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빌 언덕 Jul 02. 2017

나를 긍정해준 사람

놀이치료 이야기

그 여자아이는 내 첫 놀이치료 대상자였다. 말로 하는 성인상담은 수련과정에서 배웠지만 아동 놀이치료는 처음이었다. 나 같은 초보 상담자를 만나게 된 아이에게는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아직 치료실 물품도 다 갖추지 못한, 임시 오픈한 공공 센터여서 '치료실'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아이를 만나야 했다. 여자 아이니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할까 싶어서 종이와 색연필을 미리 준비했다. 


드디어 시간이 되어 아이가 들어왔다. 도벽 등의 여러 행동 문제로 센터를 찾은 여자 아이였다. 상담이란 걸 처음으로 받아 보는 아이와 (놀이치료)상담이란 걸 처음으로 해 보는 상담자 간에는 서부 총잡이들 보다 더 더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림이라도 그리며 이야기 나눠볼까? 하며 건넨 종이를 한 참 보더니, 아이는 종이를 들고 나를 빤히 봤다. 


찌...... 익.


보란 듯이 내 앞에서 종이를 찢었다. 느리게 조금씩 찢으면서도 계속 나를 봤다. 정말 보란 듯이. 

상담자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아. 이건 내가 배운 상담 이론서에 없던 행동인데? 그림 그리는 종이를 찢어버리는 건 잘못된 행동일까? 혼날 행동은 아닌 것 같은데? 뭐 하자는 메시지이지? 


상담자의 머리 속에는 그 짧은 1~2초 동안에 몇 년 간 배운 수십수백 가지 상담 이론들이 스쳐갔지만 다 부질없었다. 


'그냥 아이 하는 대로' 

그냥 그 생각이 났다. 


아이의 행동이 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에는 그냥 아이를 따라 하면 된다. 문제도 아이가 내고, 답도 아이가 낸다. 


나도 아이를 빤히 보면서 종이를 찌익 느리게 찢었다. 그냥 아이를 똑같이 따라 했다. 나의 이런 반응에 아이는 깜짝 놀라더니 곧 신나고 우쭐한 표정이 되어서는 있는 종이를 마구 마구 찢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넉넉히 준비한 종이를 모두 찢어 버렸다. 곧 우리 앞에는 수북이 쌓인 종이 눈송이가 날렸다. 


종이 찢기가 끝나자 우리는 종이로 눈싸움을 했다. 방안은 온통 난장판이었지만 우리는 까르르 웃으며 신나게 놀았다. 물론 상담자의 머리 한쪽에는 '이거 언제 다 치우지?' 하는 근심이 남아 있었지만. 


내가 감동을 받았던 것은 그 이후였다. 한 타임의 놀이가 충분히 만족스럽게 끝난 후, 아이는 나와 함께 힘을 합쳐 방을 깨끗하게 치웠다. 종이 가루를 모두 모아 깔끔하게 버린 후 아이는 "선생님, 오늘 진짜 재미있었어요~ 다음에도 또 놀아요~"하며 웃으며 방을 나갔다. 


'내가 오늘 뭘 한 거지?', '잘 한 건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놀이치료에서 아이가 행복했으면 뭐 된 거 아닌가? 


아이는 엄한 조부모 밑에 자라면서 집에서 한 번도 맘 편히 뛰놀지 못했다. 늘 혼나거나 제지당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쌓인 불만은 학교에서 터졌다. 애들을 때리고, 물건을 훔치고, 거친 말을 했다. 선생님에게 불려 가 혼나는 것이라도 아이에게는 그것도 관심의 일부로 여겨졌다. 그래서 문제 행동은 나날이 커졌다. 


놀이치료실에서 아이는 나를 실험했다. 이전에도 어른들은 자신을 늘 혼내고 제지했으니, 처음 만난 저 놀이치료 선생님도 같지 않을까? 하며 그림 그릴 종이를 찢었다. 도발적인 눈빛과 함께. 


그런데 놀이치료 선생님은 자신을 혼내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고스란히 관찰해 그대로 따라 했다. 혼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선생님이 온통 관심을 가져주니, 아이는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종이 눈싸움은 더욱 만족스러웠다. 


놀이가 끝나고, 아이는 매우 흡족해졌다. 놀이도 신났고, 혼도 나지 않았으며, 많은 관심도 받았다. 마음이 흡족해지니 어질러진 방을 치우는 일도 즐거워졌다. 


아이의 살아온 이야기와, 그 치료실에서의 반응과, 내가 했던 반응이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아이를 제지하거나, 다른 어른들 같은 반응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뭘 제대로 알고 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참 잘했다.  


그 전부터도 아동 상담에 관심이 많았었지만, 그 첫 상담의 기억 때문에 나는 그 뒤로도 계속 아동, 청소년 상담을 즐겁고 감동적으로 할 수 있었다. 

이전 09화 심리학 글이 싫은 이유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