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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쏠이 Mar 20. 2024

상상했던 것을 눈으로 보다.

02. 일기 2

 


 2018년 12월 호주 시드니에 도착한 나는 홀리데이 주간에 일을 구할 생각에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연말에는 약 한 달간 일 구하기 어려우실 것입니다!라고 귀에 박히도록 들어왔던 데이터가 나를 고통 속에 빠뜨린 것이다. 시드니 정착 초반에 커튼이 달린 백패커스에서 약 7일간 지내게 되었는데, 거기서 갈 곳도 할 것도 없던 워홀러인 나는 커튼을 닫고 오렌지와 바나나를 먹으며 불안해하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밤은 내가 집과 일을 구하지 못할 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공포감이 온몸을 감싸 필리핀에 있을 적 선생님들에게 힘들다고 투정을 부린 기억이 난다. 나는 어학연수 시절 알게 된 헤나라는 동생(놀랍게도 전혀 친하지 않았던)에게 연말 파티에 초대받았고 우연히 시드니의 북쪽인 Deewhy에 놀러 가게 되었다. 헤나의 집을 구글 지도를 켜고 찾아 걸어갈 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외국 생활에서 꿈꿔왔던 푸르디푸른 가로수들과 아름다운 집, 놀이터, 뛰노는 아이들은 천국에 온 듯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펼쳐진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헤나 가족과의 파티는 시드니에 온 1주일 간 힘들었던 일과 고민을 잊게 해 줄 정도로 황홀했다. 그저 헤나와 연락하다가 파티에 초대되어 하루를 놀았을 뿐인데, 나는 그 경험을 통해 Deewhy 동네 부근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검트리를 켜고 살만한 집이 많은 North Manly에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홀리데이 주간이라 그런지 몇 되지 않는 집뿐이었다. 나는 그중 마음에 드는 집 네 곳에 문의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다. 그중 가장 포근하고 마음에 들어 보이던 집에서 연락이 왔고 그 집만을 유일하게 보러 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허름해 보일 수도 있는 그 집 외관이 그 당시 나는 괜찮아 보였다. 주인집 아주머니와 집 구경을 하고 나는 당장 내일 집에 들어오겠다며 계약금을 걸었다. 나의 행복한 시드니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집을 구하고 생각보다 순탄하게 모두 진행되지는 않았다.


 디와이에서 이력서를 돌리자마자 다음 날 연락이 와서 중국인 사장의 카페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2주는 사장의 무례함때문에 생각보다 힘든 2주였다. 퇴근하고 나서 매일 호주 카페 메뉴에 대해 공부하였지만 영어 실력의 부족 때문에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과감히 2주 후 카페를 그만두고 벌어둔 600달러를 가지고 취업 준비 생활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카페에 쉽게 취직한 것과 달리 두 번째 취업은 매우 힘이 들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동양인 자체가 매우 적었고 아시안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쓰는 곳은 매우 적었다. 이력서를 돌리는 것 마저 스트레스받는 일이 되어 나중에는 집에서 하루 종일 잠을 자곤 했다. 그렇게 장장 한 달간 취준 생활을 하다가 실낱같은 희망이 드리웠다. 바로 멘리의 The Corner라는 해변 카페에서 트라이얼을 오라고 문자가 온 것이다. 나는 거기서 2시간 동안 성공적으로 트라이얼을 완수하였고 Manly 해변에서 벅찬 성공의 감정에 행복해했다. 그때 나는 지난 20년간 나는 도전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나는 도전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도전이라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사실 결말은 그 카페에서 떨어졌지만 그 이유는 내가 아시안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정말 트라이얼을 잘했다. 일주일 간 기다린 트라이얼 결과가 불합격임을 알게 되고는 바로 한인잡 사이트인 호주나라에 접속하여 와링가몰의 스시바에 이력서를 제출하였다.


 스시바 사장님은 나를 보고 인상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이전에 많은 면접자들을 이미 보시고 고사하시던 차에 나를 보시게 되었다. 언제 출근할 수 있냐는 말에 나는 내일부터요 라고 대답했다. 사장님은 “그래 내일부터 출근해.”라고 하시며 “일 잘하겠네, 인상 좋다.”라는 말씀을 거듭하셨다. 그렇게 나는 나의 워홀 기간 5개월 중 4개월을 쏟아부은 일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그 스시바에서 일하게 된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물론 사건 사고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 좋은 조건에서 4개월간 일을 하였고 심지어 2주간의 휴가라는 말도 안 되는 기회를 주셔서 가족끼리 뉴질랜드 여행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이곳에서 일을 한 게 어떻게 행운이 아닐 수 있겠는가?


 나는 스시바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집에 돌아와 과거를 회상해 보았다. 홀리데이에 정착, 헤나와의 파티, North Manly로의 정착, 중국인 카페 알바, 한 달간의 취업 준비, 한인 스시바 취업. 이 모든 것이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정교하게 구성되어 외국인과 일하고 싶다는 나의 로망, 기대, 좋은 일자리를 잡은 행복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잠 못 들었던 첫 주를 떠올리며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모든 것이 내가 원하던 대로, 바라던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나만 몰랐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외국인 하우스 메이트들과 친해지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파티를 하였고 나의 영원한 베스트 프렌드 카탈리나와 행복한 4개월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황홀했던 나의 외국 생활은 예정되어 있던 것일까? 내가 행복한 생활만을 기대했기 때문일까?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이 일들은 나에게 기적처럼 다가와 나의 삶 아니 나를 180도 뒤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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