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건… 도를 닦기로 결심하는 거예요.

3부<문 안에서> 제21장. 비효율적 행동

by 박광석

“선생님, 일부러 그러신 거죠?”

“응?”

영애가 일부러 모르는 척 되물었다.

“그거요. 숨 막히게 하는 것. 일부러 그러신 거잖아요?”

영애는 웃었다.

“어땠어?‘

하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숨 막힐 때마다 숨 막히게 했더니… 하기가 싫어졌어요. 그런데 짜증 나는 건 여전해요. 학교생활은 참아볼 만한데… 엄마가 볶아대는 건, 정말 지겨워요.”

하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학교 쉰 걸 빨리 복귀하라며 엄마가 조급해서요. 엄마는 늘 걱정하지만, 저를 걱정하는 건 아니에요. 엄마 자신이 걱정되어서지요. 아빠 앞에서 초라해질까 봐, 자기 노력이 헛될까 봐.”

하진은 한숨을 쉬었다.

“엄마는 잘 웃지 않아요. 형이 성적표를 가져올 때만 빼고요. 형은 그때 사랑받는다고 느끼겠죠. 그런데 저는… 엄마를 웃게 할 수 없잖아요?”

영애는 오늘따라 하진이 유난히 말이 많다고 느꼈다.

그래도 이렇게 쏟아내니, 숨 막힘 같은 신체적 증상은 조금 덜할 것 같았다.

하진은 말을 이었다.

“며칠 전,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해서 제가 ‘알았어요’라고 했는데, 몇 분 뒤 또 와서 또 말하는 거예요. 제가 알았다고 했더니, 엄마가 소리치길래 저도 소리쳤어요. 엄마는 무슨 버릇이냐며 화를 내고 일장 연설을 했어요. ‘부모가 어떻게 맨날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살아? 듣기 싫은 말도 해야지! 엄마 아니면 누가 너를 바로잡겠어!’”

하진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엄마 말이 틀린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 듣고 있으면 숨이 막혀요. 머리가 터질 것 같고.”

하진은 숙인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

잠시 후, 하진은 좀 편안해진 얼굴로 자세를 잡았다.

“그날 밤, 옥상에 올랐어요. 바람 좀 쐬려고요.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엄마가 살금살금 다가왔어요. 혹시 제가 뛰어내릴까 봐 그랬겠죠.”

“제가 계단으로 내려가자, 엄마는 안심되었는지, 악을 썼어요. ‘너 정말 그럴 거야?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어?’ 전 외쳤어요. ‘엄마야말로 내가 죽는 꼴 보고 싶어?’ 엄마는 계속 외쳤어요. ‘그러게 왜 게임만 해서 엄마를 미치게 만들어!’ 저도 되받아쳤어요. ‘그러게 왜 엄마가 날 열 받게 만들어!’”

영애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을 말로 꺼내는 건, 감정을 풀어내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니까.

오늘 하진은 엄마에 대한 원망을 숨기지 않았다.

전에는 자책부터 하던 아이였다.

영애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는 비록 화를 내더라도, 너는 제대로 행동하라는 거지? 더 효율적인 행동을 선택하라는 거지?”

하진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엄마는 늘 악쓰잖아요. 자극에 반응하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저한테는 대들지 말래요. 엄마 행동을 ‘정보’로 받아들이라는 거죠. 이게 뭐예요?”

영애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라는 건지.

“하진아, 네가 보기에 엄마는 왜 늘 같은 방식으로 화를 낼까? 효과도 없고, 도움도 안 되는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게… 엄마는 저 때문이라고 믿으니까요. 제가 자극을 주어 엄마는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거죠?”

영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진아, 엄마가 너 때문이라고 믿는 이유가 뭘까? 네가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믿는 이유 말이야.”

“그게… 외부 통제 심리학 때문 아닌가요? 자기가 행동을 선택했다는 걸 모르니까, 똑같은 일이 생기면 또 똑같이 행동하는 거죠.”

영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비효율적인 행동이. 같은 자극에 같은 반응으로.”

하진은 눈을 반짝였다.

“선생님,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아이라면 몰라도…. 진짜 어른이라면,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영애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지. 그게 바로 효율적인 행동의 시작일 텐데.”

하진은 투덜거렸다.

“엄마는 애들처럼 반응하면서, 나보고는 잘 좀 선택해 보라고. 저보고는 어른처럼 행동하라고. 웃겨요.“

하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영애는 흐뭇했다.

하진이 자기 입으로 이런 말을 하다니, 자기 행동을 선택하고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외부통제와 내부통제를 ‘안다’는 수준을 넘어선 결심이었다.

엄마의 행동을 자극이 아니라 정보로 보겠다는. 그리고 그 정보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하지만 영애의 마음 한편엔 여전히 걱정이 남았다.

하진이가 엄마를 유치하게 본다는 것.

영애는 하진이 엄마를 무시하지 않고, 이해하기를 바랐다.

상담자로서 지나친 욕심일까?

영애는 부드럽게 고개를 기울였다.

“하진아, 엄마가 화를 낼 때, 원하는 게 뭐였을까?”

하진은 멈칫했다.

“혹시, 엄마 안에도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지 않을까? 어릴 때 엄마의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하진의 시선이 영애를 향했다.

“엄마 안의… 아이요?”

“응. 그 아이가 아직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저한테요?”

하진은 잠시 침묵하다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저는 엄마가 돌봐야 할 아들이 아니라, 엄마를 돌보는 엄마의 부모인 거예요?”

영애 역시 작은 소리로 말했다.

“…. 그건 자연스러운 사랑의 순환은 아니지. 부모에게 꿔주고 자식에게 받는 거니까.”


하진은 아무 말도 없었다.

상담실 안이 잠시 고요해졌다.

바깥에서는 잎사귀들이 바람에 휩쓸리는 소리가 났다.

그때 하진이 피식 웃으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

“그런데요, 선생님… 엄마는 진드기 같아요.”

“진드기?”

영애가 되물었다.

“네.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죽어도 안 떨어져요. 진드기를 떼려면 진드기를 죽이는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그럴 수는 없잖아요….”

그건 단지 하진 엄마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정작 영애도 하진과 나눈 대화를 딸과 나눈 적이 없었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는 엄마와 딸의 관계와는 다르니까.

엄마는 그저 엄마이니까.

영애는 생각했다.

그래서 딸에게 말이 아니라 사는 모습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그리고 그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상념에 잠겨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하진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영애는 서둘러 미소를 지었다.

그때 하진이 말했다.

“선생님, 효율적인 행동을 하려면 자기 훈련이 필요하잖아요?”

영애는 미소로 답했다.

“그렇지? 더 나은 선택을 원한다면?”

하진이 말했다.

“쉽진 않을 것 같아요.”

“그렇지. 도 닦는 일과 비슷하겠지? 후회하고, 반성하고, 다시 애쓰는 거. 그게 반복되어야 성숙해지겠지?”

하진은 조용히 웃었다.

“결국, 사랑도 그런 거겠네요.”

“사랑?”

영애가 되물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성숙해야 하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행동을 선택해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훈련이 필요하고.”

영애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하진은 천천히 말을 맺었다.

사랑한다는 건… 도를 닦기로 결심하는 거예요.”

영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상담실 안에 오래 머물렀다.

말하고 났더니 시원해졌다며, 바람이 일도록 상담실 문을 닫고 나간 하진이.

영애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라도.

혹시라도 엄마를 어떻게 할까 불안이 엄습했다.

영애는 ‘그럴 수는 없잖아요.’라는 끝에 매달린 말을 붙잡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가방을 막 챙겨 들고 일어서려던 순간, 노크 소리가 났다.

문을 살짝 연 정수가 말했다.

“하진이 엄마와 통화했어요. 하진이는 이제 상담 안 올 거예요. 오늘로 끝내는 걸로요.”

“아, 네…”

영애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정수는 문을 닫았다.

거대한 쇳덩이가 가슴을 내려찍은 듯했다.

그 충격에, 깊은 불안이 번져갔다.

이게 뭐지?

하진이 상담을 마친다는데 왜 이렇게 심장이 아우성을 치지?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당신은 어쩔 수 없어서 하는 행동이 많은가요?

아니면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행동이 많은가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면, 그 행동은 ‘비효율적 행동’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선택한 행동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는 효율적인 행동인가요? 아니면 단지 익숙한 반응일 뿐인가요?

※비효율적 행동

비효율적 행동이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서도 같은 방식의 반응을 반복하는 행동이다.

외부 통제 심리학을 믿는 사람은 ‘내가 행동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믿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결과가 반복되어도 자기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책임지려 하지 않으며, 그 행동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 결과, 비효율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느끼는 한, 행동을 변화시킬 이유도, 동기도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변화는 내가 내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인식, 즉 내부통제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내부통제를 회복할 때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책임 있게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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