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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빌 언덕 Jan 30. 2016

상담이라는 여정

상담은 얼마나 관계적인 작업인가!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내담자들은 대개 일정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오기 때문에, 자신이 곧 시작할 상담이란 것이 얼른 문제만 해결하고 돌아갈 수 있는 짧은 작업이 아니라 사실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큼이나 상담자/내담자의 관계를 경험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리란 것을 짐작하지는 못하고 온다.


상담은 문제해결의 작업이기 전에 상담자와 내담자가 긴 시간을 거쳐 의미있는 관계가 되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이라는 것에는 '여정'이라는 별칭이 잘 어울린다.


상담적인 관계란 때로 부부의 관계맺음과 같아서 서로에게 매료되어 어떤 문제든 금방 금방 좋아지는 신혼기가 있고, 서로에 대한 원망이 늘어가며 서로를 탓하는 갈등기도 있고, 익숙해진 것들만 많아져 넌지시 외도를 꿈꾸는 권태기가 있으며, 긴 시간을 함께한 우정 때문에 더 애틋해지는 황혼기가 있다.


내가 했던 상담에서는 2년 넘게 만나온 내담자들을 떠내 보내는 일이 몇 번 있었는데

나를 아빠마냥 따랐던 7살 아이는 의젓한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이젠 선생님하고 노는 것보다 친구들하고 노는 것이 더 재미있어요"'라며 꽤나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나를 떠나갔고, 방황하던 고등학생은 멋진 사회인이 되어 성숙하고 예의바른 모습으로 작별 인사를 했으며, 또 고독한 외톨이로 일생을 살던 청년은 마치 나에게 자랑하듯 처음으로 사귄 애인을 나에게 인사시켜주며 떠나갔다.


모든 내담자는 상담자가 더 이상 필요없을 때 상담자를 떠나간다.

상담이 끝나는 시기란, 곧 상담자가 더 이상 필요없을 때이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상담을 시작할 떄부터 '나는 언제 버림받을까?'를 마음 한 켠에 떠올린다.

그것은 슬프고도 또 매우 기다려지는 설레는 일이다.


중간에 끊어진 아쉬운 상담만 아니라고 한다면 내담자에게 어떤 형태로 버림받든 상담자가 더 이상 필요없어서 떠나가는 내담자라면 자식을 둥지에서 떠나보내는 어미새처럼 마음은 아파도 그래도 반갑고 고맙고 기쁜 마음 뿐이다.


그래서 내담자를 떠나보내는 것이 늘 자식 결혼시키는 것만큼 마음을 허하게 하지만 세상의 모든 상담자들은 언제든지 기꺼이 내담자에게 멋지게 버림받기를 설레며 기다린다.

모두들 내담자가 상담자를 떠나 멋지게 홀로서기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상담을 종결할 때 고맙다는 이야기를 못 들어도 좋다.

그 시간을 비싼 돈을 들여, 혹은 시간을 들여 나를 찾아와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상담자에게는 이미 그것이 훈장이고 칭찬이며 상담자에 대한 최고의 애정의 표현이다.


누군가가 일주일에 한 번씩 그 먼길을 나를 만나기위해 오고,

그렇게 2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한다면 그것이 어디 가벼운 관계일까.

나보고 뭘 배우거나 하기 위해 누군가를 매주 한 번씩 2년 동안 찾아가라고 한다면 나는 못갈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나를 찾아와준 내담자들이 나는 너무 고맙다.


좋은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좋은 '관계'의 향기를 남긴다.

상담자가 해준 조언도 잊혀지고, 울며 하소연한 시간이나 서로 언성을 높인 시간도 잊혀지지만 내담자들은 떠나갈 때쯤에는 대개 상담자가 자신을 어떤 일관된 믿음으로 바라봐주었는지를 느낀다.

그래서 상담을 잘 받은 내담자는 이제는 상담자가 없어도 상담자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봐 준 것처럼

스스로도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상담에서 관계를 건강하게 체험한 사람은 그 경험을 확장시켜서 자신의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도 그러한 건강한 관계를 다시 경험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상담적 관계는 일상 속에서 계속 무한히 재탄생하고 재경험된다.


상담을 통해서 한 사람이 온전해지기는 불가능하지만, 상담을 통해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을 온전하게 만드는 작업은 상담자가 없어도 자신의 건강한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해 나가면 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상담자에게는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날이 오는 것이

가장 기쁜 날이 되는 것이다.


(물론 2년 넘게 만났던 내담자를 떠나보내기라도 한 날 저녁에는

상담자도 누군가와 술잔이라도 기울이며 허한 마음을 달래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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