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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Jun 19. 2019

[Easy Listening For Love]

2019. 05. 10. 작성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Easy Listening For Love (2019)


술탄 오브 더 디스코에겐 두 가지 얼굴이 있다. 디스코의 흥겨움으로 가득한 신나는 모습과 키치적 요소를 덜고 음악 자체에 진지하게 집중한 모습이 그것이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후자의 모습을 'Easy'한 면모라고 규정한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디스코계의 왕(술탄)이라는 컨셉보단 편안한 음악적 요소를 강조한 것이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더 '쉬운'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 술탄 오브 더 디스코를 아는 사람들은 밴드 음악에 맞춰 춤추는 두 프론트맨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일요일 밤의 열기>나 <캐러밴> 등의 작품으로 초반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가져갔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작품 중 최고로 꼽는 곡은 <숱한 밤들>이다. 초기작 중 'Easy'한 면모를 보이는 곡이다. 직전 앨범 [Aliens]에서도 <사라지는 꿈>을 가장 좋아한다. 나잠 수, 김간지 등 밴드 결성 이전에도 각자 뛰어난 음악성을 보여주던 멤버들이니 만큼 음악성에 집중한 모습에도 갈증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EP [Easy Listening For Love]는 이러한 갈증을 해소하는 앨범이다.


미국의 60~70년대를 연상시키는 복고적인 앨범 커버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 같다.


<Sneaking Into Your Heart>는 첫눈에 반한 상대에게 '몰래몰래 네 맘속에 들어가 / 내 맘을 여기저기 심어놓고 나왔지'라며 유혹하는 모습을 담았다. 벌스와 서브 벌스, 코러스 간의 분위기 차이가 확실해 묘한 긴장감을 주어 지루할 틈 없는 곡을 완성시켰다. 벌스 부분에선 목만 끄덕거리며 감상하다 서브 벌스에선 잠시 멈추고, 코러스 부분에선 온몸으로 리듬을 타며 즐겁게 감상했다.


<Shining Road>는 맑은 날 멋진 차를 타고 사랑하는 사람과 드라이브를 하는 상황을 주제로 했다. 첫 번째 곡의 상대와 연인이 된 것으로 스토리가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탁 트인 도로 위를 신나게 달리는 모습을 담아 기분 좋은 바이브를 보여준다. 더워지는 요즘 딱 듣기 좋은 노래다. 앨범명 [Easy Listening For Love]와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내부순환>에선 앞선 두 곡에서의 분위기를 반전시켜 꽉 막힌 내부순환도로의 풍경을 담아낸다. 전 트랙 <Shining Road>의 '운전'이라는 소재를 비틀어 교통체증이라는 상황과 답답한 교착상태에 빠진 권태기의 상황을 엮어낸 것이 흥미롭다. '나갈 수도 없고 그래 봤자 난 / 여기 아니면 어찌 가니 / 가본 적도 없는 다른 길/ 벗어날 수 없어 늘 내부순환이야'라는 가사로 계속 이어나가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끝낼 수도 없는 애매한 관계를 공감되게 표현했다.


<면역>은 <내부순환>과 비슷한 결의 곡이다. 권태기에 빠진 연인의 관계이지만 '아직 사랑할 수 있어'라며 사랑이라는 병에 면역되지 않게 날 더욱 사랑해달라는 이야기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웨ㅔㅔㅔㅔ(feat. Blacknut)>, <통배권(feat. 뱃사공)>, <Playaholic(feat. 김아일)> 등 다양한 작품에서 힙합이라는 장르를 자신들의 음악에 접목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보였다. 이러한 기조가 '지루해지기 전에 네게 감염 / 기억해 밀어냈던 건 운명 / 익숙해져 버린 순간 이별'이라는 라임 살린 가사로 드러난 것이 인상적이다.


각 곡마다 담긴 주제와 분위기가 신선해 한 곡씩 들어도 좋고, 4곡 분량의 작은 EP지만 트랙 간의 흐름이 확실해 이를 읽어가며 들어도 재밌는 앨범이다. '술탄'과 '디스코'라는 확고한 컨셉에서 약간은 벗어난 모습을 보였던 앨범 [Aliens]의 성공이 술탄 오브 더 디스코에게 있어 부담감을 내려놓고, 좀 더 자유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앞으로도 'Easy'한 모습이 담긴 수작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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