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티스트 XXX가 [Language]로 미국 음악 매거진 Pitchfork(이하 피치포크)에서 7.3의 평점을 받은 것이 꽤나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여러 비판이 있음에도 오늘날까지 피치포크는 좋은 (대개 '힙스터'의 입장에서) 음악의 품질보증서 역할을 하고 있다. 12 rods의 [gay?]는 짠물 평점으로 유명한 피치포크에서 10/10(만점)의 점수를 받은, 발매일 기준으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동시에 현재는 그 리뷰와 점수가 삭제된 작품이기도 하다.
[gay?]는 왜 피치포크에서 삭제되었을까? 이제는 따로 저장된 비공식 아카이브에서만 읽을 수 있는 [gay?]에 대한 리뷰는 지금 피치포크에 포스팅된 다른 글들과 사뭇 다르다. 12 rods에 대한 소개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 대신 주관적인 에세이 형식을 취한 리뷰는 피치포크를 자주 들락거리는 나도 처음 본 형식이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개인적으로 [gay?]는 이러쿵저러쿵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그 당시엔 마음으로 다가오는 앨범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gay?]는 삭제되지 않았을까.
피치포크에서 10/10을 받은 작품은 정말 적다. 그리고 그 면면을 살펴보면 Wilco의 [Yankee Hotel Foxtrot], Radiohead의 [Kid A] 등 10/10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반론의 여지가 없는 작품들뿐이다. 그렇기에 피치포크 입장에서는 과거에 단순히 끌린다는 이유로 10/10을 주었던 [gay?]와, 오늘날 본인들이 숙고하여 설정한 여러 잣대를 통과하고 나서야 10/10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한 '위대한' 작품들을 같은 선상에 놓은 것은 실수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명성을 일구는 데 그 엄격한 잣대가 아주 큰 역할을 했으니 [gay?]가 그런 시험대에 오르지 않고 영광을 누린 것이 본인들 입장에서도 찝찝했을 것 같다.
그럼 [gay?]는 피치포크에서 버림받은 소위 '구린'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는 절대 아니라고 하고 싶다. 피치포크에서 10/10을 받은 앨범이라는 것만 알고 리뷰가 삭제된 것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그만한 음악은 아닌 것 같은데...'하고 의아하긴 했었다. 스스로 피치포크와 음악적 취향이 맞다고 느껴왔기에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으며 이게 어떤 부분에서 좋은 것일까 골똘히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석연치 않지만 10/10을 받은 것에 대해 납득되고 있었다. 그런데 납득을 넘어 이상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음악이 왜 좋은지 설명이 안 되는 거다. <Red>의 초반부 드럼 솔로가 무슨 역할인지, <Make-Out Music>의 가사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Gaymo>의 멜로디가 계속 귓가에 맴도는데 이게 어떤 감흥을 주는 것인지 하나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여타 중독성 강한 음악처럼 강력한 훅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계속 듣게 된다. [gay?]는 그런 앨범이다.
대중은 12 rods를 잘 모른다. 국내 포털은 둘째치고 유튜브에서도 정말 이상하리만치 언급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앨범에 대해 쓰고 싶었다. 피치포크에서 10/10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독특한 경력을 가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소수에 사람들만 알고 있는 이 앨범을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한지 서너 달이 지났고, 결국 나도 [gay?] 자체가 아닌 그 주변 얘기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치 피치포크가 지워버린 그 리뷰처럼.
세상엔 좋은 음악이 많다. 그리고 그중엔 왜 이 음악이 좋은 음악인지 설명할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재밌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음악이 있다. 이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약 반년쯤 된 초짜 음악 리뷰어로서 느낀 바가 있다면 한편으론 정말 끌리는 음악임에도 설명이 어렵거나 불가능하고, 그래서 도무지 글로 쓸 수 없어서 그냥 들어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진 못하는 그런 음악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gay?]는 음악적인 요소를 하나하나 따지고 장단점을 짚어가면서 왜 좋은지 설명하기 어려우면서도 그러한 설명이 딱히 무의미한, 그런 작품이라는 것이 무책임한 내 결론이다. [gay?]는 나에게 아무런 인상도 주지 않지만, 좋은 음악이다. 그런 음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