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문 틈에서> 제9장. 외부통제
상담실 창문 너머로 여름빛이 반짝였다.
바람 한 줄기가 커튼을 스치며 조용히 실내로 들어왔다.
하진은 고개를 떨군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선생님.”
마침내 입을 열었다.
“쾌락은 나쁜 거죠?”
영애는 잠시 멈칫했다.
지난주 하진은 ‘지금이 좋아요’라고 단호히 말했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까?”
영애가 미소로 물었다.
“살고 싶었어요. 그냥…. 숨 좀 쉬고 싶어서요. 더는 못 버티겠더라고요.”
영애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중학교 입학할 때까지도 성적 나쁘지 않았거든요. 시키는 대로 하면 칭찬도 받았고요. 가끔 ‘봐, 하니까 되잖아! 더 열심히 해! 알았지?’라고 웃으시기도 했어요.”
하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이내 사라졌다.
“중학교 가서… 친구들이랑도 좀 놀고 싶고, 잠깐 게임도 하고 싶고… 근데 조금만 늦어도 전화가 오고, 잔소리가 시작됐어요. 고등학교 올라가니까…. 숨을 쉴 수가 없고요.”
영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말씀을 들었길래?”
“‘너 지금 그러고 있을 때냐? 대학은 어떻게 갈래? 나중에 후회할래?’ 이런 말을 하루에도 ….”
“그랬구나…”
“처음엔 저도 미안해서, 엄마 말이 맞겠지 싶다가도 공부할 마음이 점점 사라졌어요. 공부는 내 인생인데, 부모님은 늘 나를 감시하고 감독하니까….”
하진은 말을 멈추었다.
영애는 그의 침묵을 기다렸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꼭 엄마 아빠가 하라는 대로 살아야 하지?’”
하진은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부모님은 늘 저보고 그러면 안 된다고, 바꾸라고. 근데… 저는 부모님이 바꾸기를 바랐거든요. 서로 그래서 맨날 싸웠어요. 부모님이 맨날 자기가 옳다고 하니까, 저도 제가 옳다고… 실패해도 내 인생이니까, 내 인생을 살고 싶다고요.”
영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옳다, 네가 바꿔라.’ 서로 외부 통제를 하는 싸움이었구나?”
영애의 물음에 하진의 눈이 커졌다.
“외부 통제요?”
“응. ‘다른 사람이 나를 통제할 수 있고, 나 역시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라고 믿는 신념 말이야. 너는 어때? 너도 그렇게 믿고 있니?”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선생님은 제가 제 행동을 선택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엄마도 엄마 행동 선택하고, 아빠도 아빠 행동 선택하겠지요? 제가 엄마 아빠를, 무얼 하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하진은 영애에게 고자질하듯이 말했다.
“엄마는 게임 할 때는 꼭 뭐라고 해요.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어요. 엄마가 드라마 볼 때, 저는 아무 말도 안 하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맨날…. 제가 뭘 하면 한다고, 안 하면 안 한다고, 뭐라고 해요. 이런 게 외부 통제죠?”
하진의 목소리는 억울함이 젖어 있었다.
“왜 엄마는 저한테만 그럴까요? 전 엄마한테 안 그러는데…”
“외부통제란 원래가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에게 행사하는 무력이거든.”
하진은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약육강식 같은 거네요? 결국 자기 힘으로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거.”
하진은 허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영애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외부 통제는… 그러니까, 일종의 폭력 아녜요?”
그는 ‘폭력’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하진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내질렀다.
“왜 힘 있는 사람들은 맨날 자기가 옳다고 해요? 왜 자기 말만 맞아요? 저는 제가 옳아도 말을 안 하거든요. 아빠가 대든다고 해서….”
영애는 하진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외부 통제 심리학 속에서 살아가거든. 공기를 숨 쉬듯이, 인식하지도 못한 채 말이야.”
“도대체 왜 그래요?”
영애도 하진을 따라 작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부모는 부모의 부모에게서 배워, 우리 모두의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
하진은 불현듯 뭔가 생각난 듯 이마를 찡그렸다.
“아, 그런데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건 왜 그래요? 아빠가 엄마보다 힘이 더 센 거 아녜요?”
영애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보이지? 그런데 힘이 비슷하니까 서로에게 외부 통제를 하겠지? 힘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하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빠는 힘도 세고. 돈도 잘 벌고. 지위도 있고. 엄마는 그냥 집에서….”
“그래도 엄마가 우월한 게 있을걸?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한다든가. 사람들과 잘 친해진다든가.”
하진은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그럼 제가 엄마랑 싸우는 이유도 제가 힘이 있어서예요? 예전에는 혼나기는 해도 싸우지는 않았거든요.”
영애는 눈을 찡긋했다.
“그럴걸? 부모의 소중한 자식이라는 지위가 있고…. 적어도 네 삶을 내 맘대로 살겠다는 주인 의식도 있고.”
하진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럼 형은요? 형이 엄마 아빠랑 싸우지 않는 것은요?”
영애는 대답 대신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뭇잎은 녹색이 한층 짙어졌다.
햇빛에 찬란하게 반짝이는 그 수많은 나뭇잎 중에, 갈색 잎 하나가 보였다.
얼마 안 가 곧 떨어질 것 같았다.
영애를 따라 밖을 보던 하진은 씁쓸히 덧붙였다.
“엄마 아빠 사이가 좋았으면 좋겠어요. 두 분이 다시 웃었으면 좋겠어요. 방법이 없을까요?”
“친구 사이는 어때? 친구 사이가 좋은 이유는 서로 외부 통제를 안 해서겠지? 친구 사이에서 외부 통제를 하면, 금방 깨질걸?”
하진은 말했다.
“생각나요. 일진 시절, 애들이 ‘너는 돈은 뺏으면서 왜 패지는 않냐?’라고 욕해서 거길 나왔거든요.”
영애는 미소 지었다.
“엄마 아빠가 싸우시니까 네 맘이 안 편하지?”
눈물을 쏟지 않으려는 듯 하진은 고개를 들어 천정을 쳐다봤다.
“저도… 착한 아들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마음이 사라졌어요.”
영애는 그의 눈빛에서 체념을 읽었다.
당연하다.
외부 통제에 노출된 사람은 내적 동기를 잃게 되니까.
자기 선택의 힘을 못 느끼니까.
영애는 그런 하진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래서 엄마를 기쁘게 하고 싶지 않았단 말이지?”
“네. 계속 요구만 하니까요. 칭찬도 없고, 웃지도 않고… 맨날… 그래서 그냥 포기했어요. 착한 아들 되는 거.”
영애는 말했다.
“외부 통제는 모든 관계를 해치지. 부모와 자식 간뿐이겠어? 부부 사이는 물론이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마찬가지겠지?”
하진은 심각하게 물었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되는 게 다 그래서 그래요?”
“그렇지. 많은 문제가 사실은…. 원인은 외부 통제야. 모든 갈등의 근본 원인인 거지. 엄마 아빠가 서로 사이가 나빠서 싸우는 걸까? 아니면 서로 외부 통제를 하니까 사이가 나빠진 걸까?”
하진은 얼른 영애 말을 받았다.
“맞아요. 제가 공부를 안 해서 부모님과 싸우는 게 아니에요.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외부 통제를 하니까 싸우느라 공부하기 싫어지는 거지요.”
영애는 하진이 떠난 창밖을 바라보았다.
몇 년 전, 딸의 학교 학생부에 불려갔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이 어쩌면 자신에게도 큰 전환점이었을지 모른다.
외부 통제는 부모가 원하는 길에서 아이를 점점 멀어지게 한다.
조금 더 일찍 멈출 용기가 있었다면… 아이는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었겠지.
지금 외부 통제를 멈출 수만 있다면, 아이를 낭떠러지에서 지켜낼 수 있을 텐데.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지금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지는 않나요? ‘내가 옳다. 그러니 내 말대로 하라.’라고 강요하는 상황은 얼마나 많은가요?
소중한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외부 통제를 당신은 얼마나 많이 하고 있나요?
※외부 통제 심리학
외부 통제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이 외부 요인에 의해 움직인다고 믿는 신념이다.
유전, 성장 과정, 주변의 물리적·심리적 환경, 타인의 언행, 신호등의 색깔 같은 외부 요인이 나를 특정 행동으로 몰아간다고 여기는 것이다.
거꾸로 내가 어떤 행동을 해서 상대방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작은 힘으로 변화를 이루지 못하면, 더 큰 힘을 써서라도 상대의 행동을 바꾸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