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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빌 언덕 Aug 22. 2016

감정 그 너머

상담실 이야기

상담작업은 대개 감정이 중심이 된다


상담실에는 온 사람들은 감정에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슬픔이 아닌 분노에 가득 차 열변을 터뜨리는 사람조차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상담 초반의 작업들은 주로 감정들을 다루는 일이 된다. 상한 감정은 먼저 공감받고 위로받아야 한다. 급한 불부터 끄는 일이다. 그리고 누구의 감정이든 선별 없이 존중받는 일이다.


감정의 급한 불을 끄고 나면 조금 힘이 생긴다. 내담자들은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았다고 느낀다. 현실적으로 그 단계에서 많은 수의 상담이 끝이 난다. 지지받고 위로받은 것만으로도 현실을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상담이다.


그런데 거기서 선택이 주어진다.


더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감정을 위로받은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큰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상담자는 뭔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태도를 보인다. 내담자는 자신은 감사하고 흐뭇한 감정으로 충만한데 상담자는 웬일인지 뭔가가 더 남았다는 묘한 태도를 보인다. 처음으로 내담자와 상담자의 감정이 일치하지 않는 일이 벌어 진다. 내담자는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내담자는 어느새 상담자가 자신의 내면세계에 한 발자국 더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방어적인 감각이 좋고 민감한 내담자는 그렇게 상담자가 자신의 경계에 들어오기도 전에 감정만 위로받고 상담실을 쿨하게 떠난다.


그보다 마음을 열었던 - 그러나 마음을 완전히 열 마음은 없었던 내담자는 상담자와 관계가 깊어지는 조짐을 느끼고는 당혹감 또는 불쾌감을 느끼면 반발한다. 그래서 그 경계에서 잠시 혼란을 겪다 상담실을 거칠게 나간다. 왜 남의 인생에 참견이냐고 하면서.


마음 열기에 주저하지만 동시에 상담적 관계에 신뢰가 있던 내담자는 상담자의 낯선 발자국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둘은 감정을 넘어 내담자의 내면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가 먼 여행의 시작이다.




상담에서 오랜 기간 다루어지는 것은 먼저 왜곡된 신념이다. 신념은 대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향보다는 당장의 쉽고 안전을 위해 삐뚤어진 모양으로 자라난다.


뼈가 휘어도 그 모양에 익숙해져 버리면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하다. 그대로 살고 싶어 진다. 그리고 그것을 건드려 바로잡는 일은 그야말로 대수술이 된다. 그래서 감정적인 저항만큼이나 신념에서의 저항도 강력하다. 상담에도 종종 톱과 드릴이 사용된다.


잘못 해석되고 윤색된 과거의 기억을 바로잡는 일도 만만치는 않다. 기억은 격한 감정으로 범벅이 되고 왜곡된 신념으로 재단되어 있다. 그것을 풀어야 한다. 과도하게 덧칠된 색을 지우고 묶인 부분을 풀어내면 보다 자연스럽고 중립적인 기억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때는 사소하고 소중했던 - 그러나 묻혀있던 부분들이 살아나 내 기억 속 내용이 보다 풍성해진다.


변화된 행동을 연습하는 것은 흡사 재활 훈련과 같다. 상담의 후반기에 내담자들은 매우 많은 연습들을 한다. 누군가는 처음으로 부모님께 대드는 연습을 하고 누구는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 누구는 거절하는 연습을 하고, 누구는 타인을 안아주는 연습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것이 누군가에게는 죽기보다 어렵다. 그러기에 상담의 전 과정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드라마틱한 시간은 공감받아 펑펑 우는 순간이 아니라 이렇게 노력하고 노력해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순간이다.




상담이 감정의 작업인 줄로만 알고 왔다가 실망하는 내담자들이 많다. 내 감정 공감해줄 때는 좋은데 그 이상의 작업을 하려면 상담자가 날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 싫어진다. 변하고 싶지 않다. 저항이다.


물론 상담자는 내담자가 그 이상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동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에 많은 책임은 상담자에게 있다. 그러나 내담자 역시 상담이란 것이 달콤한 꿀만 얻어가는 쇼핑 같은 일이 아닌 - 평생 익숙했던 그 무엇들을 처음으로 건드려보는 시작인 것을 알아야 한다.


감정으로 시작된 상담이 지루해진다고 실망하지 말라. 감정은 상담 기간 내내 등장하고 다루어진다. 그 길고 대단한 여정에 있어서 감정이란 상담자와 내담자가 지치지 않게 해주는 샘물이며, 내면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생생하게 알려주는 이정표이고, 상담의 마지막에 받을 수 있는 가장 달콤한 보상이기도 하다.


상담자가 내 입은 옷을 칭찬해줄 때도 기쁘겠지만 상담자와 히말라야를 마침내 함께 오를 때 느끼는 기쁨에 비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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