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깨어나기 18
에고는 물질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에고는 항상 나와 함께 숨 쉬고 있으며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에고를 통하여 참 나(본연의 나)와 정 반대를 체험하며 참 나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에고는 절대로 없애야 하는 존재나 적이 아니며 물질계를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세팅이다.
에고의 가장 큰 특성은 동일시이다. 양 극단의 것 중에 하나의 것이 마음에 들었을 때 에고는 자동적으로 나 자신과 동일시시킨다. 에고는 아주 교묘하고 치밀하기 때문에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어느새 새로운 것에 찰싹 붙어 동일시를 시작한다. 우리에게 분노가 떠오르는 경우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에고가 동일시한 것이 공격당했을 때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해당 종교가 사이비라는 글을 보고 자신이 공격당했다고 분노한다. A 국회의원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A를 욕하면 무의식적으로 분노가 올라온다. 본인이 깨달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무지해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분노가 올라온다. 이런 식으로 에고는 어떠한 조건에서든 동일시를 통하여 '나'라는 존재감을 지키려고 한다.
참 나 상태, 현존, 관찰자로 항상 스스로를 관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점점 에고의 동일시를 인지하게 되고 하나, 둘 씩 의존했던 대상들과의 결합을 끊는 시도를 한다. 감정이 올라오면 -> 감정이 올라왔을음 알아차린다 -> 감정이 올라오게 된 관념이나 생각을 알아차린다 -> 해당 관념이나 생각은 에고가 동일시하던 것일 뿐 진리가 아님을 인정하고 놓아버린다 -> 점점 같은 관념에 대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의 강도나 빈도가 줄어들며 해당 관념과의 동일시는 사라진다.
에고는 어떠한 것과도 동일시하여 자신의 부피를 키운다. 에고는 소멸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것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죽기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아직 잠자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동일시를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 수록 경험한 일이나 기억, 노력으로 획득한 것, 인간관계, 사회적 관념, 도덕성 등 모든 것에 대하여 '내 의견은 이래.'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조금이라도 공격당하는 것 같으면 상대방을 비난하고 멸시한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에고의 방어기제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를 내고 나서도 '내가 옳아.', '저 사람이 비정상이야.' 하며 에고를 강화시킨다.
그렇다고 에고를 없애야 할 존재로 보면 안 된다. 에고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에고가 동일시할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에고와 동화되어 분노하고 상대를 비난하고 악플을 쓰던 때와 다르게 관념을 알아차리고 분노를 느껴주며 그것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었을 때 우리의 생각, 행동, 말이 기존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또 한 번 알아차리는 것이다. 더 이상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하며 모든 분노는 내가 공격당했다는 두려움이 유발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분노가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억눌러 둔 것이 건드려질 때의 방어기제이다. A를 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얕은 관념에 대한 동일시는 조금의 알아차림으로 무엇도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으며 종식될 수 있다. 그러나 삶에서 큰 고통을 주는 죄책감과 수치심은 아주 깊은 무의식에서 자신이 건드려질 때 분노를 먼저 올려 보낸다. 이렇게 깊숙이 억눌려온 거대한 무의식의 경우 의도적인 무의식 정화를 통하여 한번에 큰 양을 녹여내는 것이 좋다. 사람들에게 유독 상처받고 분노가 치미는 사람은 분노로 포장한 '사랑받지 못 한 서러움'을 마주하고 고통을 완전히 받아들였을 때 사랑을 주고받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