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문 틈에서> 제8장. 행복과 쾌락
영애는 성격 검사지를 내려다보았다.
정수 실장이 아침에 놓고 간 것이다.
‘상담 일지에 검사 기록이 없던데. 검사도 안 하고 상담하게요?’
정수 실장의 말투는 꾸짖듯 했다.
영애는 검사지를 뒤적이다 손끝으로 밀어 놓으며 중얼거렸다.
검사 결과로 아이를 진단하라고?
병명 하나 붙여서 약 처방이라도 받게 하려고?
하기야, 진단명은 좋은 점도 있긴 하지.
아이의 문제 행동이 병 때문이라면, 부모들은 아이에게 훈육한다며 모질게 대하던 통제를 좀 덜 하긴 하니까.
부모의 죄책감을 조금은 면제시켜주기도 하고.
하지만, 도대체 이게 뭐야.
아이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의 마음과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행동해주기만을 바라는 거 아냐?
증상, 문제 행동, 이게 어쨌다고?
행복한 아이가 이러겠어?
하진을 치료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기다니….
하진은 불행한 거라고!
해답은 간단한 거라고!
영애는 답답했다.
화가 났다.
“선생님?”
그 순간, 문이 열리며 하진이 고개를 내밀었다.
꿈결 같은 소리에 영애는 고개를 들었다.
영애는 얼른 검사지를 서랍에 넣으며 하진을 향해 미소 지었다.
문 앞에 서 있던 하진은 오늘따라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지난주에요….”
“응?” 영애는 눈을 치켜떴다.
“어떤 나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잖아요.”
“그랬지.”
하진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허접한 나가 아니면 좋겠어요.”
그리고 고개를 떨궜다.
“근데…. 원하는 나는… 모르겠어요.”
영애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언제 네가 괜찮았던 것 같아?”
“...”
“네가 허접하지 않다고 여겼을 때는?”
“예전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끝났을 때…. 엄마가 간식 준비해놓고 시험지 펼쳐보며 같이 얘기하던 때. 그때는, 적어도 제가 밥벌레는 아니라고 여겼어요.”
영애는 고개 숙인 하진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때는 엄마와 좋았구나. 그때 너는 어땠어?”
얼굴을 든 하진의 눈은 그윽했다.
“그때는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공부 욕심도 있었어요. 착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집중 잘한다는 말도 들었어요.”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랬구나. 그때는 행복했구나. 행복은 사람을 필요로 해서 말이야.”
“사람이요?”
“그렇지. 행복은 사람 사이에 유대감이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행복은 쉽지 않거든. 그래도 행복이 좋은 점은, 잔잔하지만 오래가고, 생산적인 에너지로 쓰여서 말이야.”
“행복은 어려운데, 제대로 된 에너지이네요”
하진은 딴 곳을 보며 건조하게 말했다.
행복이 자신과 상관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영애는 침묵했다.
잠시 후 하진이 영애에게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영애가 물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니? ”
“아뇨. 지금이 좋아요. 적어도 지금은 예전처럼 심하게 들볶지는 않으니까요. 공부하라고. 엄마 아빠가요.”
하진의 대답에 영애는 숨이 멎었다.
“학교에 다시 가고는 싶지만, 부모님이 다시 공부를 강요할까 봐 두렵다는 얘기구나.”
“네. 제가 멀쩡해지면….”
하진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멀쩡해지면?”
“엄마는 분명 더 심하게 공부하라고 할 거예요.”
하진의 얼굴은 그 일이 실제로 닥친 듯 불안해 보였다.
영애가 물었다.
“예전에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할 때, 너는 어떻게 했니?”
“아주 어릴 때야 엄마 말을 잘 들었지만, 좀 커서는 알았다고 말은 하면서 시킨 대로 안 하니까…. 화를 내서요. 나중엔 알았다고도 안 했어요. 짜증 내고, 대들고.”
“그러니까?”
“엄마가 더 소리 지르고, 아빠까지 합세해서. 저를.”
하진은 긴 숨을 내쉬었다.
“제가 예민한 편인가 봐요. 너무 별나대요. 형은 어른이 하라는 대로 잘 따르는데, 저는 왜 그렇게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없느냐고 해요.”
영애는 미소 지었다.
“형은 먹히는데, 너는 안 먹힌다는 거구나.”
“그런 거죠. 엄마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
하진은 스니커즈를 신은 자신의 두 발을 내려다보았다.
두 발을 부딪쳤다 떼기를 반복했다.
“이젠 싸우기도 힘들어서, 안 해요. 그냥 내버려 둬요. 대꾸도 안 하고요.“
”엄마 아빠와 유대감이 없어졌다는 거니?“
잠시 멈칫한 하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 대신 핸드폰이 있잖아요? 컴퓨터도 있고.”
그러더니 무표정하게 혼잣말을 했다.
“알아요. 이렇게 지내니까, 제가 점점 더 이렇게 된다는 걸. 허접하게.”
영애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사람하고 연결이 끊겨 욕구 충족이 안 될 때, 쾌락은 숨통을 틔워주기도 해. 조금은 위로가 되지.”
하진이 바로 말을 받았다.
“맞아요. 그런데 그것뿐인 거죠. 그래서 점점 더 많이 하게 되고, 더 혼나고, 더 많이 하고…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하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진은 상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 그러고 보니 부모님도 포기한 게 있긴 해요. 걱정은 여전해도, 걱정하는 부분이 달라진 거죠.“
영애는 눈가가 내려앉았다.
“너를 망가뜨리니까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야단치지 않는단 말이니?”
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에 비해서요. 지금은 그저 졸업 못 할까 봐…. 더 나빠질까 봐.”
하진은 침묵하는 영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침묵을 뚫고 말했다.
“엄마한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요. 이게 어때서요? 어쨌든 제 맘대로 사는 거니까요.”
눈가가 붉어진 영애는 물었다.
“네 맘대로 살고 싶어서, 엄마가 원하는 걸 너는 원하지 않는 거니?”
“엄마가 원하는 걸 제가 원한다고요? 말이 돼요?”
하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부모님이 좋을 때는 그러려고 했겠죠.”
“근데 지금은?”
“지금은 아니에요. 부모님이 좋아하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어요.”
영애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허접한 나‘에 머물고 싶다는 하진의 논리가 이해되었다.
행복을 추구하면 부모님이 통제할까 봐.
쾌락을 추구하면 부모님이 통제하지 않으니까.
지금은 행복보다는 쾌락이 더 낫다는 거다.
“행복 대신 쾌락이라….”
영애의 입에서 한숨처럼 말이 새어 나왔다.
하진이 물었다.
“행복 대신 쾌락이라고 하셨어요?”
하진이 나간 뒤, 영애는 하진이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쾌락은 관계 맺기에 실패한 사람들이 쫓는 낙이다.
잠시 우리를 보호하지만, 삶을 버티게 하진 못한다.
쾌락은 세상으로부터 점점 고립시키지만, 세상과 점점 더 연결하게 하는 건 행복이니까.
행복해지려면 반드시 관계 맺기에 성공해야 하는데….
행복해야 쾌락 없이도 살맛 나고, 성취하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헤르만 헷세는 이렇게 말했나 보다.
‘우리에겐 어떤 의무도 없다네. 단지 행복해야 하는 의무 외에는.
* * *
상담실을 나온 하진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갈지(之)자로 어긋나 걷는 발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행복 대신 쾌락. 꿩 대신 닭. 밥 대신 라면?”
그 말이 운율처럼 입 안에서 뱅뱅 돌았다.
“행복 대신 쾌락. 꿩 대신 닭. 밥 대신 라면!”
“쾌락은 나를 보호해 주니까. 엄마가 볶아대지 못하게… 엄마가 나를 볶아대더라도…”
그 순간, 도로 건물 외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 하진은 작게 웃었다.
조금은 허접해도, 지금은 이게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니까.
행복이 내겐 사치일 뿐인 거야.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혹시 당신이나 당신의 아이가 쾌락에 빠졌다 싶어 염려된 적이 있었나요?
지나치게 쇼핑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술을 먹거나 말이에요.
또는 어떤 병명으로 불리는 심리적 신체적 증상을 보였던 적이 있었나요?
이때 당신과 당신의 아이가 진짜 원하는 행복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쾌락’ 속에 감춰진 ‘포기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행복과 쾌락
소중한 관계에 있는 사람과 소통되어 욕구가 충족될 때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과 욕구 충족이 안 되면 사물(약물)이나 일(행위)을 통해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한다.
관계가 배제된, 이런 욕구 충족만으로 기분이 좋은 상태를 쾌락이라고 한다.
행복은 얻기는 어려워도 기분 좋은 상태가 지속력이 있고 생산적인 에너지로 쓰인다.
하지만 쾌락은 얻기는 쉬워도 기분 좋은 상태의 지속 시간이 짧고, 생산적인 에너지로 쓰이지 못한다.
쾌락이 유지되려면 점점 더 센 강도의 자극이 필요하므로 중독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