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영역을 넓히기 위해선
아이 마음을 알아주어야 해서요.
지금까지
앵무새 타령에 대해 다루었어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마음은,
표면적 마음과 심층적 마음이 있잖아요?
앵무새 타령은
표면적 마음을 알아주는 거라서
심층적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약간의 허전함이 여전히 남을 거예요.
우리가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인
사실, 의견, 감정 중에
사실은
가장 표면적인 마음이고,
의견은 그보다는 조금 더 심층적인 마음이고,
감정이 가장 심층적인 마음이겠지요?
'엄마 배고파요.'라고 아이가 말했다면,
'배고프구나.'는 사실을 알아 준 거고요.
'엄마, 유튜브 봐도 되요?'라고 아이가 말했다면,
'유튜브 보고 싶구나.'는 의견을 알아 준 거죠.
사실과 의견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고요? 그냥 넘어가도 괜찮아요. 이 구분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어쨌든 아이 마음을 알아주는 앵무새 타령에 해당되니까요.
이것만도 아이는 정말 고마울 거예요.
부모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었다고요.
하지만 심층적인 마음인
감정을 알아주면 더 좋겠죠?
그러면 부모 마음이 아이 마음과 하나가 된 듯한
깊은 소통감을 느낄 거예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아이는
늘 마음이 굶주려 있겠지요.
그리곤 누군가 자기 감정을 알아주면,
그가 누구이든 자기 마음을 내어 주고 싶겠지요.
제 친구 하나는 중학생 아들을 위해
집으로 과외 선생님을 불렀대요.
그런데 집에는 선생님 혼자있고,
아들은 만화방에 갔다는 거죠.
만화방이 좀 생소한가요? 예전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거든요.
만화방 주인 아주머니가 잠시 점심 먹으로 집에 간 사이
그 만화방을 지켜주려고요.
아마도 만화방 아주머니는
제 친구 아들의 감정을 알아주었나보죠?
마음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소통된 관계이니,
그 아주머니를 위해 주고 싶었겠지요?
이 아주머니가 했던 것을
부모가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아주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을
부모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만화방 아주머니를 위하듯
부모를 위하고 싶을 텐데요.
누구도 부모만큼 아이를
진실로 위하기는 어려우니,
부모가 자녀의 감정을 알아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자녀가 부모와 깊은 수준의 소통감을 느끼니까
마음의 굶주림이나 허전함도 없을 거구요.
마음의 감정이 정상 상태에 있으니
공부에 집중이 잘 되는 것은 물론이고,
집에서 채우지 못한 것을
밖에서 채우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어뚱한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아도 되고요.
만화방 아주머니가 내 자녀에게 할 수 있다면
부모들은 당연히 내 자녀에게 할 수 있겠잖아요?
아니라고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겠다고요?
만화방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돈을 받지만,
부모는 아이에게 돈을 준다고요?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의 감정은
알아줄 수 있지만,
나에게 돈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이 내 감정을 알아주어야 한다고요?
일리가 있어요. 집에서 엄격한 부모도,
일터에서는 고객의 감정은 잘 살피니까요.
하지만 우리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요.
내가 자녀의 감정을 알아주면 자녀는 내게
돈보다 더 귀한 것을 돌려주거든요.
자녀가 부모를 좋아하고요,
부모에게 자기 속 마음을 털어놓고요.
부모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요.
자녀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요.
적어도 부모가 염려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지는 않겠지요.
자녀의 마음과 자녀의 미래는
돈보다 더 소중하지 않을까요?
설령 부모가 고객의 감정을 알아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자기 자녀의 감정만은 알아주면 어떨까요?
다음에는
감정을 헤아리는 연습을 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