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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 Sep 02. 2021

수련(修鍊)

 화난 건물 주인에게 당장이라도 내쫓길 상황에 처했다는, 폐건물의 공사 구조물 더미에서 구출됐다는 검은색과 갈색 그리고 흰색 털이 섞인 이 고양이를 데려올 때 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고양이 이름은 뭐야?”


“야옹이.”


“그것 참... 원론적이네.”


 야옹이는 내가 평소 동네 길고양이들을 부르는 입에 잘 붙는 부르기 쉬운 말이었다. 주변에선 너무 성의 없는 게 아니냐고 했지만 임시보호를 맡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이름을 지어주기보단 새로 입양될 가족이 정을 붙이며 지어주는 게 낫다고 보았다. 야옹이는 길 생활을 오래 한 이미 4살 정도 된 성묘이며 가구를 물어뜯거나 물건을 부수지 않고 용변처리도 알아서 잘해 챙길 것도 별로 없다고 지역 캣맘인 구조자는 말했다. 구조자는 일주일 전부터 우리 집을 방문해서 구석구석 확인하고 주의사항을 알려주었고 안전이 가장 중요한 점을 강조 또 강조했다. 나는 이미 베란다 창문에 방묘창과 울타리를 설치했고 모든 용품 준비가 다 되어있으며 내가 얼마나 고양이들을 사랑하는지 흥분한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차분하게 말하며 잘 돌볼 자신이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아유 이렇게 갑자기 집이 변화했는데, 남자 친구가 싫어하진 않을까요~?”


“남자 친구 없어요.”



 야옹이의 얼굴도 못 본 날도 많았다. 간식을 들이미는 접시를 발톱을 세워 쳐버리고 날카롭게 하악질을 했지만 깊은 구석으로 들어가 하루 종일 나오지 않다가도 내가 출근할 때 얼굴을 빼꼼 보여줄 때면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래서 고양이, 고양이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정말 고양이 타입이야. 나는 원래부터 cat person이었어.






 스무 살 적부터 틈틈이 운동으로 요가를 했지만 요가를 이해하고 꾸준히 실천한 적은 없었다. 운동을 워낙 좋아했기에 수영, 복싱, 러닝 등등 조금씩 손댔다가 그만두기도 했지만 요가 수업은 접근성이 좋고 띄엄띄엄해줘도 몸에 결린 곳이 풀리고 잔근육이 생기는 걸 보면 재밌어서 쉽게 그만둘 이유도 없었다.

 직장을 자리 잡고 3개월간 다니던 요가원에서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 내가 못하던 자세들에 대한 공포감을 극복했다. 후굴 자세인 위로 향한 활 자세(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에서 처음 고개를 바닥에서 떼었을 때는 뿌듯함이 일었다. 이전까지 허리 통증과 어지러움으로 쉽사리 도전하지 않았던 자세였다. 문제는 머리 서기 자세(시르사 아사나). 혼자서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내게는 요가 초고수들의 세계라고 생각했던 동작이었다. 항상 자세 연습 시간이 다가오면 벽 쪽에 다가가 바닥에 머리를 대고 다리를 한쪽씩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는데 선생님은 야속하게도 한동안 매 수련시간의 마무리로 머리 서기를 시켰다.


“힘도 좋고 못할 이유가 없는데, 한번 연습해 봐요.”







 이왕 사는 거 비싼 사료, 비싼 모래, 유기농 간식. 나만 보면 화들짝 놀라 구석으로 숨어버리는 야옹이와 6개월이 넘는 동거가 지속되고 있었다. 출근하지 않는 날 집에서 종일 야옹이를 지켜본 결과 야옹이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편하게 자고 가끔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지만 아무래도 내가 있으면 불편해 보이는 게 느껴졌다. 둘이 같이 집에 있으면 야옹이의 행동반경은 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반경 2M 외에서 이루어졌다. 좁은 집에서 이렇게 구석만 찾아다니는 것도 힘들겠다, 너. 내가 집에 없으면 집안 곳곳을 자유롭게 휘젓고 다닐까? 야옹이는 진열해놓은 와인병이나 꽃병, 장식물을 발끝으로도 건들지 않고 우아하게 높은 가구 사이로 점프해 들어가곤 했다. 같잖은 희망, 나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친숙하게 느껴지게 하기 위해 나는 간식 접시를 일부러 내 침대 근처에 바짝 붙여두고 외출했다.


 나는 그냥 화장실 치워주는 사람이야. 얘를 편히 쉬게 놔두고 나는 어디 근처 호텔에서 자고 들어가고 싶다니까.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시간이 지나도 이제 조금 친해졌구나 느낌이 오는 날조차 없었지만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갈색 털이 묻어있는 걸 발견했고 내 침대에서도 뒹굴거리며 잤구나 하며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내가 cat person임을 상기했다.






 원데이 클래스로 처음 요가 수업을 들으러 온 사람들도 수업의 마무리가 되면 조금의 도움으로도 머리 서기를 성공해 내곤 했다. 다들 쉽게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더 걸리겠구나. 유연성과 근력이 떨어지지 않아 일반적인 수업을 들었을 때 웬만한 요가 동작들이 남들보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잘 나오는 편이었고 꾸준히 한 편이니 요가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요가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땐 요가엔 잘하고 못 하는 게 없어요!라는 회초리가 필요하다.) 머리 서기를 수행해내는 혼자만의 연습은 하지 않았고 곧잘 머리 서기를 하는 다른 수련자들을 보며 드는 작은 무력감이 나를 그 자리에 머무르게 했다.


 ‘키가 커서 다리를 올리는데 중심잡기가 더 어렵다고요. 코어가 아직 부족한 거 같기도 하고...’ 이번 선생님에게는 이런저런 핑계가 통하지 않았다. 동작 연습 시간이 다가오자 선생님이 내가 벽 쪽으로 매트를 옮기지 못하게 막았다.


“저를 믿고 다리를 올려서 뒤로 아예 기대 보세요.”


“넘어질 것 같아요!”


“내가 뒤에 있는데?”


 하나 들기도 무거운 다리와 돌탑을 쌓아놓은 듯이 부들부들 흔들리는 상체. 두 무릎을 붙여 치켜든 상태에서 용기 내 다리도 뻗었지만 선생님 손에 두 발이 닿기도 전에 허리가 무너지고 발이 밑으로 떨어졌다. 선생님을 보며 민망한 웃음뿐.

 요가를 꾸준히 다닌 지 육 개월 차지만 조급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빨리 머리 서기를 해내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집에서 맹연습을 시작했다.

 앞으로 구를 테면 구르지 뭐.

 패기 있는 마음가짐이었지만 집에서도 여전히 다리는 육중하게만 느껴졌다.






“워낙 애가 예쁘게 생겨서 입양 문의는 항상 많았어요.”


 등을 돌린 채 구석에서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덩치 큰 고양이. 그렇게 있는 둥 없는 둥 화장실을 치워주고 밥을 잘 먹었는지 확인하며 시간은 흘러갔다. 구조자였던 캣맘은 야옹이의 외모 덕에 인기가 원래 많았기 때문에 입양은 빠른 시일 내 될 거라고 예상했고 나도 예쁜 야옹이의 사진과 함께 가족을 찾는 글을 유기묘 어플이나 입양 카페에 올리면 꾸준한 입양 문의를 받고 있었다.


 예상한 것보다 야옹이의 입양은 지연되었다. 구조자는 일 년이 다 돼가는 기간 동안 몇십 명이 넘는 입양 희망자들을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퇴짜 놓았다. 그래, 나보다 더 잘 아는 고양이 전문가이니까. 평생 가족을 구하는 건데 그 정도는.


“그런데 퇴근하고도 자주 밤에 나가서 노세요? 야옹이랑 시간을 많이 안보내시나 해서...”


 야옹이가 생각보다 마음을 안 여는 것 같아 답답하다는 고민을 내비치자 구조자가 질문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내가 노력을 안 했다는 건가요?


 나의 임시보호 고양이를, 내가 데려온 나의 동거묘를 내 마음대로 통제하기를 원했던 걸까? 고양이를 길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길들이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야옹이가 야속해 소용없는 것을 알면서 잠깐 동안 억울했다. 야옹이가 나가버렸으면 좋겠기도 했다.


“야!!!”


구석 어딘가에 있을 야옹이를 불러봤다. 넌 너무 못됐다고 나는 혼자가 훨씬 편하다고 마음속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일 년이 다돼가는 시간 동안 야옹인 내 곁으로 오지도, 나를 향한 다정한 신호 하나조차도 보내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야옹이는 침대 옆 내 흔들의자 앞쪽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야옹이의 엉덩이 쪽으로 조심스레 손을 가져가자 야옹이는 숨소리를 내며 화난 표정을 지었다. 평소 같으면 내가 조금 다가갈 때마다 이빨을 보이거나 손으로 툭 치지만 그러지도 않아서 나는 야옹이를 마주했다. 어디가 아픈지 그르릉 거리는 숨소리는 거슬리고 야옹이는 기침을 했다. 내가 봐야 아픈지 안 아픈지를 알 것 아냐. 밤새 기침하는 야옹이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묘하게 껄끄러운 구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선 밥을 잘 먹고 용변을 잘 보니 심각한 것은 아닐 거라고, 기다려보자고 해서 안도하고 밥그릇에 기침용 간식을 사료와 섞어서 놓았다.


아프지 마 야옹아.. 나는 언제든 너를 보낼 준비가 되어있어. 야옹이의 기침은 알게 모르게 일주일 만에 잦아들었다.


“좋은 분을 찾은 것 같아요.”


구조자에게 연락이 왔다.






 비가 내리고 몸이 미세하게 안 좋았던 날. 습해서 몸이 찌뿌둥하거나, 추워서 몸이 오그라들었거나 요가 수련 전 몸이 덜 풀려 있으면 불안한 마음으로 동작을 시작하게 된다. 수업은 계속되고 몸은 서서히 풀려가지만 그 끝에는 두려움이 있다. 선생님의 간단한 머리 서기 자세 시범과 설명을 들으니 긴장이 됐다. 매일 집에서 요가매트를 폈을 때처럼, 오늘도 다를 것 없이 하면 된다는 떨림.


“되네요.”


 수강생들의 동작을 봐주던 선생님이 나를 보고 지나가며 한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세를 가능한 길게 유지하고자 집중하며 눈을 감았다. 다리가 흔들거리며 곧 밑으로 털썩 떨어졌지만 성공했다는 몸의 안도감으로 심장이 두근댔다. 송장 자세로 휴식하는데 어느 때보다 차분하면서도 나를 맴도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요가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수련에 한 발자국 다가간 느낌을 받았다.






 “십 개월이나 데리고 있다고? 그 정도면 임시보호가 아니라 그냥 키우는 거 아니냐.”


 시큰둥한 사람들의 반응에도 나는 철저하게 입양을 준비했다.  개월째 야옹이는 나를 피해 다니고 털끝 하나 손대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새벽녘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뒤편으로 야옹이는 소리 없이 오더니 의자 아래쪽에 앉아 식빵 자세를 취했다. 조용히  모습을 곁눈질로 지켜보던 나는  옆에 다가가 팔을 머리에 괴고 가만히 바닥에 누웠다. 같이 있는 느낌이 들기도 . 있는  없는  너랑 십몇 년을 함께  수도 있겠지. .  나보다  무심하고 너랑  맞는 사람을 만날  있을  같니? 그래도 세상엔 좋은 사람이 정말 많아.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날 거야.

 다른 가족을 만나  개월간은 예민해할 야옹이를 생각하면 마음속에 시큰함이 느껴졌다. 네가 가는  서운하지 않아 . 후회도 미련도 없다는 말을  임시 보호한 길고양이에게 써먹으려 하는지. 이제는 성큼 다가가도 발톱을 세우며 하악질을 하지 않는  고양이에게 나는 눈초리를 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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