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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Jun 01. 2020

5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헝가리에서 쓰는 정산 일기 

Everything that you want, you already are. 


5월은 폭풍우 한가운데를 지나오느라, 오지도 않은 장마철을 겪은 기분이다. 


4월에 회사를 타의로 그만두게 되면서 느낀 억울함, 그로인한 방황과 무분별한 소비로 인한 여파, 이제 시간이 생겼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며 벌린 일을 처리하면서 5월이 지나갔다. 그 와중에 나는 헝가리로 왔다. 덜컥, 알바 자리를 승낙했다. 코로나로 여행을 다닐 수도 없고, 다시 취직을 어떻게 해야할지 불안하기만 하고 마음을 추스리지도 못했으니 좋은 기회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회사-집 단순한 생활을 헝가리 시골에서 반복하다 보니 서울에서 없던 일상의 틈이 생겼다. 아침에는 6시에 일어나고, 저녁에는 12시에 잔다. 시차도 그렇고 노동 강도도 그렇고 잠을 늦게 잘래야 잘 수가 없는 환경이다. 스여일삶, 빌라선샤인, 왈이네 단련장은 온라인으로도 소통을 하고 있으니 외롭지는 않았다. 카카오 프로젝트 100을 계속 하면서 일상을 유지시켜나갔다. 글도 꾸준히 썼다. 


그 동안 내가 돈과 시간을 허투루 썼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 스스로 자책하고 있었구나. 그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무섭게 쥐어짰구나. 회사 사람들 보다 내가 더 스스로에게 잔인하게 굴었구나. 


그리고 쇼핑 습관, 불안한 마음에 서핑을 반복하는 것, 넷플릭스나 유튜브 영상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들이 마음 상태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5월은 안팍으로 비상사태 였으니 나를 야단칠 수는 없었다. 다행이게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알아차리고, 보살피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시도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었다. 


돈을 쓰는 것도, 책을 사모으는 것도, 모임과 강의에 큰 돈을 쓰고, 수입의 일부분을 심리상담에 할당하는 것도 모두 내가 나를 위해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으려고 헤매고 있었다는 증거다. 결산일기를 쓰다 보면 그 답은 물건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담은 콘텐츠를 소비하는데서 오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돈을 내면 '그렇게' 사는 삶이 절로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정작 나에게 물어봐주지 않았다. 내가 답을 알고 있을 거라고,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이를 책임 질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를 무시하고 있었던과 마찬가지라는 것. 


앞으로 어떻게 살아낼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고 싶다. 다 알아야지만 살아지는 건 아니지만. 사실 나는 잘 모르고 있었다고 인정을 하니,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 사회의 기준과 조금이나마 비평적 거리를 확보한 것 같다. 장마가 지나고, 나에게 햇볓을 쐬게 해주는 것처럼 축축하고 곰팡이 핀 마음을 뽀송하게 말려주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무엇을', '왜' 라고 따지지 않고 나를 양지에 가져다 놓아야 겠다. 


 

부다페스트 독립서점, Massolit에서 


1. 외향적 소비가 줄었다. 


대표적으로 외식, 모임이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느라 구입하는 꾸밈 비용, 계절에 따른 유행아이템, 코스메틱, 미용실이나 네일샵이 5월에는 전무했다. 코로나 이후로 점점 줄어들다가 정착했다. 이번 달 꾸밈비용으로 여드름 패치 스티커와 수분크림을 다시 구입한 것 이외에 전혀 없었다. 네일샵만으로도 한 달에 20~30만원 회원권을 끊어서 손, 발까지 '케어'했던 과거가 정말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이제 나의 영혼을 돌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내가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위주로 소비한다. 필요 소비와 욕망 소비를 조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를 분리해낼 수 있게 된 것이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판단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누구를 위해 소비하는거야?" "정말 나를 위한거 맞아?" 


2. 핸드폰과 소비의 관계: 택배를 받기 어려우니 온라인 쇼핑을 아예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헝가리에 와있다. 그래서 인스타나 유튜브 광고를 봐도 살 방법이 없다. 배달을 한국에 있는 집으로 시켜도 당장 내가 받아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자연스레 '굳이 지금 사야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1시간만 지나도 무엇을 사고 싶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렇게 몇일 반복되다 보니 아예 온라인으로 물건을 둘러보거나, 물건을 권하는 방송이나 콘텐츠에 피로감이 생길정도 였다. 평소에 자주 보던 SNS에서 얼마나 나에게 소비를 권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디지털 디톡스를 함께 하는 모임 '디단한 사람들'에서 디지털, 특히 핸드폰을 계속 사용하는 심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제일 많이 나온 이야기는 반사적으로 SNS를 접속하고, 알고리즘에 나를 맞기는건 대부분 보상심리 때문이라는 것. 우선 각 디지털 기기 (아이패드, 노트북, 핸드폰, 회사 컴퓨터)마다 사용할 목적과 주 행동을 정리해보고, 우리가 원하는 습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다. 


나는 11시 부터 자기 전까지 핸드폰을 보면서 어플을 돌아다니며 모든 새로운 피드를 볼 때까지 잠에 못든다는 것인데, 사실상 새로운 콘텐츠는 계속해서 추천되어 타임라인에 뜨므로 지쳐서 눈이 절로 감기기 전까지 극단적으로 SNS에 머물다가 거의 아침에 잠드는 습관을 고치고 싶었다. 마음이 어수선하니 실제로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더라도 내용에 집중하지도 못했다. 계속해서 더 재밌는 것을 찾으려는 허기는 절대 만족될 수 없어서 더 무서웠다. 


한국에서는 온라인 주문도 연동되어 있는 페이, 카드를 통해서 쉽게 클릭으로 구입가능하고 그날 저녁이나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니 더 중독의 정도가 심했다. 헝가리에 있는 동안 몇번이나 장바구니까지는 갔다가, 어차피 지금 받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마음에 그만두었다. 이어서 하루만에 물건을 도착하게 만들기 위해서 한국의 택배 물류 시스템이나 노동자들의 조건이 얼마나 기형적일지 고민이 생겼다. 최근에 읽은 <깔대기>라는 택배 노동자의 르포르타쥬 만화에서 읽었던, 한 택배당 600원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 기사들이 생각났다. 하루종일 일해도 기본급만 받는 노동자들도. 구석에 처박혀 있는 '쓸지도' 모르는 물건들과 버려지는 포장재들 까지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나의 손쉬운 클릭질과 엮여있을지 생각이 퍼뜩들었다. 

다시는 예전처럼 무시로 온라인 쇼핑을 하진 못할 것 같다. 


내 방에서 보이는 동네, 한적하다. 


3. 가계부는 자아 반성이 아니라, 계획성 있는 자기 경영을 위해 필요하다. 


왜 매번 가계부는 번개치기일까. 그리고 정산이라는 것도 예산이 명확하게 정해져있던 것이 아니니 큰 의미가 없고, 아 이번 달도 많이 써버리고 말았군!이라는 생각만 들 뿐 나의 행동자체가 많이 변하진 않은 것 같다. 정규직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은 지금 내가 모아 놓은 돈은 빤하고, 알바로 벌 수 있는 돈도 기한과 금액이 명확하다. 


5월엔 퇴직금도 받고, 운좋게 얻은 아르바이트로 수입이 생겼지만 소비 기준이 없으니 여유롭기 보다는 쫓기는 느낌이들었다. 비상금을 건드리지 않고, 계속 수익을 만들어내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까? 돈 버는 건 빤한데, 어떻게 쓸지 예산도 정해놓지 않고 가계부를 쓴다는 게 사실 어불성설이긴 하다. 예산을 정하고 그에 맞게 생활을 한 뒤에 결산을 해야 지출이 관리되고, 재무 '계획'이라는게 가능해질텐데. '이번 달에도 많이 썼네!' 확인만 하고 넘어가면 안된다. 


결산하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항목이 예산이 초과되었는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피드백을 통해서 다음 달에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는 내가 스스로 정해놓고 쓰기를 훈련할 수 있는 좋은 장치이다. 이 때, 예산을 정할 때 전제가 되는 나만의 생활 경제 정책, 즉 한정된 나의 수입을 어떻게 배분하고 무엇이 더 중요하고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고민한 결과도 반영되어야 한다. 


이번 달에 여유자금이 생겨서 비상금을 채워놓고, 가장 많이 지출하는 항목인 자기계발을 위한 강의 & 모임 활동비에 100만원을 책정했다. 6월, 7월, 8월에 사용될 비용이다. 심리상담센터의 상담비용과 명상은 '활동비'에서 생활비 영역으로 이동시켰다. 삶의 일부로서 먹고 사는 것에 필수적인 영역이라고 판단해서이다. '운동비'와 같은 생활비 영역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6월부터는 각 항목당 예산을 바로 정산해가면서 체크할 수 있도록 가계부 앱에 즉시 기록하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일단은 활동비, 생활비 항목을 조정했으니 6월 결과를 지켜봐야겠다. 



>>> 잘 산 거 top 3

1. 왈이네 마음 단련장 커뮤니티 '디단한 사람들' 40,000원 

디지털 디톡스를 같이 하는 모임, 멍상가 점례가 리드해주는 커뮤니티인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기사 링크, 카카오톡을 왔다갔다 하며 1~2시간 정도는 예사로 쓰고 허탈하기만 한 날을 흘려보내지 않고 '마음 알아채기'를 통해서 디지털 기기와 나의 관계를 재점검 해보는 시간. 회피하고 싶거나 생각이 많아지면, 마음이 불안하면 핸드폰을 목적없이 만진다는 것을 깨닫았다. 


2. 스여일삶 커리어 글쓰기 챌린지 모임 참가비 15,000원

매 주 목요일 자정까지 커리어에 관련된 글을 한 편쓰고 인증하는 챌린지. 스여일삶 멤버들과 서로 글을 읽고 피드백을 주기도 하고, 마감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글을 쓰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으며. 1월 부터 매주 한번도 빼먹지 않았다! 


3. 스페인어 화상회화 수업 53,158원

1월 부터 간헐적으로 1~2주에 한번 씩 프리 스피킹 수업을 듣는다. 그냥 1시간 일주일간 있었던 일을 떠들다 보면 시간이 지나간다. 스페인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으니 요즘 영어식 표현을 많이 써서 고민이다. 꾸준히 스페인어 공부를 할 수 있고, 스페인어로 내 일상을 전하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프로젝트들이 정리가 된다면 올해 안에 전화 중국어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 최악의 소비 top 3

1. 킨들 루미 선집 13,226원 

루미는 인터넷에 인용구 모음이 공짜로 많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내가 산 버전은 시보다는 일화 위주여서 정말 재미가 없었다. 주문하기 전에 여러가지 버전 중에 조사를 하거나 샘플로 미리 읽어봤다면 사지 않았을 텐데 너무 돈아깝다. 


2.웨스트월드 2400원 

온라인에서 다운받아도 되는데 괜히 시리즈온에서 결제를 했다. 게다가 해외에선 스트리밍도 다운로드도 안되는데, 다운로드된 콘텐츠만 재생가능하다고 해서 쌩.돈.을 날린 셈이다. 


3.템플 레깅스 71,000원 

미니멀리스트 운동중에 세일중인 제품은 사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 세일한다고 그러면 전혀 살 예정에 없었던 아이템도 '나두면 쓸 것 같다는' 생각에 결제를 누른다. 심지어 배송이 늦어져서 받아보지도 못하고 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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