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문 안에서> 제15장. Power와 Force
정수 실장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영애는 순간 긴장했다.
식탁 사건, 전화 받았나?
문을 열자마자 정수는 말을 쏟아냈다.
“결국 상담만 하다 등교도 못 해보고 방학했네요. 그냥 두면 2학기에도 못 나올걸요? 병가 처리도 한계가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상담자가 애들한테 끌려다니면 안 되죠. 그건 존중이 아니라 방임이에요. 옳고 그름은 가르쳐야지, 욕먹을 각오로요!”
영애는 등교가 상담의 목표냐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논쟁을 피하려 그 말을 꾹 삼킨 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란다고 하겠어요? 원해야 하죠.”
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원할 때까지 기다린다고요? 영원히 학교 안 가면요? 영원히 공부 안 하면요?”
“실장님.”
영애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하진이가 하란다고 했으면, 애초에 여기 오지도 않았겠죠. 그 아이도 얼마나 잘살고 싶겠어요. 살아갈 힘이 생기면, 가지 말라고 해도 가겠죠.”
정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릴 건데요? 그럼 애가 평생 안 간다고 하면 그냥 두자는 겁니까?”
낯을 붉히며 뭔가 더 말하려던 그녀는,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하진을 보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문이 살짝 열렸다.
“정수 실장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엄마랑 통화도 하던데…”
걱정스러운 눈이었다.
“내가 그분하고 불편할까 봐 염려되니?”
“네.”
“고맙구나.”
하진은 눈으로 웃었다.
“선생님… 저, 기생충은 아니죠?”
영애는 찡그린 웃음을 지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제가 기생충 같아서요.”
“그래? 더 자세히 말해줄래?”
하진은 손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저는…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좀 다르게 살고 싶니?”
“네.”
영애는 하진을 데리고 자리에 앉아 말했다.
“엄마의 통제에 저항해서 네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
“네.”
“그렇구나. 저항으로 네 힘은 보여줄 수 있었지만, 네 삶이 망가지는 것 같아서?”
“네.”
“남을 이기는 힘은 진짜 힘이 아니니까…. 외부 통제는 내 힘 욕구는 충족하지만, 남의 욕구는 좌절시키니까… 사랑을 잃게 되고, 사랑을 잃은 사람은 초라해지거든. 진짜 힘은 어디서 나오냐면…”
영애는 하진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행동을 스스로 해내는 힘, 그게 내적 통제력이거든. 이런 힘을 가진 사람은 결국 사랑도 따라오거든. 그런데 말이지….”
영애는 시선을 멀리 두었다.
“내가 이기려는 ‘남’은 눈에 잘 보이지만, 내가 이기려는 ‘나’는 눈에 잘 안 보여서.”
영애는 하진을 보며 말했다.
“쉬운 거 하기가 더 쉽겠지? 많은 사람이 자신보다는 남을 이기려 해서 불행해진다니까….”
영애는 표정이 밝아졌다.
“너 BTS 좋아하니?”
“그럼요.”
“그 멤버들도 분명히 ‘죽겠다, 더 이상 못해’ 하면서 포기하고 싶었을 거야. 하지만 결국 싸웠겠지. 누구랑 싸웠을까?”
“자기 자신과요?”
영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김연아 선수가 훌륭한 이유도 바로 그거겠지? 남과 싸우지 않고, 어제의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거….”
영애는 문득 말을 멈췄다.
가르치는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서다.
정수의 질책이 마음에 걸렸던 걸까?
하진의 행동을 빨리 바꾸고 싶어 조급해졌던 건 아닐까?
영애는 멋쩍어하며 웃었다.
“내 말이 좀 길었지?”
하진은 어깨를 들썩였다.
“괜찮아요. 재밌어요.”
하진은 미소를 짓더니, 벽에 붙은 표를 가리켰다.
“저기, Force와 Power 얘기하신 거죠? 부정적인 정서는 Force, 긍정적인 정서는 Power. 정말 그래요?”
영애도 그 표를 바라봤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의 지도’였다.
“어떻게 그렇게 연결했어? 너, 내 제자 할래?”
“제가요? 정말요?”
하진은 깊은 눈을 크게 떴다.
영애는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렸다.
오후 햇살이 하진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 따스한 빛 속에서, 하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선생님, 근데 부정적인 정서가 왜 Force예요? 부정적인 정서는 불행한 마음이고, Force는 강요하는 힘인데요?”
영애는 부드럽게 웃었다.
“불행이 어떻게 힘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 거지?”
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어. 많은 사람이 불행을 피해자와 동일시하고, Force를 가해자와 동일시하거든. 하지만 하진아 한번 생각해봐.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내가 선택한다.’라는 말을.”
영애는 하진을 쳐다봤다.
“불행한 느낌도 전행동의 한 요소니까 내가 선택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 선택에도 목적이 있을 거야. 무슨 목적일까?”
“욕구 충족이요?”
“맞아.” 영애는 실눈으로 웃었다.
“사실 불행한 마음도 일종의 외부 통제일 수 있거든. 자신의 불행한 감정을 이용해 상대를 움직이려는 힘으로 사용하니까.
영애는 말을 이었다.
“너는 누가 행복하길 바라?”
“엄마, 아빠, 형이요.”
“그들이 불행해 보일 때 어떤 마음이 들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웃었으면 좋겠어요.”
하진은 기도하듯이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
“내가 뭘 하면 그들이 좋아할까 고민해요.”
영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렇지. 불행해하기는 말 대신 보내는 신호인 거지. ‘내가 행복해 웃는 모습을 보려면 네가 행동을 바꿔야 해.’라는 무언의 압력.”
하진이 눈썹을 올렸다.
“일종의 협박이네요?”
영애는 미소만 지었다.
“엄마가 친구랑 통화할 땐 웃다가, 아빠가 들어오면 표정이 굳는 거… 본 적 있니?”
“그럼요.”
하진이 삐죽 웃었다.
“그러면 아빠가 엄마 눈치를 보면서 조심해요.”
하진은 갑자기 두 손으로 X를 만들었다.
“아니, 행복하게 해주려 고민한다는 거. 예전에 그랬다는 거지요. 지금은 아니고요. 엄마가 미울 땐 일부러 어떻게 하면 괴롭힐까 궁리하는걸요?”
영애는 미소 지었다.
“그렇지. 불행해하기가 Force로서의 힘을 가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지? 매번 불행으로 타인을 통제하려고 하면 그 사람이 싫어지겠지? 누군가의 좋은 세계에서 빠져나오면 힘을 잃게 돼.”
하진은 끄덕였다.
“진짜 힘인 Power는 행복한 사람만이 가지는 거네요….”
영애는 검지를 들어 올렸다.
“하나만. 하진아, 네가 만약 네 행동을 바꾸기로 한다면…”
영애가 말을 멈추자 하진이 말을 받았다.
“대답할까요? 제가 행동을 바꾸면… 엄마가 ‘거봐! 엄마 말이 맞잖아!’라고 할 거 같은데요? 아니면 제가 행동을 바꾸면…. 엄마 행동도 바뀔까요?”
영애는 소리 내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행동을 바꾸는 이유는, 네가 잘못해서가 아니라고. 네가 널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하지 않으려는 거지.”
하진의 얼굴에 놀라움과 안도가 엷게 번졌다.
그 모습에 영애의 가슴이 저릿했다.
* * *
상담실을 나선 하진은 보았다.
어두운 터널 끝에서 빛이 점점 커지고 있는걸.
곧, 터널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못해서가 아니라, 고통받지 않으려 바꾸는 거라고?
처음 듣는 영애의 말이 너무 멋졌다.
그리고 이 말을 이해하는 자신도 멋졌다.
집으로 가는 길 위에, 영애의 말들이 떠다녔다.
‘기분이 좋다는 건, 삶을 잘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분이 나쁘다는 건, 삶을 잘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러니까 누군가의 기분이 나쁘다면 누구의 행동을 바꿔야 할까?’
엄마 아빠는 자주 기분 나쁘다.
특히 엄마는 더 하다.
그건 자기 삶을 잘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하진은 발 앞의 돌멩이를 툭 찼다.
돌멩이는 힘없이 굴러갔다.
‘별것도 아닌 게…’
누구에게 한 말인지는, 자신도 몰랐다.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최근 누군가와 싸운 적이 있나요?
왜 이기고 싶었나요?
그때와 그 후, 당신의 마음은 어땠나요?
최근 스스로와 싸운 적은 있나요?
하기 싫은 일을 해냈거나, 유혹을 참아낸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 당신의 느낌은 어땠나요?
※Power와 Force
Force는 남을 움직이기 위해 사용하는 힘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낼 거야.”라는 마음이 그 밑바탕에 있다.
Force는 남을 바꾸려는 힘이어서 외부 통제로 작동한다.
이 힘은 갈등을 불러일으켜 불안한 관계를 만든다.
겉으로는 강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사랑을 잃어 취약해진다.
Power는 나를 움직이기 위해 사용하는 힘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위해 내 행동을 선택할 수 있어.”라는 믿음이 그 바탕에 있다. Power는 나를 단련하는 내적 통제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타인을 존중하며 그의 자율성을 인정한다.
그 결과, 신뢰가 형성되고, 영향력이 많아지고, 관계가 깊어져 함께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