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진로상담을 받는 평균 연령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엔 20초 중반이 많았다면 지금은 30대에서 40대 초반의 분들도 많이 오신다
최근 카이스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분이 오셨다.
계속 이어서 할지 다른 전문직으로 바꿀지 고민이 된다는 이유다.
박사과정까지 하면서 진로 고민을 하게 된 이유는
지금 연구하는 쪽이 앞으로 전망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을 감지하고 나서다.
이후 마음이 불편하고 연구에도 집중하기 어렵다고 했다.
생애 최초로 인생에서 가장 게으른 시간을 보낸다고 하였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곧 잘하고 재미있었다고 한다.
성적 스트레스 수험 스트레스가 있긴 했지만 노력하는 것에 엄청 힘들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결과에 잘 나오는 편이라 수험기간도 괜찮았다.
서울대, 카이스트, 스탠퍼드대를 나온 분과 꽤 만났기에 어떤 느낌인지 짐작이 갔다.
공통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라는 표현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했고 그냥 외워졌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너무나 공감되는 이유도 공부도 재능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쉽게 이해와 암기를 하고 공부에 몰입되며 인내하는 것 이 모두가 재능에 영역이다
그리고 이상한 건
학창 시절 노래, 꿈, 미술, 체육을 잘하는 사람에겐 재능이 있다에 동의하면서
왜 공부는 유독 노력만이 답이라고 할까?
그러다 보니 공부의 재능이 없는 수많은 학생들이 너무 고통받고 있다.
암튼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시 돌아가서
이 분은 컨설팅 결과 논리, 통계, 엔지니어 분야가 높았다.
조직 적응도나 다른 기타 검사에서도 중간이었기에 특별히 주의를 해야 할 것도 사실은 없었다.
회사를 다닌 후 자기 일을 해도 괜찮을 만큼 좋았다.
단, 성향이 조금 걸렸다.
완벽주의 기질과 불안도와 부담감이 높은 점이다.
눈에 확실히 보이고 해야 할 스케줄의 전략이 완전하게 짜여야 마음을 편한 타입이다
학교 다닐 때 스케줄을 짜고 그날 모든 것을 클리어하는 느낌 오늘도 다 해냈라는 느낌이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지금은 선택지가 많으니 도통 길을 잃는 느낌이라 힘들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래 전망을 보고 선택한 연구가 점점 하향세다 보니 더욱 불안하고 초조함을 느꼈을 것이다.
몇 번의 컨설팅을 받았고
특히 성향적인 부분이 진로에 치명타로 올 수 있기에 내면 쪽으로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암기와 이해력이 탁월하기에 전문직 커리어도 좋다.
분야도 엔지 지어와 통계 쪽이기에 선택지도 많은 편이다.
세무사 회계사 감평사 로스쿨 공대 관련 박사과정 코스 등 등
나는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진로방향 설정 때 나의 한마디는 꽤 파급력이 높다.
그래서 항상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이 케이스는 사실 본인의 성향과 기호에 따라 얼마든지 진로를 디자인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었다
컨설팅 후 한 달 정도는 미션을 준 것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메일을 보내면 내가 다시 1:1로 피드백해준다.
세상의 트렌드를 감지하고 진로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자체가 경주마처럼 공부만 했기에 딴짓을 하지 않는 모범생은 다른 세상 자체를 모른다.
이 분에게도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이 들었다.
서점도 가보고 잡지도 도서관도 가보되 도움 되는 거 해야 할 일에 초점을 두지 말고 1달 간은
자기에게 집중해 보는 시간을 갖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낀 점 나 궁금한 점을 보내주면 다시 컨설팅을 해드리겠다고 말했다.
딱 한 달만 이라는 기간을 줬다.
그리고 2일 후 문자가 왔다.
'계속 책을 읽으라고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이 되고 초조하고 자기만 뒤처져 있는 것 같다'는 메시지다.
바로 문자를 받은 후 통화를 했다. 도대체 한 달 동안 좋아하는 것을 좀 해보라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말이다. 그분은 너무 힘들다며 뭐라도 좋으니 다른 빡빡한 미션을 달라는 요구였다.
하루 종일 뭔가를 해야 되는 일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말이다.
이렇게는 안된다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한 달 한 달 스케줄이 잡혀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에 휴가를 반납하고 얼굴을 보자고 했다.
몇 시간 동안 진로에 대한 조급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시간에 무엇을 넣으려고 하지 말라고
그렇게 안 해도 된다고
그림도 너무 다 채우면 오히려 멋이 없다고 여백이 있어야 한다. 고 말이다.
진로에도 여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숨통이 트여 앞이 보이고 미래가 그려진다.
제발 한 번만 나를 믿고 한 달 간만 여유 있게 지내보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고 그는 돌아갔다.
다행히 강릉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본다는 연락이 왔다.
언제든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땀이 나는 증세 가 온다면
나에게 메일을 보내라는 안전장치를 주고 그는 생애 최초의 휴가를 즐겼다.
그리고 지금은 왜 그렇게 말을 하고 이런 시간을 보내게 했는지 알 것 간다면서 너무 고맙다는 메일이 왔다.
평생 현실에 숙제만 하다가 고리타분한 삶에 치여 살았을 뻔했다고
너무 무섭다고 큰일 났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나도 답메일을 했다.
삶을 너무 빡빡하게 살지 말라고
국물도 어느 정도 낭랑해야 맛있지 않냐고
인생에 정답만 옳은 것만 잡으려고 하면 안 된다.
소금이 들어가면 음식이 맛있어진다.
그리고 소금, 설탕, 후추, 고춧가루 등 여러 가지 재료들이 어울러졌을 때 비로소 완전한 맛을 내게 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한 가지에만 몰입하면 위험하다.
여러 가지 경험도 해보고 눈에 담아 가다 보면 정말 자신의 무언가가 그때서야 보이기 시작한다.
포기하기 위해 , 무엇을 더 담아야 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여백이 필요하다.
한 달로 예정했던 강릉 살기를 6개월로 연장되었다.
지금은 박사 연구는 잠시 미뤄두고 스타트업에 취업을 해서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최근 다시 메일이 왔다
몸이 피곤하고 일이 힘들지만 왜케 삶이 즐거운지 모르겠다고 그냥 예전과 다른 에너지가 나서 너무 좋다는 것이다.
덩달아 나도 엄마미소가
인생엔 때와 시기가 있다.
쉬지 말고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할 순간이 있다.
그런데 전 일생을 계속 그렇게 산다면 참 별로다.
진로엔 반드시 여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