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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Jun 11. 2020

원하는 것을 원하는 연습

커리어체인지 11. 가장 어두울 때 빛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였을까? 


회사에서 잡고 싶어 하는 프로 일잘러가 되는 것? 성과를 만들어내서 그로스 마케터로 브랜딩 하는 것? 와이콤비네이터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실리콘밸리와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는 것? 연봉을 계속 올리는 것? 언젠가는 대기업으로 가는 것? 창업하는 것? 대출을 다 갚는 것? 결혼하고 나서도 일을 계속하기 위해 안정적인 커리어패스를 다져 놓는 것?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4대 보험 나오는 직장을 다니면서 승진하는 것? 시험 준비해서 공기업으로 이직하는 것? 다시 미술계로 돌아가는 것? 석사논문을 마저 쓰고 졸업하는 것? 해외여행을 훌쩍 떠나는 것? 


내가 이 회사에서 원하는 게 있었고 나에게 가진 기대가 있었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내 삶 전체가 오염된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를 계단에서 밀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며, 비열하고 못된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이 일은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 


자기-자비, 자기-중심 잡기 연습


나를 너그럽게 보는 연습을 하면서 생각과 감정에 이름표를 붙였다. 불안, 불안. 계획, 계획. 걱정, 걱정. 회상, 회상. 좌절, 좌절. 생각은 가만히 있어도 떠오르고, 해고당할 때 들었던 폭언은 계속 되감기 되면서 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생각은 내가 아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이 현실도 아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내가 선택한 것이다. 


내 삶과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 경험은 내가 당장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진 않았다. 안간힘을 써서 될 일이 아니었다. 기력도 없고. 비참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만히 있어보기로 했다. 흙탕물이 가라앉을 때까지, 비가 그칠 때까지. 해외여행, 연애, 쇼핑으로 채우려고 했던 20대는 상처만 남겼다. 내가 겪는 문제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주지 못했고 오히려 '신용카드 빚'이라는 족쇄가 되어 선택지를 제한시키기만 했다. 2020년의 서른 한살의 나는 당장 나를 먹여 살리는 경제활동을 지속하고, 일상을 지켜내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절대 벗어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문제들도 결국은, 어떤 방법으로든, 철없던 시절조차 나는 어떻게든 극복해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문제를 정의하고 감정을 분리해내는 것, 그래서 거리를 확보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배웠다. 현실을 보는 관점이 패닉에서 더 멀게, 큰 그림이 보일 때까지 확보되니 지금 내 눈앞에 놓인 모든 끔찍한 일이 파도처럼 느껴졌다. 으레 치솟았다가 사라질 수도 있지만, 힘이 세서 휩쓸릴 위험이 있는 항해 중에 만나는 파도. 여기서 벗어나려면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 가라앉을 이유는 없다. 계속 움직인다면 언젠가는 리듬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파도를 탈 여유가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더러운 일, 힘든 일, 이상한 사람, 날카로운 말을 견뎠고, 잊었고, 성장했고, 다시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영역 밖에서 일어나서 불안하고 어려웠지만, 문제들을 해결하는 만큼 내 세계로 포섭해 왔다. 또 내 영토를 넓힐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자. 내 '일'과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야. 실패라면 실패지, 결말은 아니니까. 내가 지나온 문제들이 결국 나를 만들어준 것처럼, 휩쓸리지 말자.



비참함에 지지 않기 위해서, 이 상황을 감당하기 위해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필요한 질문이 있었다.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그렇구나. 마음이 어때?" 

"지금은 뭘 하고 싶어? 뭐가 필요해? 내가 들어줄게" 

나는 내 바람을 다 들어주고 싶었다. 


정말 실패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정말 원했던 것을 기억해볼 수록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칭찬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스타트업 경험해보기 


처음 스타트업으로 옮기게 된 것도, 이직을 한 것도 디지털 비즈니스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더 이해하고 싶어서 환경에 변화를 준 인간실험이었다. 내가 진짜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도 동의하는지. 인공지능이라는 기술과 분야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고 싶었고, 실리콘밸리에서 투자받은 스타트업도 궁금했다. 프로덕트를 만들어서 첫 고객을 찾아서 성장하는데 일어나는 일과 어떤 사람, 어떤 리소스, 얼마나 돈이 필요하는지도 궁금했다. 팀원이 되서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면서 몰입해보고 싶었다. 동료애도 느껴보고. 같은 선상에서 내 경험치도 올리고. 시드 라운드 스타트업을 A단계로 올리는 스테이지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두 번의 스타트업 경험을 내 자산으로 만들어서, 계속 유의미한 일을 할 만큼 신뢰를 쌓고 싶었다. 스스로에 대한 나의 신뢰와 든든한 동료들과 멘토를 찾고 싶었다.   


처음 미술계를 떠난 것도 성장하는 사업에서 내 가치를 실험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에서 시작한 건데, 잘된거 아닌가? 해고를 했던 말던 나의 경험과 그 일을 해내기 위해 공부한 정보값과 동료 네트워크는 남는다. 오히려 사람 거르는 법을 배웠다. 가치를 만들어내고 수익과 시장을 만들어내는 걸 경험을 하면서 스타트업 인간이 되고 싶었고, 스스로 나는 스타트업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관습적이고 폐쇄적인 미술계에서 나름대로 일해보고 싶은 기관들과 존경하는 큐레이터들과 일을 해봤으니, 이제 내 일을 찾고 싶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기술이 누군가의 어시스턴트로 10년, 20년 사용되면서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월급 100도 못 받으면서. 말도 안 돼. 이런 거지 같은 업계는 내 발로 나갈 거야. 새로운 것들이 계속 생겨나고 미래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나와 비슷한 지향점과 야망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을 만들고 싶었다. 


환경을 바꾸자는 건 좋은 선택이었고, 나의 세계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미술이론 대학원 그만두기 


교수님 눈치를 보면서 껍데기 인간으로 살지 않아도 되서, 잘 맞지 않는 대학원 생활과 문화를 드디어 인정할 수 있어도 되서 좋았다. 교수님 세대가 90년대 후반 미국에서 박사 하던 시절에 알고 있던 '주류' 미술사조, '주류' 작가그룹, '주류' 비평가의 방법론 보다 재밌는 것,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미술 프로젝트를 설명할 언어를 찾을 다른 방법을 찾아서 좋았다. 내가 알고 있던 '현대 미술 비평'이 얼마나 한 줌 뉴욕땅에서 몇 명의 기득권 백인이 만들어내는 문화와 결탁되어 있는지 내 눈으로 보고 겪으면서 박탈감만 느꼈던, 이유모를 패배의식과 분노도 사그라 들었다. 


내가 속하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어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에 매달렸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았으니까. 더 이상 동시대 미술 프랙티스라고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을 해야 미술계에서 일했던 내 삶이 보상받는게 아니니까. 더이상 여기에 속하고 싶지 않은 것보다 더 큰 변화의 동기는 없었으니, 오히려 고맙다. 다르게 살고 싶고, 다르게 생각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미래를 가지고 싶었는데, 그렇게 된 것 같다. 


2년간 미술계를 떠나고,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일을 해본 경험은 나에게 남았다. 내가 부러워 했던 사람들 - 젊은 나이에 창업하고, 유튜브나 콘텐츠로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하고 싶은 기획을 하다 미술관에서 큰 전시를 열고, 공기업에서 꾸준하게 돈을 벌고 주식을 하며 취미생활을 즐기는 - 청년의 삶을 부러워하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진짜 존재하는 사람이기나 할까? 


부러움, 욕망, 패배감, 자기 비하, 자신감 결여, 부모님에 대한 원망,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같은 에너지 덩어리를 내 삶을 더 좋게 바꾸려는 의지로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싶은데 지금 가지지 못한 것, 저렇게 되고 싶은데 나는 아닌 것 모두 의심해 보았다. 정말로 원하는지. 정말로 원한다면 의지를 갖고 있는지. 


석사를 해야만 큐레이터가 될 수 있고, 미술관에 소속된 큐레이터가 되야만 내가 원하는 공부와 삶을 가질 수 있다는 내가 만들어낸 머릿속 사다리를 치워버리자 너무 자유로웠다. 내가 싫은 것, 떠나고 싶은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고 싶은 것을 알게되니 아무것도 모를때의 '모든 것이 가능한 자유'보다 더 진짜 자유를 찾은 느낌이다. 


나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원하는 것을 의지가 있는 것과 의지가 없는 것으로 관점을 바꿔봐야 한다. 지금 있는 곳에서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로운 일을 하려면 사실 귀찮다.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할 수도, 생각하는 관점과 기준도 바뀌고 삶과 사람의 풍경도 바뀐다. 미술일은 하고 싶지만 미술계는 떠나고 싶은 욕망을 '긍정'하려면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고, 하나씩 이루면서 중간에 맞닥뜨리는 문제도 해결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인이 건물주이면서도 나에겐 한 달에 30만 원도 아까워 하는, 대학시절 내내 존경했던 y작가의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에 나는 변하기로 결심했다. 


일을 안하겠다고, 그만두겠다고 말하기 위해서 대본을 써놓고 손을 떨면서 전화로 이야기했을 때 나는 나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 때 계약했으면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를 하고 있었을 내 시간과 노력의 가치 월 30만원과 세금폭탄이라면, 지금 헝가리에서 하고 있는 연봉 5천 포지션에서 내가 맞고 있는 역할과 내 노력은 시간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8시간씩, 주 5일이라는 블록은 같으니까. 아니, 미술일이었다면 주말에도 일하고 휴일에도 일하고 작가가 전화할 때 마다 미술관에서 우왕좌왕 계획을 바꿀 때마다 질질 끌려다녔을 것이다. 그러니 개선된 거다. 


금니가 빠지면 치과에 가서 진료 받을 시간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건강보험도, 비상금도 있으니까. 나를 돌 볼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까 만족한다. 


내 가치를 내가 낮추지 말자. 내 기회를 내가 잘라버리지 말자.


연봉 3천2백으로 시작했던 스타트업 일과 연봉 6천을 받고 하는 일이 그렇게 다를까? 미술 대학을 졸업하면 연봉 2천 이상 못 받는다는 말은 뚜껑을 열어보면 본인이 스스로 심어놓은 장벽 아닐까. 다른 전공, 다른 커리어, 다른 복지조건을 비교를 하는 순간 '이 나이에는 X만큼의 연봉과 X 일을 해야 한다는' 평가 기준이 생긴다. 비교를 하면 내게 진짜 필요한 것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사회의 욕망으로 오염시켜 버린다. 


인문계나 예술계라서, 전문대라서, 나이가 들어서, 결혼을 해서, 결혼을 안 해서, 여자라서, 한국 사람이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고정관념에 맞기지 말자. 10년 뒤에는 화성에서 살지, 지구가 멸망할지, 내일 아침에 교통사고로 죽을지, 기술이 발달해 수명이 3배로 늘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여기 내가 있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만 사실이다. 


미술계를 떠난 것은 낙후된 노동조건에 불만을 품고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가지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다르게 살고 싶어서 내가 생각으로만 했던 일을 시도해본 것이다. 


미술계 동료들은 황당하다고 했지만, 나는 정말 구글에서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테크 스타트업으로 간 것이다. 

'구글은 크리에이티브하고 어느 공공미술 프로젝트보다 임팩트도 크고, 철학적이고, 섬세한 지적 생산과 여러 사람들의 노동의 집합체야. 미술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자 사회의 생산물이라면, 구글의 프로덕트가 지금은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야. 추상적인 개념을 정의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말과 글과 물질로 실현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해봤어. 나는 구글에서도 일할 수 있을 거야.' 


생각만 곱씹고 행동하지 않았을 때보다, 실제로 IT 서비스를 직접 만들고 파는 경험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미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미술을 전공했다고 해서, 미술계에서 일했다고 해서 부족한 건 없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했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껏 쌓아 올린  미술계 경력이 쓸모없어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내가 살아온 결과이자 나를 이루는 경험을 이야기로 바라보기 


타인의 렌즈와 사고방식으로 내 인생을 보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왜곡되고 통편집된다. 저당 잡히고 저평가된 내 인생, 내 노동의 가치, 내 생각의 가치에 난 동의하지 않았다. 아뇨, 전 30만원 받고 일 못해요. 내 이야기와 목소리의 편집권을 되찾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세상이 나에게 붙이는 이름표를 직접 흥정하고, 판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평가와 사회의 기준을 받아들여서 내 앞길을 내가 막지 않고,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목소리를 내면서 나를 도와주고 싶다. 


미술계에서 불행하고 불안해서 내가 싫어졌을 때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움직여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계속 걸을 것이다. 

멈추기도 할 것이다. 움트려면 에너지도 필요하니까. 

내 속도대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변하고 있다는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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