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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Aug 15. 2019

그냥노창 <미도+길이>

정임용의 신곡 리뷰 - 그냥노창 <미도+길이>

그냥노창 - 미도+길이 (2019)



최근 천재노창에서 랩네임을 바꾼 그냥노창이 근 4년 만에 싱글 <미도+길이>로 돌아왔다. <미도+길이>는 <행>, <힙합> 등의 작품에서 보여준 긴 호흡의 단일 작품이다. 그냥노창은 14분가량의 곡 길이를 자랑하는 이 곡에서 <행>이나 <힙합>처럼 아예 다른 비트를 이어 붙여 두 개 이상의 주제를 제시하기보단, 하나의 비트를 다양하게 변주하고 사이사이 주의를 환기하는 요소를 삽입하여 '미도'와 '길이'라는 두 주제의 관련성을 높인다. 기괴하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나 내용 자체는 생각보다 밝고 아름답다.


블로그에서 '미도'를 음악으로 치환하여 해석한 글을 참고하였다. 대놓고 앨범 소개에 레퍼런스 되어있듯이 곡 제목의 미도는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미도다. 그냥노창은 오대수가 오랜 시간 갇혀있던 상황과 스스로를 겹쳐내며 잠적한 기간 동안 느꼈던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풀어낸다.

이 곡에서 '미도'는 음악이다. 영화 속 미도는 오대수의 사랑이다. 그냥노창에게 음악은 위로다. 그는 음악 위에서 편히 누울 수 있고, 음악은 개미보다 작은 감옥 속 낙이다.

미도는 영화의 끝에서 오대수를 무너뜨리는 장치다. 그냥노창에게 위로가 된 음악은 그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냥노창의 음악은 야속하게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춤을 추고'), 이는 그것을 만든 아버지의 괴로운 시간과 대비된다. 자신의 힘든 상황을 버텨내다 보니 시간을 빠르게 지나가버렸고, 그냥노창은 그 시간 동안 창작을 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자책한다.


'미도'에서 그냥노창은 잠적하며 음악 때문에 울고 웃던 시간을 보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래서 다시 태어나보려 해 나는 환생없이', ' Tmr me : Get the fuck out of my bed', '검붉은 나약함의 기를 받아 이 거룩한 포기의 바짓가랑이를 잡아 - 놔!' 같은 가사에서 추측하건대 이제는 그런 시간들을 이겨내고 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냥노창은 '여기까지가 그간 제가 겪은 시간의 일부입니다. 끔찍한 이야기. 끝까지 들어.'라고 말하며 '길이'의 시작을 알린다. '길이'에선 '미도'에서 제시한 흘러간 시간에 대한 주제를 더 심도 있게 다룬다. 자신이 잠적하며 음악 활동을 하지 못한 시간 동안 hustle 하며 자리 잡은 기리보이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띈다. [100년제전문대학], <관종>, <호구>, <아퍼>, <빈집> 등 제목을 활용하고 <Rain Shower>, <flex>, <성인>의 기리보이 벌스를 오마주 하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기리보이를 바라보며 그냥노창은 자신이 허비했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러다 그는 이러한 고민을 그만둔다. 그리고 자신은 과거를 돌리러 여기 온 것이 아니고, 그냥 여기 있을 뿐이며 나는 스스로를 구해낼 것이라고 희망차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그냥노창의 결의는 성스러운 분위기로 전환되는 비트와 어우러져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길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에 대한 내용은 영화 '인터스텔라'를 차용함으로써 더 가까이 다가온다. 'I've got years of messages stored'라는 마지막 말은 앞으로 그냥노창의 활동을 기대하게 만든다.


(<미도+길이>에 사용된 레퍼런스는 힙합 LE의 게시글을 참고하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매 작품마다 그냥노창은 주제를 무언가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가사로 곧장 제시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런 그냥노창의 직관적인 스토리텔링은 은유를 사용한 가사보다 더 어렵다. 이는 가사뿐만 아니라 '미도'의 이름을 실제 음계 '미'와 '도'를 활용하는 등 음악적 표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머릿속으로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이를 거침없이 실현한다. 그냥노창은 듣는 이의 쉬운 이해와 공감을 위해 생각을 다듬지 않는다. 다만 순간의 센스를 발휘해 번뜩이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더 환상적인 경험을 만들어 낸다. 그냥노창은 용감하다.





'좁고 깊게' 듣는 레토르트 에디터 정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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