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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빌 언덕 Mar 30. 2016

내면에서 세상 밖으로

심리학자의 세상 밖 모험(1)

늘 상념에 사로잡혀 마음의 감옥에만 머물러 있던 내담자에게 어차피 쉽게 답도 안 나오는 상념은 잠시 멈춰두고, 거리를 다니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나 요즘 유행하는 것들에도 눈을 돌려 보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그게 그렇게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상담을 하면서 내면이 건강해지기 시작했던 내담자들은 하나 같이 그들의 시선을 마음에서 세상 밖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쩌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마음을 그만 들여다보고, 그저 남들은 무슨 재미로 사나 둘러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상처 입었기 때문에 마음으로 도망쳐 돌아온 사람에게 다시 세상으로 눈을 돌려 보라니 어쩌면 내가 틀린 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심리학을 배우고, 심리학으로 사람들을 상담해주면 마음 한 켠에는 그놈의 심리학이 너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남들은 큼직 큼직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미하고 섬세한 변화들을 가지고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내면으로 도망 온다. 나도 그랬다. 내면에 온 이상 충분한 기간 머무를 필요가 있고, 충분한 작업을 해볼 필요도 있다. 자신의 내면의 공간을 넓히는 공사도 해야 하고, 그 내면에 더 다양한 것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기존의 것들을 비우는 일도 해야 한다. 좋지 않은 냄새가 나거든 그것도 치우고, 비밀스럽게 쌓아둔 것들은 치우던지, 더 깊이 감추던지 해야 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면으로 도망 온 때가 있듯이 내면을 나가야 하는 때도 반드시 돌아온다. 사람은 내면에서만 살 수가 없다. 내면에만 머무르려고 하면 그것은 자폐증이 되고, 정신분열증이 된다.


내가 학부에 입학했을 당시 내 전공은 전형적인 심리학과가 아니라 산업심리학과였었고, 경영학부 안에 속해 있었다. 나는 심리학 일반 과목들과 동시에 경영학과 회계, 마케팅 등에 대한 과목도 수강해야 했었는데 비록 좋은 성적은 못 받았어도 돈으로 세상이 움직여지는 학문에 대해 듣는 그 수업들이 묘한 매력이 있었다. 너무 내면에 골몰하여 지루하고 답답할 때마다 그런 심리학과 정반대에 있는 듯한 그 세속적이고 물질적이며 비인간적인 주제들이 나의 현실감각을 생생하게 살아있게 해주었다(돈이란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가!)


그런 영향은 후에도 계속 강렬한 영향으로 내게 남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수련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필드에서 나만의 상담과 치료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나갈 때 나는 경영학 수업의 도움을 받았다. 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데리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그들로 하여금 '장사'를 시켰다. 아이들은 장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필요한 사회적 기술들(손님을 대하는 요령)을 배웠고, 자신이 노력한 만큼 자신의 손에 돈이 들어올 때 강력한 성취감을 느꼈으며, 쓸데없이 골몰하던 내면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이 얼마나 유능한 존재인지, 세상은 또 얼마나 재미있는 곳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돈'이란 것은 종종 상담자의 감동적인 멘트나 조언보다 사람을 더 각성시키고, 일깨우는 강력한 매력을 가진다.


나는 비행청소년들에게 주식투자를 게임으로 가르쳤고, 자존감이 낮은 학생들에게는 세일즈를 시켰으며,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부모를 손님으로 모시는 레스토랑을 운영시켰고, 왕따를 당한 아이들에게 왕따를 주제로 한 보드게임을 만들어 팔게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은 상품이나 우승을 위해 열을 올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활동 자체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돈과 장사를 매개로 한 나의 상담 프로그램은 한 번도 지루했던 적이 없었다. (세상에 돈 버는 게 지루한 사람이 있는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세상을 이해해야 하고, 세상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오래된 내면의 문제들이 일으키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세상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건강해져 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면에 대한 초점과 외부 세상에 대한 초점이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사람은 가장 건강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내면의 문제를 찾으러 상담을 받으러 오지만, 나는 종종 내담자들과 함께 세상 탐험하기를 좋아한다. 내담자들이 탐험하고 와서 내게 들려주는 세상 모험기를 듣는 시간이 가장 좋다. 일주일 내내 누군가의 내면에서 살아야 하는 상담자에게, 상담자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의 이야기란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가! 어떤 때는 그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내가 돈을 내고 이야기를 들어야할 것 같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세상 모험기를 재미있게 들을수록 그들도 더 적극적이고 건강한 모험가가 되어갔다. 그래서 나의 상담은 종종 내면에서 시작해서 세상 밖 모험 이야기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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