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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빌 언덕 Dec 03. 2015

제발 좀 우세요

우는 능력

(아래 상담이야기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

비밀보장을 위해 적절히 왜곡된 것이며

사적인 내용은 배제하였습니다)


웃고 있지만 금방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이 있다.

상담에서는 심각하게 우는 사람보다

늘 잘 웃는 사람이 더 어렵다.


우는 사람은 웃는 사람이 되면 그만이지만

웃는 사람은 일단 울줄 아는 사람부터 되야 하기 때문이다.


몇 개월을 공전하던 우리의 이야기가

그의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향했을 때 그는 문득 감정이 울컥하는 듯 했다

그러나 곧 그는 감정을 꿀꺽 삼키고는 괜찮아지려 했다.


"지금 어떤 감정이 느껴졌던 건가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글쎄요. 어렸을 때 종종 가던 할머니 집이 생각이 나서요."


"네. 근데 생각말고 지금 잠깐 올라온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그냥 그 때가 생각났어요. 마당도 있고 경치도 좋고 그래서 좋은 곳이예요"


"네. 근데 그런 곳을 떠올렸을 때 느껴졌던 감정이 무엇이었나요?"


"글쎄요..... 좋은 추억이라 좋은 감정인 것 같기도 하고..... "


"근데 잠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던 것 같아서요.

방금 눈물이 났던 건 왜일까요"


나는 그의 말과 표정과 감정이 불일치하는 것을 느꼈고

그런 불일치를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집요하리만큼 그에게 감정을 물었다.


그는 분명 슬픔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음에도

애써 그것을 긍정적이고 건전한 생각, 감정으로 덧입히려 했다.


그는 느껴지는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그 상황에 느끼는 것이 적당해 보이는 감정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감정에 있어서도 어떤 강박관념과 도덕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때 그 장면을 생각했을 때 마음에 생기는 감정을 그냥 느껴보세요

지금 당신의 감정이 당신에게 가장 솔직한 무언가를 이야기해 주려고 하는 거예요"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무미건조한 이야기를 했던 그가

어렸을 때 가끔씩만 보았던 조부모의 이야기를 하다가

기어이 진한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참을 울었다.


자신의 삶이 건조하고 결핍되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자신의 삶 한자락에는 자신을 늘 푸근히 맞아주시던 누군가가

있기는 있었다는 기억이 나서 반가웠고


또래보다 조숙해져 어른스럽게만 살아왔는데

여전히 자신이 어른,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그렇게나 바라고 있구나 하는

내면의 유치한 욕구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고


그럼에도 이제까지 부모로부터 받고 싶었던 그 사랑을 못 받았던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이렇게 가슴 아프고 섭섭한 일이었구나 하는 것이 느껴져서 서러웠다.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느껴볼만한 감정은 이렇게나 많았는데

그런 감정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왔기에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몰라했던 것이었고

그래서 감정보다는 생각이 앞서 억지로 교통정리를 하려 했던 것이다.


그는 처음에 서럽게 울었고

그 뒤엔 감격스럽게 울었고

그 뒤엔 스스로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감정에 울었다.


그리고 그 상담 시간이 끝날무렵 편하고 옅게 웃을 수 있었다.


비록 몇 개월의 상담이 무미건조한 사막같이 흐르다가

단 하루만에 촉촉한 진심어린 눈물의 날을 맞이했지만

그 몇 개월의 건조한 날들도 다 오늘을 위한 준비였으리라.


그는 스스로가 슬프지 않다고 했지만

그의 감정은 울어야할 때 정확히 울고 있었다


상담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주는 작업이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이든 두려운 감정이든 숨겨져 있는 감정이든

그것을 꺼내 두 눈으로 직시하고,

그럼에도 또 자신의 감정으로 솔직히 인정하며,

자연스럽게 흘려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애당초 상담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이란 개념은 없다.

모든 감정은 그 자체로 정당하며

모든 감정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된다.


상담자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까지 가는 길을 도울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만났을 때는 그 때부터는 홀로 그 감정을 만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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