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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May 14. 2020

면접: 질문의 힘

커리어 체인지 09.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정신없이 살다 보면 일상에 파묻혀 스스로 물어볼 기회가 없다. 그래서 면접에서 만나면 더 당황스럽기도 하다. 어떤 결정적인 선택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을까? 이력서를 보면서 면접을 준비하는데 한숨이 폭 나왔다. 여러 선택지 중에 나름 고심해서 결정했을 텐데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직전 직장도 선명하게 기억 안나는데 3년,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 아리송하다. 그러게. 난 왜 여기 있지?  


그동안 미술계에서도 세부 영역이나 일하는 팀이 계속 바꼈지만, 지난 3년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거주하고 있는 국가도, 직무도 달라졌으며 무엇보다 산업이 변했다. 그 때 만약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한편으로는 아찔하기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만하면 잘 왔다는 안도의 숨이 쉬어지기도 한다.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뭘까..? 


면접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면접에서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정체성'과 직결되는 질문이다. 그만큼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후회나 미련이라기보다는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루는 선택들, 쌓여온 시간과 경험이 만드는 나 자신을 받아들임. 그리하여 나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것.  


면접에서 회사는 일하는 사람-됨으로써 나의 됨됨이, 씀씀이를 알아보고,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검증하려고 한다. 여러가지 질문으로, 과제로, 만남으로 이뤄진 면접 단계를 통과하면서 나는 답을 만들어 나갔다. 뻔한 질문들도 이상하게 그날 컨디션에 따라, 그 직전 면접에 따라 답이 달라졌다. 처음 듣는 질문은 나의 커리어 관점을 되돌아보게도 했다. 


또한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위한 면접을 했기 때문에 조직문화뿐만 아니라, 성장하기 위해 나에게 어떤 환경이 필요한지 다각도로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력서를 준비하고, 회사를 리서치하는 과정보다 면접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타인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면접에서는 진지하게 질문을 받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이미 서류 통과를 통해서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진 회사를 설득하기 위해서 직접 비즈니스 미팅을 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나라는 '자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고객을 직접 만나서 협상하는 자리.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와 시장에서 보는 나의 가치를 가늠해보고, 나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기회로 만들고 싶었다. 면접비를 따로 안주더라도 그 회사에선 면접에 투자하는 시간과 돈이 있다. 특히, 외부에서 만나기 힘든 임원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는 것 만으로도 멘토링으로 만나 추상적인 조언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동시에 여러 회사와 면접을 진행하면 반복되는 질문과 변주 사이에 굵고 짧게 나에 대해 알아갈 수있어 더욱 좋았다. 


답은 어떻게 찾는가? 


면접에서 던지는 질문은 어느 정도 관습적이다. 자기소개해주세요. 왜 이 회사에 지원했나요?

회사가 설정한 특정 기준을 통과할 만큼 보편적이면서도, 차별되는 fit을 어필하기 위한 개성적인 설득이 필요하다. 


 1. 나에게 궁금해할 내용을 설득력 있게 대답하고, 해당 회사에서 원하는 직무/인재상/프로필과 연결해야 한다. 


 - '왜' 지원했는지  내가 해당 회사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고, '바로 실행' 가능한 직무 능력이 채용 공고 상의 정보와 얼마나 부합하는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때 내가 만든 결과물이나 내가 걸어온 길을 스토리텔링 해야 한다.  결과물(What) 중심이 아니라 왜(Why)를 중심으로 정리해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다.  


- 기존 회사에서 낸 성과는 '어떻게' 달성했는지  사실 이 부분은 일할 때부터 기록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제일 대답하기 어렵다.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했고, 회사가 제시하는 목표 이외에 개인적인 목표를 두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술계에서의 경험이 그랬다. 프로듀서는 다양한 팀과 협업하고, 거의 모든 단계와 모든 영역에 걸쳐서 업무를 하기 때문에 특정하기 어려웠다. 전문화, 세분화되어 있는 IT 산업의 직무 구조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직무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바로 전달할 수 있는 언어가 부족했다.  또 어떤 전시인지, 하나의 전시가 이루어지기 위해 프로젝트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에 부연설명을 계속했어야만 했다.  


2. 팩트보다 밸류 중심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  


기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사업 영역, 제품에 있어 내가 기여한 점을 팩트 위주 나열 대신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2번, 3번 이상 왔다 갔다 하면서 대화로 이어나갈 수 있다.  그래야 실무 역량, 진짜 일 경험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건 기존 회사의 KPI가 해당 회사의 평가 지표나 규모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정량적인 수치를 이야기할 때도 다양한 방식으로 어필할 필요가 있다. 퍼센티지를 언급하거나, 기간 안에 어떤 식으로 성장률(%)이 있었다거나,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 어떤 지표를 중점적으로 봤는지 등 다각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부풀리지 않는 것, 거짓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내부 정보라 확인은 불가능하겠지만 실력이나 업계 정보는 팩트체크가 가능하다. 


3. 회사와 잘 맞는지 파악하기 위해 나를 솔직하게 잘 드러내는 법도 필요하다. 


떨어진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잘 안 맞는 회사인데 1~3시간 면접으로 들어가면 더 큰 고통이 길어질 수도 있다. 'Near fit'이 아니라 'Exact fit'을 노려보자. 경력직일수록 더 중요하다. 해당 조직에 내가 정말 맞는 사람인지 면접 질문의 정도나 면접관을 통해서도 사전 스크리닝을 할 수 있다. 이때 준비해 간 '정리된 나'로 모범 답안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면, 그들도 나의 실체를 모를 수 있다. 단점이나 약점까지 다 보여줘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의 장점과 일하는 스타일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주는 것도 중요하다. 


4. 열정이나 꿈이 아니라, 단단한 삶의 증거로 설득해야 한다. 


어떤 일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열과 성의를 다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큼 공허한 대답이 없다. 오히려 관련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로 들리고, 조사나 구체적인 정보 없이 '태도'로 무마하려는 막무가내 접근 방식을 가진 올드(!)한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커리어 전환을 할 때, 기존 업계 경력이 없이 새로운 직군과 산업에 지원하는 것이라 면접에서 '어떤 근거로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요지의 질문을 받으면 식은땀이 흘렀다. 저는 아직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A와 B를 해봤기 때문에 빨리 '배울 수 있습니다'라는 답은 근거를 대기 어렵다. '빠름'과 '배움'의 정도는 객관적인 평가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내가 하는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도 없는데 나를 믿으라고 강요하는 셈이 된다. 


내가 새로운 것, 귀사에서 요구하는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설득하기 위해선 좀 더 정연한 논리구조가 필요하다. 열정이나 꿈은 '이런 나'를 위해 회사에서 기회를 줘야 된다는 떼쓰기다.'내가 잘하는 것 +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연결하고, 내가 가지고 있고 그 회사에서도 요구하는 핵심 역량을 중심으로 실제 성과, 레퍼런스를 근거로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 나의 주장과 가치를 보여 줄 수 있는 샘플을 증거자료로 보여주면서,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점, 그리고 공통된 역량으로 가지고 올 수 있는 '비즈니스 밸류'가 무엇이 있을지 확장하면서 이야기해야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 


면접은 나의 커리어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 준다. 


좋은 질문, 좋은 대화는 나도 몰랐던 나의 장점을 깨닫게 하기도 한다. 허술하게 생각하고 있던 나의 약점이나 성과도 보다 구체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에서 논리가 단단해진다. 어떤 일이나 성과를 '잘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내가 기여한 점'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 아직은 장점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강점이 성립되는 '조건'을 회사, 조직, 제품, 담당한 직무 등 다양한 층위에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면접은 앞으로 계속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조건, 일이 포함하는 다양한 관계와 기쁨과 슬픔의 리얼리티를 나의 언어로 바꾸고, 대답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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