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해야… 살아 있는 것 같아요.

1부 <문앞에서> 제2장 5가지 기본 욕구 - 게임 중독

by 박광석

“왔어요.”

하진은 짧게 말했다.

상담실에 들어섰다는, 그저 사실을 전하는 말이다.

가방을 바닥에 툭 내려놓더니, 의자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거의 누울 듯 다리를 쭉 뻗은 채.

하진은 스마트폰 화면을 천천히 밀며 만지작거렸다.

이어폰을 끼고 있었으나, 음악을 들으려는 게 아니다.

문 닫는 소리, 악쓰는 목소리, 교실의 차임벨, 칠판에 긋는 뽀드득 소리.

그 모든 일상의 소음이 하진에겐 날 선 자극이었다.

영애는 책상 너머로 고개를 살짝 내밀며 물었다.

“게임 속에서 뭐 하고 있어?”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들렸다.

하진은 얼굴을 들어 잠시 영애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뒤로 영애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 낯선 침묵에 하진은 당황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대답이 없으면 언제나 더 크고 더 높은 목소리가 곧바로 되돌아왔으니까.

독촉도 갈등도 없는 이 상황 속에서, 하진은 처음으로 새로운 행동을 선택했다.

하진은 이어폰을 빼 손에 들며 말했다.

“음… 캐릭터 키우고, 다른 애들이랑 팀 먹고… 요즘은 레벨 올리는 중.”

영애는 자신이 질문한 뒤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잊은 듯,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재밌어?”


누구라도 따뜻한 사람 앞에서는 마음이 열리기 마련이다.

하진은 그만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냥… 거기선, 내가 주인공이니까요.”

순간, 공기가 멈춘 듯 고요해졌다.

영애는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하진 맞은편에 앉았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거구나?”

하진은 잠시 멈칫하다가 미소 지었다.

“주인공… 그렇죠. 내 맘대로. 아무도 뭐라고 안 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눈은 여전히 화면에 박혀 있었지만, 손가락은 잠시 멈췄다.

곧 자세를 고쳐 앉은 그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흘렸다.

“진짜는요… 게임을 해야, 살아 있는 것 같아요.”

그 순간 영애의 숨소리가 멈췄다.

그녀도 하진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살아 있다는 느낌… 알 것 같아.”

따스한 봄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왔다.

그러나 나뭇잎이 거세게 흔들리는 걸 보니 바람이 불고 있는 게다.

벚꽃잎이 이따금 흩날리며 우수수 쏟아졌다.

영애는 하진을 보며 물었다.

“현실에서는…. 그런 느낌이 없나 보지?”

하진도 시선을 옮겨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너는, 살아보려고 애쓰는 거구나.”

그 말에 하진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터지기 직전의 눈물을 숨기려 눈을 부릅떴다.

영애는 말없이 자리를 지켰다.

휴지를 뽑아 하진에게 건네주며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하진이 멋쩍게 ‘씩’하고 웃자 영애도 미소로 화답했다.

영애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으로 갔다.

“그래, 살아야 하니까…”

그녀는 보드 위에 다섯 개의 원을 그리며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섯 가지 기본 욕구가 있어.

사랑과 소속, 힘과 성취, 자유, 재미, 그리고 생존.

하진은 고개를 들어 화이트보드를 바라봤다.

영애는 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게임 속에서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었던 거지? 사랑과 소속.

레벨을 올리고 싶었던 건? 힘과 성취.

현실에서는 못하는 걸 맘껏 할 수 있었지? 자유.

그리고 새로운 경험일 때의 쾌감인 재미.

이 네 가지를 심리적인 욕구라고 해.

사람은 이 심리적인 욕구를 충족하지 않으면, 마음이 죽어가거든. 밥 안 먹고 잠 안 자면, 몸이 죽어가듯이.”

영애는 관심 있게 듣는 하진을 보며 덧붙였다.

“먹고 자는 건 되니까 생존 욕구는 채워지고… 심리적인 욕구는 게임이 채워준 거구나.”

하진은 헷갈렸다.

게임이란 것이….

영애는 엄마 아빠와 다른 얘기를 하려는 건가?


“그게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요?”

영애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하진은 그만 숨이 멎었다.

영애는 친절하게 말했다.

“네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네 욕구를 충족하려는 거 아닐까? 욕구가 충족돼야 사람은 살 수 있으니까. 우리의 유전자는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거든.”

눈을 끔뻑이는 하진에게 영애는 덧붙였다.

“너는 그저 명령을 따르는 것뿐이야. 살아내라는 유전자의 명령.”

하진은 숨을 죽이고 영애를 쳐다봤다.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자유가 없고, 즐거움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 마음이 죽어가겠지? 마음이 죽으면, 몸도 서서히 죽어갈 거고….”


하진은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그럼… 저는 지금,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건가요?”

잠시 침묵 끝에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

“라면.”

“예? 라면이요?”

“넌 지금 밥 대신 라면을 먹고 있는 거지.”

하진은 표정이 확 바뀌며 씩 웃었다.

“전 밥보다 라면이 더 좋은데요….”

창밖에 벚꽃이 우수수 떨어졌다.

바람이 불고 있는 게다.

밝은 햇살로 화사한 상담실과는 달리 밖엔 세찬 바람이 불고 있는 게다.

영애의 음성은 봄 햇볕처럼 따스했다.

“하진아, 내가 너를 훌륭하다고 말하는 건, 네 비위를 맞추려는 게 아니야. 넌 지금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잖아? 욕구를 충족하려고… 너를 살리려는 거지.”

하진은 ‘발버둥’이라는 단어에 꽂혀, 입을 꼭 다물었다.

영애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넌 게임 말고도, 네가 정말 원하는 게 있을 거야. 게임도 좋지만, 계속하면 지치지 않니?”

하진도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맞아요. 그래도… 그거밖에 없어요.”

“지금은 그럴 거야. 아직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못 찾았으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라!

하진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선명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상담이 끝났는지, 어떻게 상담실을 나섰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맴도는 건 단 하나였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내가 원하는 걸… 정말 가져도 되는 걸까?

* * *


영애는 문에 기대어 하진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그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자, 책상으로 돌아와 상담일지를 펼쳤다.

하진의 과도한 게임.

부모는 아이가 부모 말을 안 들어서, 교육이 안 되어서라고 믿을 것이다.

그러니까 부모는 요구하고 또 요구하며, 가르치고 또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부모는 하진이 단지 재미를 좇아 게임을 한다고 볼지 모른다.

그러다 미래를 준비하지 못할까 불안해하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하진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을지 모른다.

재미만 추구하는 자신이 문제라고.

영애는 하진이 안쓰럽고도 기특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전자가 명령하는 욕구 충족을 수행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모가 간과하는 것은 바로 그 심리적 욕구다.

신체적 욕구의 박탈이 학대가 되듯, 심리적 욕구의 박탈도 학대가 아닐까.

게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진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욕구를 충족하고 있다.

게임은 곧, 하진이 살아남으려는 투쟁이다.

영애는 하진 엄마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다.

공부하라고 게임을 못 하게 하면, 하진의 심리적 욕구가 좌절되겠지요?

그런다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게임을 수용하면 공부는 안 할지 몰라도, 하진이 욕구가 충족될 거예요.

그래서 적어도 문제 행동이 확장되지는 않겠지요?

게임을 못 하게 하여 단절되는 것과 게임을 수용하여 소통되는 것.

이 중 어느 쪽이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하진이가 성장할 가능성이 더 클까요?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요즘 내가 문제 삼는 행동이 있나요?

그 행동은 나를 살리려는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그 행동이 충족해 주는 내 욕구는 무엇인가요?

혹시, 그 욕구를 다른 방법으로도 충족할 수 있을까요?

※5가지 기본 욕구

욕구는 유전자의 지시이며 인간이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이다.

인간의 기본 욕구에는 심리적인 욕구와 신체적인 욕구가 있다.

심리적인 욕구는 사랑, 힘, 자유, 재미 욕구이며 신체적인 욕구는 생존 욕구이다.

욕구는 인식할 수 없으나, 기분이 좋을 때 욕구가 충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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