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제가 싫어요.

1부 <문 앞에서> 제7장. 비교 장소 - 자기 비하

by 박광석

상담실 맞은편 벤치.

하진은 상담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상담 시간은 지났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침 식탁에서 아버지는 말했다.

‘형은 또 전교 1등이다. 넌 왜 이 모양이냐!’

하진은 계란국을 뜨려던 손을 멈춘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형 좀 본받아. 알았어? 같은 집에서 같은 부모하고 살면서…. 형은 하는데 너는 못 하는 이유가 뭐야?’

아버지의 한숨에 하진은 숨이 막혔다.

상담실 창문이 열리며 영애가 얼굴을 내밀었다.

하진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영애와 눈이 마주쳤다.

영애가 환하게 웃었다.

“날씨 참 좋지 않니? 나뭇잎이 짙어졌네. 하늘도 맑고…. 잠시 감상하고 들어와도 돼.”

들켰다.

‘상담실에 들어가지 말까?’ 망설이던 마음이.

그러나 영애는 눈치챈 기색 없이 오히려 늦는 명분을 주었다.

그게 고마워서 하진은 바로 들어갔다.

상담실 안 낮은 책장 위에 줄지어 놓인 목각 인형들.

그중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하진은 안쓰러워 조심스레 다시 세워두었다.


“오늘은 어때?”

영애가 물컵을 건네며 앉았다.

“…거지 같아요. 나는 밥벌레예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면…. 무척 속상한 일이 있었구나.”

“속상한 일은 늘 있어요. 공부 못하고, 학교도 안 가고, 엄마 아빠는 실망하고. 쓸모없는 인간. 나는 왜 이 모양일까요?”

영애는 여느 때처럼 ‘쓸모없다’라는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속상한 일이 있었구나’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서운하지는 않았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다만 엄마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잠시 후, 영애는 저울 모형을 책상 위에 올렸다.

“이거 알지? 양팔 저울.”

그리곤 양쪽 저울 위에 노란색 조각과 빨간색 조각을 올려놓았다.

“우리는 이걸 ‘비교장소’라고 불러. 비교장소는 늘 두 그림을 비교해.”

영애는 아래로 내려간 노란색 조각을 가리켰다.

“이건 네가 원하는 그림.”

이어 위로 올라간 빨간색 조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네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지각된 세계의 그림. 이 둘이 다를 때, 저울은 기울겠지?”

하진은 기운 저울을 잠시 바라보더니, 위로 올라간 쪽을 살짝 끌어 내려 평형을 만들었다.

영애는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기운 저울이 불편해서 뭐라도 해보고 싶었던 거구나. 저울이 기우니까 행동하려는 충동이 생기지?”

하진은 쑥스럽게 웃었다.

그리곤 입술을 손으로 뜯으며 말했다.

“저울이 기울어 생긴 충동으로 행동을 한다고요? 그런데 전 왜 맨날 이렇게 형편없는 행동만 할까요?”

마음속에 오래 묵혔던 말이 튀어나왔다.

전 제가 싫어요.

영애는 눈을 반짝이며 미소 지었다.

“그래? 너는 네가 맘에 들지 않니? 네가 그러니까 내가 기분이 좋다면, 그건 좀 이상하겠지?”

하진은 눈을 크게 떴다.

“이런 네가 싫다는 건, 원하는 네가 있다는 거겠지? 한쪽엔 ‘지금의 너’를, 다른 한쪽엔… 음, 누구를 올릴까?”

“형이요.” 하진은 단숨에 말했다.

“형은 진짜 모범생이거든요. 아빠는 늘 형 자랑만 해요.”

“오! 그래?”

영애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구나. 형 같은 모범생이 정말 바람직한지는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어쨌든 네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네가 자랑스러운걸?”

하진은 당황스러웠다.

내가 원하는 게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나도 몰랐는데….

“제가 공부를 안 해도요?”

“안 하는 이유가 있겠지?”

영애는 저울 한쪽의 빨간색 조각을 노란색으로 바꾸었다.

양쪽 모두 노란색이 놓인 저울은 이내 평평해졌다.

“어때? 저울이 평평하니까 뭔가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니?”

하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공부 저울은 평평하고, 또 다른 원하는 건, 저울이 심하게 기울었나 보지? 인정받고 싶다거나, 아니면 자율성을 존중해 달라거나….”

하진은 영애의 말을 되뇌었다.

“저울이 기울어야 행동하려는 충동이 생기니까요.”

“그런데 말이야,”

영애는 따뜻하게 말을 이었다.

“너는 형 그 자체가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저 ‘형처럼 잘하는 너’를 원하는 거겠지?”

“…맞아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한결 정리되었다.

“좋아. 지금 네 마음속 비교장소 저울이 왼쪽엔 ‘허접한 하진’, 오른쪽엔 ‘괜찮은 하진’이 있네? 맞아?”

“네.”

“그래서 속상한 거였어?”

“네.”


영애는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그렇지 않을걸?”

하진은 따지듯 물었다.

“원하는 내가 아닌데도 속상하지 않다고요? 저울이 기울었는데도요?”

영애는 빙그레 웃었다.

“저울이 기운 건 그저 ‘행동하고 싶다’라는 충동을 만들어낼 뿐이거든. 속상하고 말고는 어떤 전행동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거든.”

하진은 이해하기 어려운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영애는 몸을 앞으로 당겼다.

“넌 배고플 때, 추울 때 속상해?”

“아니요. 배고프면 냉장고를 열고, 추우면 새로 산 옷을 꺼내요.”

“그렇지? 저울이 기운 매 순간이 언제나 속상하진 않지? 기분이 그저 그럴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거든.”

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매 순간 행동한다는 건, 매 순간 저울이 기울어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어떤 때는 기분 좋고, 어떤 때는 나쁘니까….’

그때 번뜩 하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속상한 느낌은… 제가 선택한 전행동의 한 요소라는 거죠?”

하진은 저울을 보며 물었다.

“선생님, 그런데요. 원하는 걸 얻으면 저울이 평평해지지 않을까요?”

영애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 일은 없을걸? 우리는 살아 있는 한 행동하니까. 살아 있는 한 저울은 늘 기울어 있겠지?”

영애는 ‘살아 있는 한’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왜요?”

“원하는 걸 하나 얻는 순간, 저울 위엔 금세 또 다른 새로운 그림이 올라오거든.”

하진의 눈이 번쩍였다.

“왜 그 신화 있잖아요? 산에서 돌을 끝없이 밀어 올리던…”

영애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 그 ‘시지프스의 신화’를 말하는구나.”

하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도대체 사람은 언제 행복해요?”

조급한 하진을 향해 영애는 천천히 말했다.

“행복과 불행은 원하는 걸 얻었느냐 아니냐로 결정되지 않을걸?”

하진은 영애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기분은 전행동의 느끼기 요소이니까….”

그 말에 하진은 고개를 숙였다.

‘결국 전행동이구나. 매 순간 내가 선택하는 전행동.’


하진이 고개를 들자, 아까 세워 둔 목각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인형들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영애가 덧붙였다.

“저 인형, 뒤꿈치가 깨져서 자꾸 넘어져. 그래도 다시 세우면 잘 서 있더라고.”

짧은 숨을 쉰 후, 영애가 하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까 우리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

“제가 허접한 게 싫다고요. 그래서 충동으로 행동한다고요.”

“맞아, 그랬지? 그런데 뭔가를 하기 전에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아야 하거든. 네가 진짜 원하는 건 뭐야?”

하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전까지는 그저 ‘이런 내가 싫다’라는 마음뿐이었다.

‘나는 실패작이야.’

‘나는 쓰레기야.’

그저 자신을 쓰레기통에 던지는 생각만 해왔다.

“하진아,” 영애가 다시 물었다.

“형 말고, 누구도 말고, 너는 너로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진은 침묵했다.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상담실을 나온 하진은 늘 땅만 보고 걷다가 오늘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초여름의 잎사귀 사이로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영애의 물음을, 이번엔 내가 나에게 해본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당신을 힘들게 한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상황은 당신이 원하는 것과 다르다는 뜻이겠지요?

비교장소의 양팔 저울 한쪽에 ‘내가 원하지 않는 그림’이 있다면, 다른 한쪽 저울에 있는 ‘내가 원하는 그림’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을 벗어나, 당신이 원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인가요?

※비교장소

우리는 매 순간 행동을 선택한다.

죽을 때까지 행동하므로, 죽을 때까지 행동하고자 하는 충동이 일어난다.

즉, 비교장소의 저울은 언제나 기울어 있다.

비교장소의 양팔 저울 한쪽에는 그 순간 원하는 ‘좋은 세계’ 안의 그림 하나를 올려놓고, 다른 한쪽에는 그 순간 현실이라고 여기는 ‘지각된 세계’ 안의 그림 하나를 올려놓는다.

이때, 저울은 기울고, 원하는 것을 얻는 순간, 또 다른 원하는 것이 저울 위에 올라와 저울은 늘 기울어져 있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을 느낄 때는 원하는 것을 얻을 때가 아니라, 기분 좋은 전행동을 선택해 소통된 관계에 있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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