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찬 [일지]
구원찬은 2017년 첫 EP [반복]에서 제시한 행성과 꽃(성화)에 대한 컨셉은 잠시 접어두고 백예린, 장석훈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다. 2년이 지난 현재 구원찬은 화려한 주목을 받진 않지만, 아티스트로서 단단한 입지를 마련했다. 그리고 [반복]이 발매된 지 2년이 지난 2019년, [반복]으로부터 이어지는 [일지]가 발매됐다.
스스로의 활동을 하나의 여정으로 규정하고, 행성을 돌아다니며 꽃을 찾아다닌다는 스토리텔링은 흥미롭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스토리텔링 없이도 구원찬의 음악을 듣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소위 컨셉이 잡힌 앨범이라 하면, 그 안에 담긴 곡 하나하나에 그러한 이미지가 직간접적으로 담겨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구원찬의 음악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이러한 컨셉은 의미 없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이 스토리텔링이 구원찬이 우리에게 원하는 최소한의 고정관념이라 생각한다. 그는 이 컨셉을 단순히 자신의 작품을 장식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행성은 음악을 시작한 날부터 세어나간 '하루'로, 꽃은 '목표, 이상향'으로 연결시킨다. 현실과 예술의 경계는 흐려지고, 리스너는 음악을 감상하면서 구원찬을 만난다. 그가 곡 하나하나에 담아낸 보편적인 감성에 공감하다 보면, 한편으로 우리도 모두 꽃을 찾아 행성을 돌아다니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일지]는 이 이야기의 시작인 [반복]과 다음 챕터인 정규 앨범 [확인] 중간에서 지금까지의 여정을 정리하는 앨범이다. 이 앨범을 충분히 즐기고 싶다면 앨범 소개와 함께 감상하기 바란다. 쉽고 보편적인 내용을 담은 각 트랙은 앨범 소개에 부록처럼 하나씩 일지를 달고 있다. 음악 속에서 어렵지 않은 표현을 선택하며 리스너의 공감을 얻어내면서도 글의 형식으로 작성한 일지를 통해 곡에 아티스트 본인만의 이야기를 부여하며 훨씬 더 풍성한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1번 트랙 <지점>을 예로 들어보자. 싱글 <너에게 (feat. 장석훈)>에서 사랑받길 원하던 구원찬은 <지점>을 통해 사랑해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 그 사이의 지점을 찾고 있다는 구원찬의 메세지는 서로를 맞춰가는 보편적인 연인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구원찬은 [일지]에서 Fisherman, Humbert, FRNK와 다시 한번 합을 맞췄는데 각 프로듀서의 질감이 오롯이 드러나면서도 구원찬만의 색이 칠해져 일관성이 느껴진다. <해야해>에선 XXX에서 보여준 FRNK 특유의 거친 속성을 분명 느낄 수 있지만 이것이 구원찬의 부드러움을 만나면서 새로운 개성이 만들어졌다. 구원찬과 가장 안정적인 호흡을 보이는 Humbert와의 트랙 <필요해>는 역시 준수한 완성도를 보인다. <차마>엔 Fisherman이 최근 EP [Well Being]에서 보여준 감성이 그대로 살아 있어 반가우면서도 그 감성이 구원찬의 세계로 확실하게 스며든 것이 인상적이다.
선우정아의 피쳐링이 돋보이는 <후회에게 (feat. 선우정아)>는 두 보컬이 안정적으로 곡을 이끌어나가며 차분하게 앨범을 마무리한다.
물론 그 사이의 여러 작품도 좋았지만, [반복]에서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구원찬만의 이야기가 기다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속편 [일지]는 일단 성공적이다. [확인]으로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