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이다 싶을 거예요.
상담은 상담자가 있고, 교육은 교사가 있고,
부모는 그저 양육을 책임지는 것만도 버거운데,
상담까지 해야 되나 하고요.
사실을 말하자면,
부모도 알게 모르게 상담을 잘 해 왔거든요.
아이가 배고파 울 때
우유만 준 건 아니잖아요?
많이 배고팠느냐고, 이제 먹으니 살겠느냐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잖아요?
아이가 아플 때는 또 어땠나요?
간호만 한 건 아니지요?
아파서 힘들겠다고 안타까워하며
아이의 고통에 동참했을 거예요.
부모의 이런 수용적이고 공감적인 태도는
아이의 신체적인 욕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욕구도 충족했겠지요?
그리고 아이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평안해지고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었을 거예요.
이렇듯 부모도 충분히 상담을 잘 해 오셨는데요,
이런 능력을 좀 더 확장하면 좋겠지요?
상담 능력이 많아질수록
자녀에게 교육이 먹힐 기회도 많아질 테니까요.
우선, 이런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두가지 조건을 소개할게요.
아이의 마음이 감정의 홍수 상태에서 감정의 정상 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요.
첫째는, 부모의 마음 상태예요.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 상태요.
'저러면 안되지!'가 아니라
'속상해서 저런가 보다.'라고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 상태요.
아이가 장난감을 던질 때,
'저려면 안되지!'가 아니라 '속상한가보다!'하는 마음 상태요.
자녀의 행동이 못마땅한 면도 있지만
자녀의 마음이 동시에 보인다면,
이땐 부모의 마음이 편안한 상태이고,
이런 때는 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수용한 거겠지요?
자녀의 행동을 수용할지 말지는
부모의 마음 상태에 달렸다는 얘기에요.
자녀의 행동을 수용할지 말지가
자녀의 행동에 달린 게 아니라는 얘기지요.
자녀의 마음이 보인다면 부모의 마음도 편안해지니까
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수용할 수 있을 거예요.
요점: 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수용할 때는
자녀의 마음이 보일 때라는 거죠.
그림으로 보니까 어때요?
인상적인 부분이 있나요?
부모가 자녀을 상담하려면
자녀의 마음 상태가 보여야 하고요,
부모가 자녀의 마음 상태를 보려면
부모 감정이 정상 상태여야 한다는 거 잖아요?
부모가 감정의 정상 상태에 있으려면
부모가 자신의 욕구가 충족된 상태여야 하고요.
부모 자신이 살만 해야 자녀의 마음도 보인다는 거잖아요?
부모도 사람이니까요.
부모가 자기 마음을 잘 돌볼 수 있어야
자녀의 마음도 잘 돌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행복한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잘 수용하는 편이예요.
좀 너그러운 편이죠.
부모가 수용을 잘 못하고, 너그럽지 못하면,
걸림돌로 교육은 안 되고, 저항만 많아져요.
만약 아이의 행동을 수용하지 못하는 게 많다면,
아이의 행동이 거슬리는 게 많다면,
한번쯤 생각해보셔도 좋을 거예요.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좀 불행한가?'라고요.
부모의 불행이
엄격한 교육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많아서요.
참고로 부모의 행복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건
부부관계의 질인 것 같긴 해요.
겉으로 보기에 부부관계가 좋아 보여도
아이가 너무 빗나갔다면, 부부 사이가 안 좋을 수도 있을 거예요.
지금까지 부모가 자녀의 상담자가 되기 위해
부모의 마음 상태를 살펴봤는데요.
첫째가 부모의 마음 상태라면,
둘째는 부모의 언어 습관이거든요.
언어라는 것이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거잖아요?
마음이 달라지면 말투가 바뀔 수도 있는데,
말투가 바뀌면 마음도 달라지거든요.
그런데 마음이 바뀌어 언어가 달라지는 건 어려워도
언어가 바뀌어 마음이 달라지는 건 좀 쉽거든요.
어떻게 말해야 하느냐고요?
알아도 잘 안 된다고요?
교육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조건들을
좀 더 소개한 후에
어떻게 언어 습관을 바꿀지
연습하는 시간도 가져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