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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Nov 03. 2019

분당적인 브릿팝

바이 바이 배드맨 <5500-2>

바이 바이 배드맨 - <5500-2> (2011)


그들의 이름은 영국 밴드 스톤 로지스의 1집 [The Stone Roses]에 수록된 <Bye Bye Badman>에서 따온 것이다. 이름만 봐도 뻔하지만 바이 바이 배드맨의 첫 정규앨범 [Light Beside You]는 브릿팝, 특히 스톤 로지스로 대표되는 *매드체스터 씬의 색채를 진하게 담고 있다. <5500-2>는 바이 바이 배드맨의 전체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매드체스터스럽다. 10분 가까이 되는 곡의 길이 / 벌스와 코러스가 이루는 기승전결 / 댄서블한 리프의 반복과 변주는 물론이고, 곡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인스트루멘탈이 사실상 트랙을 정의 내릴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까지 <5500-2>는 스톤 로지스의 <I Am the Resurrection>과 정말 많이 닮았다.


*1980년대 후반 영국 맨체스터에서 생성된 음악 씬. (명확한 정의가 여기선 크게 중요하진 않다. 궁금하면 링크)


영국 브릿팝의 열풍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한국 밴드. 그들이 만들어낸 가장 영국스러운 앨범 [Light Beside You]. 이 음악을 사람들은, 특히 국내에서 본토 브릿팝 좀 듣는다고 자부했던 리스너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뻔하지 뭐. "이거 듣느니 오아시스 듣지"


8년 전 웹진 weiv에서 작성된 이 앨범의 리뷰를 작성한 이 역시 그런 리스너들 중 한 명이었음이 글에서 느껴진다. 허나 강산이 4/5 변할 만큼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 와서 그런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을, 또 이 리뷰를 비판하는 것은 치사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이 리뷰에 담긴 밴드와 앨범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당시 한국 브릿팝 밴드계 영건으로 떠올랐던 바이 바이 배드맨에 대한 흥미로운 시선이다. 언어와 로컬리즘이라는 두 개의 큰 화두가 그것이다.


가사와 언어에 대해 짚고 넘어간 부분에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바이 바이 배드맨 스스로가 2019년 현재까지 그것을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당시와 현재의 국내외 음악적 기조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2011년 이후의 앨범, 특히 [Authentic]을 기점으로 발매된 작품 중 가사에 한국어가 사용된 곡들(<Mercury>, <Always in love> 등)은 [Light Beside You]의 트랙들과 형식, 멜로디, 스타일 면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바이 바이 배드맨이 외국의 스타일을 '한국적'으로 절충하지 않고, 또 자신들의 지역적 색채라 할 만한 특징을 거의 지워버림으로써 가장 '로컬'한 전략을 취했다는 로컬리즘에 대한 언급은 유치하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오아시스 대신 바이 바이 배드맨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다.


'5500-2'라는 번호는 나에게 묘하게 익숙한 번호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분당'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단순히 주소상으로 분당에 편입된 곳. 가장 가까운 시내까지 택시를 타고 가긴 아깝고, 걸어가기로 마음먹기엔 생각보다 멀고. 바로 앞 정류장엔 배차시간을 가늠할 수도 없는 버스가 정말 가끔 정차하고, 그것보단 형편이 조금 나은 정류장까지 가다 보면 그냥 걸어가는 게 낫겠다고 마음이 바뀌는. 정말 뜬금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높고 가파른 언덕 위에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가 있다. 그 언덕을 내려오면 나타나는 8차선 도로와, 정차하는 정류장이 아니기에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 앞을 빠르게 지나치는 빨간 버스. 그 버스의 번호가 5500-2다. 그리고 [Light Beside You]의 마지막 트랙 제목 <5500-2>은 바이 바이 배드맨 멤버들이 분당에 살 때 자주 탔다던 그 버스의 번호를 딴 것이 맞다.


5500-2번 버스를 타본 적은 없다. 다만 언덕을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 꽃집이 늘어선 보도를 걷고, 터널을 통과해 가로수가 규칙적으로 서 있는 도로를 지나, 잡월드를 지나쳐 다리 하나를 건너야 나타나는 수내역 시내 거리까지 걸어가는 길에 쌩하고 지나가는 그 버스를 본 적이 있을 뿐이다. 5500-2번 버스는 그 기억에서 분명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왠지 <5500-2>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그 길이 생각난다. 인트로부터 1절 코러스까지의 파트에선 평화로운 언덕 내리막길과 꽃집들이 보이고, 급격히 분위기가 전환되며 강렬한 일렉기타와 베이스의 소리가 훅하고 치고 들어오는 2절에선 어두운 터널이 나타나며, 다시 인트로의 리프로 돌아오면 가로수길이,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브릿지와 마지막 인스트루멘탈 파트에선 북적거리는 분당의 시내 모습이 펼쳐진다.


이상하게도 이때를 생각하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뭔가 붕 뜬 것 같이 아득해지는데 머릿속으로는 또렷하게 이미지가 떠오른다. 옛날 기억 중 몇 개를 떠올리다 보면 같은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다. 대충 '노스탤지어'라는 표현이 가장 비슷할 것 같은데 그 표현으로 내 기분을 설명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5500-2>엔 내가 3년의 고등학교 시절 느낀 분당에서의 그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담겨있다. 그들이 '탈로컬'을 통해 가장 '로컬'적인 전략을 취했다고? 바이 바이 배드맨이 이 곡을 만들면서 그 점을 의식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5500-2>는 가장 '분당스러운' 브릿팝 음악이다.





'좁고 깊게' 듣는 레토르트 에디터 정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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