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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한아빠 Feb 20. 2024

퇴사한 아빠의 좌충우돌 성장기 #가장 수여식

나는 비범한 여자와 결혼했다.

 

 신혼여행 때 일이다. 나는 신혼여행이 나의 첫 해외여행이나 다름없었다. 대학교 졸업여행을 대만으로 다녀오기 했지만 가라는데 가고, 쉬라는데서 쉬고, 사라는데서 사면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마음의 걱정이 전혀 없었다. 그런 나에게 터키라는 여행지는 듣도 보도 못한 아예 염두에도 없던 여행지였다. 처음 터키로 가자는 와이프의 이야기를 꺾을 자신이 없었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그 신나 보이는 눈이 아직도 선하다.

 

 자고로 신혼여행은 휴양지라고 생각했던 여행 무식자는 그렇게 장장 16시간 비행기에 몸을 태웠다. 결혼식 때 축가를 직접 하느라 한껏 예민해진 나는 결혼식전날 밤을 꼴딱 세고 당일 밤 12시에 비행기를 탔으니 거의 48시간을 깨어 있는 상태였다. 이 상태로 처음으로 장거리 비행기 좌석에 구겨져 있으려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몸이 탈이 안 나고 배기겠나. 깨어있은지 60시간. 아내는 여행의 기대감으로 점점 에너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불에 녹고 있는 얼음이었다. 흥건히 젖어 일어날 힘도 없을 때 와이프는 날 버리고 날아가버릴 것 같았다.

 

 결국 여행 첫날 몸져누었고 나를 간호해 줄 꺼라 기대한 그때, 아내는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했다.

“그럼 좀 쉬고 있어 나는 밖에 나가서 구경 좀 하고 올게"

지금이야 서로 깔깔거리는 에피소드이지만 당시엔 무척이나 서운했었다. 아내는 내가 아프니 여행을 못하는 게 미안해할까 봐 이런 제안을 했다고 했다. 물론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이런 면이 좋아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을 결심할 때도 그랬다.

 

 내가 먼저 우리 결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란 이야기 했지만 그 말이 진짜 결혼을 한번 만들어보자란 청혼의 뜻은 아니었다. 내가 사회적으로 준비가 된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다 하게 모아논 돈도, 결혼할 집도,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상황도 아니었다. 이제 직장생활 2년 차가 무슨 돈이 얼마나 있었겠나라고 변명을 해보아도 나는 이 사람에게 결혼을 이야기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여행자인 아내는 치앙마이를 혼자 다녀와 나에게 이제 결혼하자란 말을 꺼냈다. 굉장한 깨달음을 얻고 온 사람처럼 나에게 청혼의 의미를 담아 써 내려간 엽서를 건네주었다. 당시 와이프의 이야기가 정확히 기억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게 있어. 이제 내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더라고. 결혼할 때가 된 것 같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모를 때 아내는 각자 3천씩 준비하고 5천 정도 대출을 받아 전셋집으로 들어가자란 제안을 했다. 이 여자는 일이 다 잘 이루어질 것이라고 마침표를 찍어주는 것처럼 명확하고 확신에 차있었다. 우린 이렇게 결혼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과 사는 건.


 이렇게 배우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 있을까? 아내는 가만히 있질 못한다. 영어를 배우겠다며 1인 과외를 시작하고, 책을 쓰고 싶다고 홍대의 상상마당 클래스에 등록하고, 코칭전문가가 되겠다더니 대학원을 갔다. 그저 회사 안에서 인정받는 것 외에 크게 관심이 없던 나에게는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 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패턴이 정해졌다. 아내가 이탈리아를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그게 곧 나의 목표가 되고, 아내가 집을 사자고 하면 그게 곧 나의 목표가 되고,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하면 그게 곧 나의 목표가 되었다. 아내가 목적지에 깃발을 꽂으면 나는 그 깃발을 찾아가는 방안을 만들고 길을 안내한다.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삼성전자에서 만나 결혼한 우리는 5년 정도 후에 나는 이직을, 아내는 프리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또한 아내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삼성전자에서 우린 사내강사였고 무기계약직이었다. 정규직과 다름없이 P.S도 나오고 어떠한 처우도 다르지 않았지만 진급과 역할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성장의 미래가 없다고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우린 이동해야 해


 그렇게 나는 정규직이, 파트장이, 팀장이 되었다. 이러쿵 저렇쿵해도 나는 아내의 선택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퇴사를 응원해.

 

 아내에게 처음으로 퇴사하고 내 것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아내는 불쌍하면서도 기특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 주었다. 나는 소심한 사람이고 계획에서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나는 아내의 지지가 있을 때 대범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처음 아내에게 호감을 느꼈을 때 나는 아내의 당당하고 자유로운 성향이 나와 잘 맞을까란 걱정을 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부대끼면서 살지만 둘이 합쳐 플러스로 사는 건 확실하다. 아내에겐 목표가 나에겐 디테일이 있으니. 누가 히어로면 어떠나 사이드킥이 이렇게 빛나졌는걸.  


 그래 잘 생각했어. 하고 싶은 걸 해봐. 내가 힘이 돼줄게.

 

가장 듣고 싶었고 기대했던 말을 아내는 고민 없이 해주었다. 그간 10년의 세월을 그냥 보낸 것은 아니다.


가장 수여식.


 1인 회사의 대표이자 프리랜서 기업강사인 와이프는 요즘 바쁘다. 일이 끊이지 않고 매일매일 전쟁같이 보낸다. 내가 퇴근해서 아이를 씻기고 재우면 아내는 PC앞에 앉아 새벽을 보낸다. 그렇게 악착같이 자기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참 안쓰럽고 한동안 수입이 없을 남편의 빈자리를 채울 아내에게 참 고맙다.

 

 요즘 나는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아이를 등원시키고, 아내를 기다린다. 정신없이 살아왔던 시간에서 벗어나 요양하고 새로운 시작을 평안하게 준비하고 있다. 모든 것이 아내 덕이다. 아내가 요즘 내가 한 집밥을 보며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아이나 어른이나 챙김을 받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있어

 

나는 참 괜찮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가장의 자리를 아내에게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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