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제는 친정에 갔다가 사당동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영미, 소진, 부자, 희경. 모두 열심히 잘 살고 있었다.
꿈 많던 고등학교 시절, 우리들의 천진했던 추억들이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영미는 여전히 여유 있고 멋있고 예뻤으며 소진이는 여전히 학구적이고 때론 반항적이었다. 부자는 사회생활하는 사람답게 다듬어져 있었고 희경이는 유치하게 야한 말괄량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럼 나의 모습은 어떠했나?
그것은 다른 애들이 잘 보고 있겠지만, 혜민이 동생 있은지 8개월이며, 여전히 힘이 들어 보이는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나도 뭔가 해야 하는데
혜민이 키우고 동생 키우면서 가정에 묻히지 말고 남편에게 묻히지 말고 나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옛 추억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연락이 닿는 어릴 적 친구들. 어릴 때 행동과 말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듯한 고등학교 동창생 친구들의 또렷한 모습이 읽는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동시에 친구들의 모습에 본인을 비춰보며 상대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는 처지에 대한 마음을 가진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리다.
그럼 나의 모습은 어떠했나?
나도 뭔가 해야 하는데
1990년대에 엄마는 결혼, 임신과 동시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사회생활 하며 명랑한 친구들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끼고, 여자들이 남자와 동등한 지위를 지닌 명함을 가진 세상을 꿈꾸던 엄마에게 아이를 키우는 책임과 가정주부라는 신분은 답답하고도 갇혀있는 세계가 아니었을까?
늦은 공부, 늦은 결혼, 늦은 생활 안정. 모두 늦는 것의 연속이고 연장인데 또 아이를 낳는다면 집안에 꽉 잡힐 것이다. 우선 6월 13일에 있는 시험에 합격하고 봐야 한다. 이것 떨어지면 정말 꺼리가 없는 주부가 되고 만다. 좀 잘난 여자가 되자. 남의 엄마보다 잘난 엄마가 되어보자. 늦잠을 자도 이쁘고 집안일을 못해도 입 막는 법은 쟁쟁한 직업을 갖는 길 밖에 없다. 꼭 쟁취하자.
32세. 당시 나와 같은 나이였던 엄마의 일기를 숨죽이며 읽어본다.
내 경력과 지위를 갖고 싶어 하는 열망. 실력과 직업을 통해 잘나고 싶어 하는 나와 똑같은 욕망을 가진 모습이다.
당시 엄마에게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돈을 벌어 가계에 보탬이 되는 효과를 줄 뿐 아니라 엄마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갖출 수 있는 중요한 일이었다. 엄마는 존중받기 위해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 키우면서 가정에 묻히지 말고 남편에게 묻히지 말고 나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던 엄마의 다짐.
이제는 내가 벌어야지. 과외를 하나 더 늘려야지. 부업해야지, 통역 학원, 가이드 시험, 보육교사 개업. 일기마다 적혀있던 자잘한 엄마의 계획은 달이 지날 때마다 조금씩 수정되었다. 30대의 엄마는 여행 가이드 시험을 보고 싶어 했고 동시에 아이를 셋 낳아 길렀으며 그 아이들 한글 깨치게 하는 것을 한 해의 목표로 삼았다.
숨 가쁘게 혼자 육아하면서도 계속 '나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라고 스스로 다짐 또 다짐하던 엄마에게.
내가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잘나고 똑똑하다고, 어릴 때와 같이 눈에 빛나는 꿈을 꾸고 있고 열정적이며 멋있는 모습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