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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빌 언덕 May 11. 2016

심리학자가 회사원에게

조금 노골적인 파이팅!

(이 글은 대한민국에서 회사 생활을 열심히 견뎌내고 계신 모든 회사원분들에게 드리는 위로이며, 찬사이고, 선망의 고백입니다. )


대학 3학년이 되었을 무렵 나는 진로를 고민했었는데 광고회사에 갈지, 심리학과 대학원을 가서 상담의 길을 갈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높은 빌딩이 줄지어 있는 여의도 같은 곳에서 폼나는 사원증 목에 걸고, 점심이면 빌딩 앞으로 나와서 커피를 마시며 회사 욕도 하고, 여름휴가 계획도 이야기하는 그런 평범하고 멋진 회사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광고라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 직업으로 삼아도 나름 재미있게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내가 회사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흔히들 이야기하는 회사 생활의 어려움이 떠올랐다. 실적을 쪼아대는 직장 분위기, 싫어도 가서 웃고 어울려야 하는 회식들. 매번 내 가치를 입증하지 않으면 잘릴 것 같은 불안감. 사람을 힘들게 하는 다양한 직장 내 또라이(?). 냉엄하고 냉철한 사회에서, 수익을 올려야만 월급이 나오는 그런 사회에서 나는 무던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상담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회사생활이 무서워서 결국 취업의 길로 가지 않았다. 그리고 상담의 길을 가는 동안에도 길거리에 높이 솟아올라 있는 빌딩들을 볼 때마다 내가 만약 그때 취업을 준비하고 회사원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너무 겁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나 자주 생각했다.


회사원은 못 되었지만 상담자가 되니 회사원을 상담하게는 되었다. 회사 다니는 사람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듣게 되었다. 꼭 상담장면에서 뿐 아니라 회사원인 내 친구들의 이야기도 듣고, 주변의 다양한 곳에서 회사원들의 고충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는 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예를 들면 나는 군대 가기 싫어 꼼수를 부려 병역면제를 받았는데, 군대 가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볼 때의 미안하고 측은한 감정이었다. 상담자가 되기 위한 길도 사실은 만만치 않고, 어렵고 힘든 것이 많지만 그래도 그것은 전방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왠지 후방에서 고생하는 느낌이 들었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상처 입고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다. 전쟁터의 부상병과 같다. 그 사람들은 내게 의지하고, 마음을 털어놓으며 또 때로는 나를 대단한 듯 볼 때도 있다. 마음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주는 사람이 언뜻 능력자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늘 그들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험한 곳에서 그래도 이렇게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견디는 사람들이구나. 나 같으면 못 견뎠을 그곳을. 나는 가보지도 않고 포기한 그곳을.


대한민국 회사원만큼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있을까. 각박한 회사 생활 자체도 힘들지만 가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가족의 인생에 대한 부담감 역시 크다. 사회적 지원은 약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내가 견디지 않으면 우리 가족 전체가 일시에 몰락할 수 있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합리적이고 온정적인가? 그렇지 않다. 개인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인정받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직장 생활이 내 인생의 사이클과 맞지 않아 준비되지 않은 때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때도 있다. 너무나 열심히 견뎌온 직장 생활을 너무 짧고 쉽게 마쳐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회사원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너무 대단한 일이고, 박수와 칭찬을 받기 충분한 일이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대한민국 회사원에 대한 안쓰러움과 존경은 동료 상담자들과도 종종 같이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때로 상담자는 상담받으러 온 회사원들에게 "용감하게 한 번 시도해 보세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라는 격려를 해준다. 그러나 단언컨대 상담자는 생각보다 겁이 훨씬 많고, 상담받는 회사원은 이미 더 많은 영역에서 더 많은 용기를 발휘했으리라. 현실의 후방에서 살고 있는 상담자에게는 멈추고, 고민하고, 헤아려볼 여유가 있지만 전방의 치열한 현장에 바로 투입되어 아침마다 닥쳐오는 현실을 바로 살아내야 하는 회사원들에게는 그것이 없으니까.


'내가 그렇게 힘든 생활을 견디고 있는 건가?' 그렇게 미처 생각도 못한 회사원이 있다면 다시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회사원으로 살아가면서 충분히 많이 고되고 힘든 생활을 멋지게 잘 견뎌내고 있으며, 그래서 충분히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다.


가끔 직장 생활이 힘들 때, 여기에 직장생활을 견뎌내고 있는 당신을 무한한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초딩같은 어른도 있음을 기억해달라.


(이미지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GtxZbYMCi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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