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었어요.

1부 <문 앞에서> 제5장 전행동1 - 무기력

by 박광석

“일주일 내내… 그냥 누워있었어요.”

하진의 목소리는 동굴에 갇힌 듯 입속에서 맴돌았다.

영애는 조용히 아이 옆에 앉았다.

“많이 힘들었구나.”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요. 그냥…. 무기력?”

영애는 고민이 되었다.

힘들었다는 아이에게, 지금도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새로운 방향을 보자고 청한다는 건, 너무 모질어 보였다.

아이의 힘겨움에 동참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애는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현실치료 상담을 공부할 때 글라써 박사는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배고픔을 느껴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진짜 공감이 아니다. 진짜 공감은, 배고픈 내담자가 음식을 찾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욕구 좌절로 허기진 사람이 욕구를 충족하게 안내하는 것. 이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다.’

영애는 이 말에 용기를 얻었다.

영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랬구나. 아무것도 하기 싫었구나. 기운이 없으니까. 너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렇지?”

“네.”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그런 생각이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

“거지 같았어요. 진짜로.”

영애는 네 개의 원이 그려져 있는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활동하기, 생각하기, 느끼기, 신체 반응.

“이걸 ‘전행동’이라고 하거든.”

영애의 염려와는 달리 하진은 허리를 펴 관심을 보였다.

그리곤 두둑한 눈꺼풀을 무거운 듯 들어 올렸다.

그의 눈은 ‘그래서요?’라고 묻고 있었다.

“행동은 언제나 네 가지 요소가 동시에 작동해. 넌 침대에 누워있었고(활동하기), 살아 뭐하나 생각했고(생각하기), 우울해했고(느끼기), 아마 몸도 무거웠겠지(신체 반응). 이건 전부 연결된 하나야. 그래서 전행동이라고 불러.”


하진은 말없이 그 종이를 바라보았다.

“무기력이라는 건 그 전행동 중 한 요소거든. 너는 무기력을 선택한 거지.”

“잠깐만요.”

하진이 고개를 들었다.

“누워있기를 제가 선택한 건 맞아요. 근데…. 무기력하기를? 그건… 좀 이상해요.”

하진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살짝 컸다.

아니 목소리의 알갱이가 더 많아졌다.

영애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렇지? 좀 이상하지? 너 오늘 여기 올 때는 어땠니?”

“걸었고,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고, 좀 궁금했고, 땀이 났어요.”

“그렇구나. 전행동 4요소가 동시에 다 있었어? 아니면 하나만 있었어?”

잠시 생각한 하진은 대답했다.

“동시에. 한꺼번에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진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붙자 영애는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 전행동의 전은 앞 전(前)자가 아니라 온전 전(全)자인 건 알겠지? 영어로는 Total Behavior이라고 해.”

하진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와! 몰랐어요. 행동이 이런 건지. 전 따로따로 노는 줄 알았어요.“

영애는 하진의 큰 눈을 보고 미소 지었다.

“하진아. 너 정말 눈이 크다. 알고 있었어?”

하진은 작게 웃었다.

“작은 편은 아니죠.”

“지금은 유독 크네. 넌 지금 여기 앉아서 ‘정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리고 놀랐고. 그러니까 너도 모르게 자율신경이 네 눈을 크게 뜨게 한 거겠지?”

하진은 주변을 재빨리 둘러보곤 자세를 바로잡았다.

“몰랐어요.”

“맞아. 우리는 언제나 전행동을 하고 있지만, 이 네 가지 요소를 다 인식하지는 못해. 그들 중 두드러진 요소 한두 가지만 인식하거든. 그래서 우리의 행동이 4요소로 이루어졌다는 걸 알기는 어려워.”

하진은 말보다 손이 먼저 나왔다.

“아,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 탈 때, 기분은 좋았는데, 어떻게 운전했는지는 생각나지 않아요.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요.”

영애도 하진 말을 받았다.

“나도 그랬거든. 내 딸이 밤늦도록 집에 안 들어올 때, 너무 불안하고 걱정되는 거야. 그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거든.”

하진은 갑자기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런데요, 선생님. 엄마가 약을 먹을 때가 있거든요. 우울증이라나? 무슨 호르몬이 부족해서 그런다던데요?”

하진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그 무슨 호르몬이 부족해서 우울한 것 아닌가요? 우울하니까 웃지도 않고 누워있고요.”

영애가 대답 없이 침묵하자 하진은 재촉했다.

“신체 반응 때문에 기분도 달라지고, 생각이나 활동도 달라지는 것 아녜요?”

영애는 하진의 얼굴을 미소로 쳐다봤다.

“너 아까 상담실에 올 때 걸어오면서 땀이 났다고 했지?”

“네. 그랬지요.”

“그때 네가 땀이 나서 걸어왔을까?”

하진은 피식 웃었다.

“그건 아니지요.”

영애는 눈으로 웃었다.

“맞아. 신체 반응이 활동하기의 원인이 되지는 못해. 글라써 박사는 이렇게 말했거든. ‘뛰기 때문에 땀이 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땀이 나서 뛰는 건 아니다.’ 전행동의 네 요소는 늘 동시에 일어나니까.”

하진의 끄덕이는 고개는 ‘안다’와 ‘모른다’를 담고 있었다.

애매모호한 하진의 태도에 영애는 고민이 되었다.

그때 마침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창가에 앉았다.

영애는 하진에게 ‘저기 좀 볼래?’라고 말하자, 하진은 몸을 돌려 참새를 봤다.

‘작은 새가 예쁘다고 생각할 수 있겠어?’ 영애가 묻자, 하진은 ‘네.’라고 대답했다.

영애가 ‘지금 슬퍼해 보거나 눈물을 흘릴 수는 있을까?’ 묻자, 하진은 고개를 저으며 ‘그걸 어떻게?’라고 반문했다.

영애는 여전히 참새를 보며 말했다.

“참새를 보거나 예쁘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그런데 슬퍼해 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건 어렵지?”

“네.”

“활동하기와 생각하기가 두드러진 전행동은 내 맘대로 통제가 잘되거든. 그래서 전행동 자동차의 앞바퀴라고 해. 느끼기와 신체 반응은 잘 안 되지? 그래서 뒷바퀴라고 하고.”

“전행동은 전륜구동 자동차예요?”

하진의 해석에 영애는 웃었다.

“그렇지. 이 네 요소는 서로 연합되어 있으니까. 어디를 바꾸면 전행동을 쉽게 바꿀 수 있을까? 응?”

“앞바퀴겠네요.”

하진은 잠자코 있었다.

영애는 걱정되었다.

자기가 무기력하다고, 더 나은 전행동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자기 탓을 하고 있을까?

영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가 무기력을 선택한 이유는….”

“이유는요?”

하진이 성급하게 물었다.

영애는 뜸을 들였다.

“네가 게을러서도 아니고, 네가 병에 걸려서도 아니야. 너는 에너지를 아끼고 싶었을 거야.”

하진은 눈을 반짝였다.

“네 심장은 왜 기운을 아끼려고 했을까?”

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영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가 사랑받고, 존중받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재미있었다면….”

하진은 고개를 돌려 영애를 쳐다봤다.

“… 그렇게 무기력했을까?”

“… 아니요.”

“그렇지. 네 마음은 지금 굶주려있는 거야. 누군가와의 연결이 끊겼기 때문에….”


잠시, 하진은 숨소리조차 죽였다.

“전… 제가 쓸모없는 인간이라서 그런 줄 알았어요.”

영애는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이고, 하진아. 네가 잘못된 게 아니야. 그건 단지 네가 심리적인 욕구 충족이 안 되었다는 신호야. 중요한 누군가와 단절이 되어서….”

하진은 눈을 떨구었다.

“오랫동안 굶주려있다면, 누구라도 기운을 아끼고 싶지 않겠어?”

하진은 아무 말도 없었다.


* * *


상담실을 나선 하진의 머리를 가득 채운 생각.

‘굶주림, 단절, 욕구 충족이 안 되어서, 기운을 아끼려고….’

하진은 머리를 흔들었다.

머릿속의 말들을 털어버리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블랙홀이었다.

몸은 자꾸 땅속으로 빨려드는 듯했다.

머리를 들어 올려도 어느새 숙이고 있었다.

발밑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가 보였다.

부스러질 듯 말라버린 나뭇잎 몇 개가 매달려 있었다.

내가 저 나뭇가지와 같은 모습일까?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당신이 슬프거나 우울하고, 눈물이 나거나 기운이 없을 때, 그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당신이 이런 상태에서 벗어났을 때는 어떤 전행동을 선택했을 때인가요?

※전행동(全行動)의 4요소

전행동은 활동하기, 생각하기, 느끼기, 신체 반응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 네 가지 요소는 동시에 발생하며 각각의 요소들은 서로 연합되어 쌍을 이룬다.

통제 순위는 활동하기, 생각하기, 느끼기, 신체 반응 순서이다.

즉, 활동하기 요소와 생각하기 요소는 통제가 쉽지만, 느끼기 요소와 신체 반응 요소는 통제가 어렵기다.

따라서 활동하기와 생각하기를 바꾸면 느끼기와 신체 반응도 따라 바뀐다.

소통과 단절 상태에 따라 내가 선택하는 전행동은 생산성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이전 05화엄마는 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