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오셔서 일주일간 몸조리를 도와주셨다.
엄마는 이제 68세 결코 젊은것은 아니다.
그러나 몸이 무거우셔도 정성스럽게 나를 간호해 주신다.
가실 때 용돈을 못 드려서 맘이 아프다.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주시는 엄마가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힘들어 보이는 엄마를 생각하며 난 몇 번이나 가슴이 메어지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제 연로하신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우린 너무 멀리 떨어져 산다.
"엄마도 무서운 게 있어?"
어린 시절 혼자 자는 게 무서웠던 늦은 밤에 나는 엄마나 아빠 곁으로 가서 이불을 꼭 덮고 누워있었다. 곧 어두운 밤의 공포나 불안감이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이 들면서 엄마 아빠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위험에 처해도 내 곁에 다 큰 어른이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보호해 주겠지' 하는 안도감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엄마는 무서운 게 없느냐는 나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엄마는 그런 게 어딨냐, 나도 무서운 게 있지. 라며 피식 웃었다. 그 대답을 듣고서야 나는 엄마도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는 무서움을 느끼거나 외로움을 타지 않을 거라는 생각. 언제나 아주 어른이라는 생각은 내가 다 자라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마음속에서 쉽게 바뀌지 않던 기억이다. 늘 가족을 돌보는 노동으로 여유가 없었던 엄마의 모습만을 보고서는 그도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29세에 결혼을 한 엄마에게 가장 급격히 변한 것을 꼽자면 남편 따라 다른 도시로 오느라 바뀐 환경이다. 외할머니나 내 작은 이모인 동생과 떨어져 살게 된 엄마는 가끔 전화통화를 하거나, 몇 개월에 한 번씩 가족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썼던 엄마의 글에는 순수한 외로움과 슬픔이 담겨있다. 잠시 내 삶의 고단함은 잊고서 가족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나와 고작 몇 살 차이였으니.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엄마를 충분히 위로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서툴렀던 나는 장례식 이후에도 엄마와 할머니의 이별이 얼만큼인지 헤아리지 못했다. 두 사람은 거의 30년이 넘도록 멀리 떨어져만 살았고, 또 할머니는 아흔세가 넘었으니까 이별의 시간이 완만하게 걸릴 거라고 넘겨짚었다. 엄마를 잃은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는 핑계로 좀 더 가까이에서 마음을 돌봐주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서도 30년이 지난 지금 엄마의 딸들은 엄마로부터 다 제각각 떨어져 있다. 가끔 엄마도 밤이 외롭고 불안한 날이 있을 거라고 알게 된 지금, 엄마에게 달려가서 있어주지 못하는 살갑지 못한 딸은 사진을 실은 메시지 하나에 최대한 다정함을 담아 보려고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