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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빌 언덕 Mar 26. 2016

감정을 만나기

상담자가 풀어주는 영화 '굿윌헌팅'의 명장면

수학 천재이자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윌헌팅(멧 데이먼)은 여러 심리치료사를 농락한 후 마지막으로 숀 맥과이어교수(로빈 윌리암스)와 상담을 하게 된다. 


둘의 상담 역시 초반에는 힘겨루기로 쓸데없는 시간만 보내는 듯하다가 로빈 윌리암스의 진심 어린 태도에 조금씩 둘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마침내 둘은 같이 웃기도 하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기도 한다. 


상담의 절정이 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멧 데이먼의 핵심적인 문제가 떠오르게 된다. 

사실 멧 데이먼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주기적으로 매를 맞는 학대를 당하였다. 어린아이에게 그것은 너무도 두렵고 수치스러운 감정 경험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아픈 기억을 잊어두며 살기로 했다. 그는 똑똑하고 뛰어났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었던 듯 잊고 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 아픈 감정을 모른 채 살아가기 시작하자, 다른 감정들까지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항상 똑똑하고 비판적이며 자신만만한 - 자신이 설정한 그 캐릭터로 연기하며 살아갈 뿐 자신의 내면의 진실한 감정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잊어버렸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화풍이나 기법에 대해서는 한 시간 동안도 떠들 수 있지만 그림을 보고 어떤 감정이 드는지는 한 마디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로빈 윌리암스는 멧 데이먼의 그런 한계를 첫 만남에서부터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고 외면하는 멧 데이먼의 핵심문제는 영화 내내 반복된다. 

영화의 절정에서, 그러니까 둘 사이에 정말 신뢰가 생기고 서로를 생각해주는 관계가 되었을 때 로빈 윌리암스는 직감적으로 지금이 멧 데이먼의 핵심문제를 다룰 때라고 알게 된다. 


"It's not your fault"


 "I know~"


그의 아픈 과거 이야기를 다루자 멧 데이먼은 떠오르는 아픈 감정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덮으며 지나가려 한다. 하지만 로빈 윌리암스는 그런 모습이 가짜라는 것을 알아챈다.


로빈 윌리암스는 더욱더 눈을 마주 보며 진심으로 반복해서 말해준다.

(그는 왜 그리 같은 말을 반복할까 생각해보라)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일반 시청자들은 이 장면이 로빈 윌리암스가 건네는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대사는 전혀 위로가 아니다. 이것은 어릴 때 상처받을 때의 감정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 그 감정을 만나보라고 건네는 격려의 말이다. 


무섭고 두렵고 수치스러워서 그냥 묻어 두기만 했던 그 감정을 왜 지금 다시 만나야 할까?


왜냐면 그 두려운 감정이 '나 때문',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꼬리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학대 피해 아동들이 종종 보이는 '부적절한 죄책감'의 전형이다. 멧 데이먼이 똑똑한 머리를 갖고 있음에도 주변 사람들과 싸우고, 권위에 도전하고, 학교에 거부감을 느껴 하류 인생으로 전전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자기에게 내리는 처벌이고 징계다. 자기가 스스로의 인생을 망쳐버리는 것이다. 왜냐면 나는 '맞을 만한'  나쁜 녀석이라는 생각이 잠재의식 속에 있기 때문이다. 


로빈 윌리암스는 멧 데이먼이 그 감정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자꾸 등을 떠민다. 멧 데이먼은 자꾸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지면서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그런데 등을 떠미는 로빈 윌리암스가 하는 말은 다름 아닌 "It's not your fault" 이다. 


비록 어릴 때 힘센 아버지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긴 했지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은 내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나쁜 아버지 탓일 뿐이다. 그래서 비록 매는 맞았어도, 나는 매를 맞아 마땅한 아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로빈 윌리암스는 멧 데이먼과 함께 과거의 감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부적절하게 감정에 달려있던 꼬리표를 떼어준다. 그 부끄럽고 무서웠던 감정은 이유와 설명이 필요 없는 - 그저 누군가 같이 울어줄 사람만 있으면 충분한 감정이었다. 

 


자신이 그런 큰 일을 당할 때에 그래도 나를 비난하지 않고, 네 탓이 아니야라고 하며 편을 들어줄 사람을 만났기에, 멧 데이먼도 용기를 내서 자신의 감정을 만났고, 자신의 감정에 필요한 충분한 눈물과 애도를 할 수 있었다. 어릴 적 멧 데이먼 자신에게 외면당하여 그저 구석에 묻혀 있었던 큰 슬픔이 그 긴 시간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묻혀 있다가, 로빈 윌리암스와 함께 울면서 비로소 온전히 다 나오게 되었다. 


감정은 굳이 어떤 꼬리표를 붙여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미션이 아니다. 

감정은 굳이 원인과 결과를 밝혀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감정들은 그냥 그 자체로 자신의 주인이 자신을 만나주기를 원한다. 


두렵고 큰 감정들은 때로 우리를 집어삼켜 우리의 삶까지도 망쳐버릴 것 같아 두렵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잘 만나지 않으려고 외면하지만. 사실 감정은 - 그저 온전히 만나주기만 하면 땅을 충분히 적신 후 제 갈 길로 알아서 흘러가 버린다. 


감정은 만나고, 경험하고, 흘려보내면 충분한 것이다. 


영화 굿 윌헌팅은 시종일관 감정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적이지만 감정은 없던 멧 데이먼이 로빈 윌리암스를 만나면서 자신의 감정을 하나씩 만나게 된다. 


어릴 때의 상처 입은 감정뿐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감정,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희열, 친구와의 끈끈한 우정 등 보통의 사람으로서 느끼고 누려야 할 감정들을 하나씩 회복해가는 것으로 영화는 흘러간다. 


멧 데이먼이 수학 천재라는 설정은 그저 그를 호기심 가는 캐릭터로 만들기 위한 설정이 아니라, 그만큼 그가 감정이라는 것과는 먼 세계로 도망가버린 이야기를 하기 위한 설정이기도 하다. 


영화를 다시 한 번 볼 기회가 있다면 멧 데이먼이 여러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자신의 진짜 감정을 찾아가는지를 유심히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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