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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May 28. 2020

'스스로' 동기부여는 어떻게 하나요?

커리어 체인지 10.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어느 누구도 회사의 포지션에 100%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 누구도. 설령 대표라 할지라도. 


준비된 자리로만 이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경력직의 딜레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된 역할 만큼 '바로' 일을 해 줄 사람으로서 1인분 몫을 해야하는 데서 생긴다. 헌신입으로 '가성비 좋은 직원'이었던 나는, 이제 에이전시 만큼 세팅부터 실행까지 모두 해줄 수 있는 '특별히 뽑은 경력자'가 되어 있었다. 면접을 세 시간동안 보면서 내가 가진 것을 내보이고 인정받는 데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약속된 1시간에서 300% 추가된 시간 & 정보를 빼내는 경영진의 마인드에서 조직문화와 앞으로의 일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눈치를 챌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당연히 내가 몰랐기 때문이다. 입사를 하던 말던 '3개월 마케팅 전략과 플랜'을 이야기해볼 수 있고, 채널별 B2B 콘텐츠에 대한 인사이트와 사전에 조사한 회사의 정보를 바탕으로 이런 일들을 해보고 싶다며 읍소하는데 집중했으니까. 그리고 분위기가 좋자 너무 말을 많이하고 긴장해서 떨리는 손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 회사라면 다를거야'라는 기쁨에 잠들었던 7월, 그 다음날 아침 이제 그만 둬도 되겠다는 생각에 가볍게 사무실로 향했던 발걸음이 기억난다. 


그리고 입사를 결정하자 마자 부탁한다며 '시키는'일들이 마구 떨어졌다. 이직을 위한 인수인계도 준비해야하고, 휴가도 가야하는데 출근하기 전에도 요청하는 부탁을 처리하고 가자마자 할 일에 대한 준비를 할 때부터, 그 회사가 나에게 기대했던 것은 명확했다. 그리고 잘해낼 자신도 있었던 것 같다. 이전에도 적응했듯이 할 수 있을 거야.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풀어나가면 될 거야. 어떤 사람들과 일하게 될지 기대된다. 나는 또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내 손은 나만이 잡아 줄 수 있다.  


직전 직장에서 하는 '만큼'의 퍼포먼스, 그리고 그 '이상'을 기대하는게 경력직 이직이다. 전임자도 없고, 경영진 제외 개발직군만 있는 초기 스타트업에 첫 커뮤니케이션 포지션으로 가는 것이니 긴장은 했었다. 첫 세달 동안 새로운 산업군, 아직 개발하고 있어 너무나 '애자일'한 서비스에 대한 이해, 이름도 없었던 서비스의 이름과 홈페이지 리뉴얼, 콘퍼런스 홍보 부스 운영을 위한 작업, 서비스 론칭과 회사를 알리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콘텐츠 기획, 채용을 위한 인터널 브랜딩 및 내부 직원 인터뷰를 통한 콘텐츠 제작 ... 등 일은 계속 나타났다. 데드라인을 달고서. 하나씩 해치우면 그 다음 보스가 나타나는 방식으로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체력과 멘탈은 바닥이 났다. 


그리고 기나긴 슬럼프가 왔다. 입사할 때 사인한 JD대로만 일하지 않는 다는 걸 모든 직장인은 알겠지만, 그래도 중심은 있어야 하는데 나의 업무는 새로 입사하는 경력직이 가진 전문 영역과 기존 멤버들이 제너럴하게 처리하던 영역 사이에서 내 중심을 잡는데 실패했다. 세일즈, PR, 마케팅, 콘텐츠 기획 및 제작, 인터널 브랜딩 관련된 스코프에서 천갈래 만갈래로 업무가 쪼개지는 동안 받았던 첫번째 업무평가의 타격도 컸다. <실리콘밸리의 팀장들>에서 이야기하는 '지독한 솔직함Radical Candor'로 포장한 수동공격형 Maunpulative Insincerity와 막말형 Obnoxious Aggression 사이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실질적 고통 X 저항 = 내가 느끼는 고통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업무'에 대해서 주고, 업무 환경과 목표를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풀 수 있는 성숙한 조직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나에 대한 평가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왔던 간에)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성장으로 나갈 수 있는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는 성숙한 직장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스스로 자책하고 비난하며 나 자신을 더 괴롭히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일상 생활과 회사 생활이 더욱 힘들어졌다. 나는 그렇게 일을 못하지 않고, 내가 아무 일도 안하고 아무 성과도 없는건 아니고, 내가 여기 있어야할 존재 이유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증명을 해야된다는 오기와, 부담감과, 무력감이 소용돌이 쳤다. 


더 열심히, 더 많은 성과를,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노력하면 되고 모든 문제가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했어야 하는데 내가 해이해서 회사에서 쪼으는 거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컨디션 난조라고 생각했고, 나에겐 번아웃이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번아웃이라는 이름표를 거부하고 저항하려고 할 수록 고통은 가중되었다. 채찍을 한 번맞고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100번 반복되면 무릎이 꺾이고, 바닥에서 바르작거리며 경련만 일으키는 것처럼 서서히 조용히 나는 회사에서 말이 없어졌다.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느끼는 마음과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정신차려! 여기서 지면 안돼' 


집에가서 잠만 자고, 음식은 배달음식으로 떼우면서 일상생활을 최소화하고 일에 매달리면 되겠지라는 단순 계산법은 복잡한 업무 과제와 회사에서 소모되는 정신력과 감정소비를 견딜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집안일과 스스로를 돌보는 일은 뒷전이니 주변 사람들은 배로 힘들어 했고, 나는 나데로 '이렇게 회사에서 힘든데 집에서도 힘들게 하냐며' 축 늘어졌다. 하나씩 염증이 나고 고장나는 몸을 고치기 위해 병원을 다녔다. 원인 모를 고통에 검사도 받고, 반차를 내가면서 수액을 맞고 다시 복귀하기도 했다. 마사지, 영양제, 카페인을 계속 공급했다. 스타트업 모임이나 커뮤니티에 나가서 1인 팀에서 부족한 피드백이나 아이디어를 받기 위해 맹렬하게 사람을 만나고, 모임에 참석하고, 콘텐츠를 읽고 집에 오는 길에 동기부여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나는 할 수 있어'를 외쳤다. 



번아웃, 암흑기 


2017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처럼 드라마틱하게 올스탑하고 내 몸과 마음을 돌아볼 기회는 없었다. 회사에서는 퍼포먼스를 원했고 나는 컨디션을 회복하고 동기부여를 계속하는 '바퀴 같은 인간'이 되서, 1인팀이라도 외부 컨설팅이나 커뮤니티 활동, 개인적인 공부를 통해서 트렌드에 맞게 업무적으로도 성장하는 능력자가 되고 싶었다. 바퀴벌레는 생명력이라도 있지, 스스로를 기계 매카니즘처럼 가혹하게 대한 결과는 처참했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번아웃은 번아웃이 아니었나보다 그럼, 그러면 난 아픈가보다. 이건 우울증인가보다 싶어서 상담을 받으러 갔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무기력증을 돈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컨설팅을 받고 외부 동료를 만들고, 코칭을 받는데 모두 돈이 들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전문 지식이나 정신 건강 지식, 직장인의 처세에 대한 책과 강의를 사모으는 데 강박적으로 돈을 썼다. 자존감이 있으면, 몸이 건강해지면, 더 뛰어난 전문가로 부터 직무역량에 대한 컨설팅을 받으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휴가를 다녀오고 '대화'를 하면 괜찮아지겠지. 


허우적+아등바등+안간힘+죽을힘을 쓰면서 '이번엔 안될 거 같아. 이 회사는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나약해서 그렇고, 대표나 팀원들이 어떻든 간에 내가 맞추면 가능할 거라고 되뇌였다. 먼저 차이기 전까지. 권고사직으로. 갑자기. 


잘못된 번아웃은 없다.

아묻따'동기부여'가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자기자비'가 필요하다. 


한 달이 지나고 난 지금, 나는 그 당시 나에게 어떤 태도로 질문을 던졌는지 되돌아 보게 되었다. 외부의 평가나 환경이 어떻든 내가 느끼는 감정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완벽한 '이상'적인 모습을 달성하길 바라는 완벽주의자적 태도가 문제일 뿐. 스스로를 착취하고 채찍질해서 이까지 끌고 온 소같은 내 성미를 몸과 마음이 버티지 못하고 위험신호를 보내는 것 뿐. 


지금 나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멈추고 힘든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하며 존재모드로 나를 전환 하는 것.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도 괜찮다고, 마음의 햇살을 쬐여주는 숨구멍을 뚫어주는 것. 자신만만하게 이직한 회사에서 왜 쓰레기처럼 권고사직 당했는지, 왜 지금은 회사 안다니고 알바하는지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 의식, 왜 그랬을까 날선 비판들 곱씹기에 잠시 정지버튼을 눌러주었다. 


내 마음이 요동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서다. 잘못된 번아웃은 없다. 나를 뒤흔들고 힘을 쭉빼고 어둠만 있는 것 같은 날들이 지속되고 잠들수도 없고 행복하지도 않은 생활이 나를 찾아온 것은, 내가 그만큼 어떤 일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반증임을. '좀 쉬자'라고 메세지를 보내다가 그냥 시스템 다운을 시켜버린 것일 수도 있음을. 


수치, 당황스러움, 분노, 속상함, 반발심, 미움, 피로, 지침, 슬픔, 무기력 같은 감정들. 번아웃을 미워하지 말고, 번아웃=나라고 단정짓지 말고, 날씨 같은거라고 생각하자. 구름은 하늘이 아니고, 비가 자연이 아니듯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과 나의 감정이 나 자체는 아니라고. 힘들다는 나에게 '거짓말 하지마. 넌 괜찮아. 할 수 있잖아. 동기가 부족해서 그러니 자극을 찾아!'라고 윽박지르지 말자. 


숨을 쉴 수 없을 땐 동기부여를 위한 전기 채찍을 내리칠게 아니라, 

그냥 숨만 쉬면 된다. 

숨에만 집중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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