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짧은 여름이 단 열매의 진물처럼 쥐어짜면 터져나올 듯한 기억을 남기고 간다면 나는 평생 그 기억을 원망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알리오의 기억도 그렇다. 올리버의 등장과 동시에 알리오는 온종일 시나리오를 짠다. 그 계획은 맞아 떨어질 때도 있고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한밤중에 이사람이 나에게 와주었으면 할때의 두근거리는 마음, 다정했다가도 무심해지는 상대에게 느끼는 절망과 소유욕, 테라스 빨랫줄에 걸려 흔들거리는 수영복, 사람들 틈에서 춤추는 상대방과 앉아서 바라보는 나. 여름이 지나기 전에 심장이 안터진게 이상할 정도다.
원작소설 <그해, 여름 손님> 에서는 여러해가 지나고 알리오와 올리버가 만난다. 수년이 흘러 성장한 알리오는 더 이상 올리버를 원하지 않지만 여름의 기억 때문에 올리버를 용서하지 못한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소설이나 영화 인물들에 감정을 이입한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나는 영화의 주인공 알리오의 감정에 푹 빠져 있었다. 영화의 좋았던 장면을 몇 번 씩 되돌려 보았고 원작인 책을 구매해 읽었다. 주인공인 두 배우의 라디오 인터뷰를 찾아 듣기도 했다. 라디오 인터뷰에서 알리오역의 배우 티모시 살라메는 말한다. 첫 촬영을 한지 삼일 만에 마지막 장면을 찍었다고. 영화를 보았던 청중들은 감탄했고 감독과 두 배우는 촬영할 때 모든게 맞아 떨어졌다며 웃었다. 날씨도, 헤어스타일도, 사운드와 알리오의 얼굴에 앉았던 파리까지 완벽했다고. (마지막 장면은 알리오가 올리버의 결혼소식을 올리버를 통해 듣고 태연하게 전화를 끊은 이후 벽난로앞에 앉아있는 장면이다.)
나는 종종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책을 읽고 삶에서 등장인물을 떠올린다. 만약 내가 알리오의 삶이 아닌 배우의 감정에 공감한 거라면, 그렇다면 나는 가짜 삶에 공감한 걸 수도 있다. 늦은 저녁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안락의자에 앉아 영화에 몰입하기 전까지 온종일 대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그중 내가 집중했던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날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때가 많지만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 힘들다는 의미가 아니고 단지 감정이 단조로워 진 것을 느낄 뿐.
왜 우리는 서로의 삶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면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잘 흘리고 책을 읽고 삶에서 등장인물을 떠올릴까?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반대로 내 감정이 애달플때 상대의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고 마음을 닫는 경험을 반복하기도 한다. 내가 알리오가 되면 다른 사람은 전부 올리버가 된다. 나의 애달픔, 답답함, 수치심을 투영하는 상대는 영화속 알리오이고 올리버는 원망을 떠안는다. 위안이라면 그런 서툰 경험을 반복하면서 내가 감정을 배운다는 것. 여름이 다가오면 나는 미숙함과 기다림, 애틋한 감정들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