집에 있는 술을 다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 최악의 소비 top 3

1. 아이패드 1,618,884‬원

노트북이 생각보다 너무 가볍고 성능도 좋아서, 굳이 아이패드 프로 2세대 11인치를 샀어야 했을까.. 근데 각인을 해서 반품을 할 수는 없고. 악!! 동생과 함께 질렀는데 드로잉을 하는 동생에겐 안성맞춤이지만 보통 텍스트 작업을 하고, 노트에 메모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잘 모르겠다. 그래도 요즘 메모하거나 브레인스토밍에 쓸 수 있는 앱이 많으니 찾아보려고 한다. 


2. 리디캐시 충전 100,000원

그놈의 10% 추가 충전... 앞으로 전자책 자주 읽을 거니까! 하면서 질렀는데 전자책은 사놔도 잘 읽지 않고, 대부분 멤버십으로 제공되는 책을 읽는데 시간을 쓴다. 그래도 밀리의 서재랑 리디 셀렉트가 겹쳐서 몇 달 중복 사용하면서 돈이 많이 샜는데 밀리는 취소 했다. 리디 셀렉트 승! 


3. 독립출판 책 24,840원

<서울시 취업이 안되고..> <올 어바웃 통역사><퇴사 질문 99> 등 관심 있는 주제이고, 인스타에서 광고를 보고 모 독립서점에서 샀는데.. 책 읽는데 20분밖에 안 걸리고 줄을 그을 데가 하나도 없다. 너무 돈이 아까운데 중고로 팔 수도 없다. 이 시간에 퍼블리나 이미 결제한 구독 서비스에 올라온 양질의 콘텐츠나 읽을 걸. 검증 안된 독립출판은 꼭 내가 가서 내용을 확인하고 읽어야겠다. 요즘 리뷰도 워낙 광고가 많아서 믿을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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