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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빌 언덕 Sep 07. 2016

마음의 통각(痛覺)

아파할 줄 아는 능력

섬세한 우리 마음


상담실에 오는 사람들은 느끼고 있는 고통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어서 찾아온다. 그러나 상담 작업 중에는 그 급한 고통을 당장 해소하기보다는 고통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빈번하다. 그리고 종종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던 사람들일수록 고통의 감정을 섬세히 헤아려보는 데 전문가가 다 된 사람들이 많다.


사람은 동물보다 더 민감하게 마음의 고통을 느끼고, 심지어 그것을 헤아려 볼 줄도 안다. 개가 사람보다 만 배가 더 민감한 후각 세포를 갖고 있듯이, 사람은 동물보다 만 배나 더 민감한 마음의 통각(痛覺)을 갖고 있다. 동물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들이 사람에게는 속상하고 아프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되곤 한다. 왜 사람만이 이렇게 유독 더 민감한 마음의 통각을 가졌을까? 그것이 혹 생존에 어떤 도움이라도 되는 것일까?


통각이 있는 이유


한국사회에서 고통이란 빨리 극복하고 털어버려야 할 것으로만 여겨진다. 나를 속상하게 하는 일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털고 일어나는 것이 좋은 일이고, 나를 공격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쿨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멋진 모습이다. 다들 느껴지는 고통의 감각에 대해 둔감해지라고만 한다. 창조주가 또는 진화의 손길이 애써 인간에게 선물로 안겨준 그 타고난 감각에 대해 - 아무도 그게 왜 우리에게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피부는 자연계에서 살아남기에 영 적절하지 않다. 보온력도 없고, 상처도 잘 나며, 빛이나 오염에 대한 저항성도 떨어진다. 그러나 인간의 피부는 두터운 털을 포기하는 대신 민감한 촉각을 얻었다. 이것은 인간의 섬세하게 생긴 손가락과 함께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하는데 첫 째는 도구를 섬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둘 째는 인간과 인간의 스킨십을 보다 긴밀하게 해 준다. 털도 하나 없이 나약한 몸뚱이로 정글에 놓인 인간이지만 도구의 사용과 사회적 유대감을 통해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설 수 있었다. 약점이 강점이 되는 것이다.


마음의 여린 통각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도 이와 같은 원리로 찾을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큰 해악이 없는 일에도 인간은 울고 아파한다. 게다가 자신의 고통에 아파하는 것뿐 아니라 심지어 남의 고통에도 자신의 고통과 같은 - 때로는 그보다도 더 아프게 반응한다. 이러한 공감이라는 현상은 생명체가 갖고 있는 장치 중 가장 복잡하고, 가장 발달된 장치이다. 개의 후각세포도 인간의 이런 장치에 비하면 한 낱 장난감같이 여겨진다.

 

인간의 마음의 통각은 자기 자신의 문제만을 아파하기 위해 탄생하지 않았다. 진화론이나 종교적인 설명 모두의 관점에서 그렇다. 인간의 마음에 통각이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기 위해서이다. 서로의 고통을 헤아려주면서 우리는 더욱 긴밀한 관계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마음의 통각을 좀 더 다른 관점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연결성의 발견


영화 ‘울지 마 톤즈’에는 아프리카에서 한 평생 원주민들을 돌본 가톨릭 신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원주민에게 나눠 준 진심이 얼마나 깊었던지 그 마을의 모든 사람이 그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한다. 신부가 원주민의 아픔에 함께 통각을 느꼈고, 나중에는 원주민들도 신부의 죽음에 같은 통각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개인의 아픔이 유대감을 통해 함께 나눠 전해질 때 고통의 감정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감정으로 변해갈 수 있다. 마음의 통각은 고통을 단지 느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나누기 위해 있는 것이다.


사람이 갖고 있는 마음의 통각은 단지 동물보다 더 민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떨어져 있는 사람과도 감각을 나눌 수 있는 초능력적인 힘을 갖고 있다.


저 멀리 본 적도 없고, 나와 상관도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것이 마음 아파서 한 달에 얼마씩이라도 기부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이 내게 하소연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똑같이 아픈 것이다.


통각이 주는 선물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특별하고 고귀한 종류의 감정 - 예를 들면 헌신이나 숭고함, 긴밀한 유대감, 성취감, 희열, 깊은 만족감 등은 사실은 고통의 감정과도 그 뿌리를 맞대고 있다. 느껴지는 고통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통과해냈을 때 그런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감정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이 반대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감정의 진수를 알 수 있을까? 그러니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야말로 행복을 느끼는 감각과 앞뒷면과도 같다.


반대로 마음의 통각이 없는 사람들 - 사이코패스와 같이 심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 마음의 통각을 절단시켜놓고 사는 사람들이 어떤지만 생각해봐도 우리가 갖고 있는 통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이 없을 때 우리가 얼마나 잔인하거나 무지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늘 잊지 않아야 한다.


상담실에서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말한다. "왜 나만 이런 일에 더 힘들어하는지 모르겠어요", "나에게는 유독 이런 일들이 더 힘들게 느껴져요" 어쩌면 그들은 남들보다 더 상처 입은 사람들이기 전에 남들보다 더 섬세한 마음의 통각을 가진 사람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섬세한 통각을 가진 사람들을 나는 나약하고 모자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있고, 색감의 안목이 탁월한 사람이 있듯, 마음의 감각에 대해 더 예민하고, 마음에 더 많은 의미를 두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가진 마음의 통각은 엄연한 우리의 능력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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