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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쏠이 Mar 20. 2024

처음으로 내면의 힘을 이용하다.

02. 일기 1



 2018년 10월 필리핀 세부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내가 필리핀 어학연수와 호주 워홀을 가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는 그전 약 16개월 간의 첫 회사생활 덕분이었다. 24살에 첫 회사에 취직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19살 고등학생 같았다. 사회생활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가 한국 회사들 중에서도 위계질서가 뚜렷한 회사에 몸을 담그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은 ‘외국으로의 도피’였다. 우연이었는가 싶다. 지금에서야 'nothing is coincidence' 임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머릿속에서 '나 외국으로 도망갈래! 이런 꼰대 문화가 당연한 한국에서 살 수 없어!'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렇게 입사 6개월 후 나는 호주 워홀을 처음 떠올리게 된 것이다.


 지옥 같았던 16개월을 끝내고 퇴사 일주일 만에 필리핀행 비행기를 탔다. 퇴사를 하며 부정적인 마음가짐을 훌훌 털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16개월간 차곡차곡 쌓아왔던 부정적인 에너지는 아마 초반 어학연수 생활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짐작하는 이유는 필리핀 어학연수에서 가장 하기 쉽다는 '친구 사귀기'에서부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같은 날 입주한 한국인 동기는 어학연수에서 가장 친하게 지낼 수 있을 만한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초반 2주간 나는 동기들과 친해지기는커녕 이질감만 느끼던 터였다.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미 직전 16개월간 극심한 스트레스 아래에서 살아왔던 터라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것이 큰 타격으로 다가왔고, 나는 어학연수 시작 후 7일이 지난날 샤워를 하면서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꺽꺽 집어삼켰더랬다. 지옥 같던 회사 생활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친해져 침대 위에서 장난치고, 클럽에 가서 미친 듯이 춤추는 상상을 하며 버텨왔는데 그런 환상의 어학연수 생활이 초반부터 와장창 깨져버린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어떻게 이 시련을 헤쳐 나가야 하는지, 나와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인터넷에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그날이 나의 '깨달음'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피어난 날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첫눈을 뜨게 해 준 게시글의 글쓴이는 김상운 작가의 ‘리듬’을 읽고 감명받은 이야기 작성하였다. 내용 중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매일 세 번씩 작성하면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글쓴이는 그렇게 금전적으로도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었으며 그 당시에도 새로운 목표를 그런 방식으로 달성하게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댓글로 볼 수 있었다. 무신론자에, 귀신이고 외계인이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절대 믿지 않던 나는 이상하게 그 글에서 끌어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는 무시하며 넘어갈 만한 글이 그날 밤 10시, 친구를 사귀는 것이 간절했던 이유였는지 무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믿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메모장에 내가 이루고 싶은 말을 시기, 과정, 결과에 걸쳐 구체적으로 세 번 작성하였다.  

앞으로 2주 안에 학원에서 아주 친한 외국인 친구 무리들이 생기며 그들과 놀러 다니게 되어 감사합니다.


 이 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간절한 문장이었지만, 간략히 말하자면 저런 내용의 문장을 무려 3개나 작성하여 총 9개의 문장을 작성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세부에 온 후 약 10일간은 자기 전,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려 깊이 잠을 자지 못하던 내가 그날 밤은 웬일인지 침대에 누웠을 때 무한한 평화로움을 느꼈다. 마음이 너무 평화로워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근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행복의 황홀함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세부에서 처음으로 불안에 떨지 않는 잠을 자고 다음 날 또 한 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복도에서 다음 수업을 기다리던 나에게 친하지는 않지만 같은 수업을 듣던 당당하고 활기차보이던 페이라는 친구가 말을 건 것이다. “우리 이번 주에 칼랑가만 섬에 같이 가지 않을래?”라고. 나는 활짝 웃으며 바로 가겠다고 대답하고는 전날 밤 메모장에 적은 문장에 대해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발걸음’은 이날 시작되었다. 물론 평생 살아오면서 수억수천 만 번의 아니 매 순간이 깨달음의 발걸음이었지만, 저 사건은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사건이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어학연수 생활은 내가 회사를 다니며 상상하던 그대로 클럽에서 춤을 추고, 외국인 친구들과 베스트 프렌드가 되며 행복한 3개월을 보내고 마무리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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