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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Nov 19. 2019

'그땐 그랬지'라니

선데이서울 <알 수도 있는 사람>

선데이서울 - 알 수도 있는 사람 (2014)


어릴 적 사용하던 벅스와 더불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멜론, 애플 뮤직, 유튜브 뮤직엔 내가 과거에 좋아했고, 지금 좋아하고 있으며, 앞으로 좋아할지도 모르는 트랙들이 쌓여있는데, 그 양은 내 남은 20대를 음악 듣기에 통째로 바쳐도 못 들을 만큼이다. 그 수많은 플레이리스트들 중 꽤 오래된 더미를 뒤지다 보면 '한참을 잊고 지냈으나, 한 때 한곡 재생으로 들을 만큼 좋아했던' 곡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오늘은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찾았다. 위아래 쌓인 다른 노래들과는 다르게 회색 글씨로 적혀있는 제목을 누르니 "이 앨범은 권리사의 요청으로 재생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문구가 뜬다. 별 수 없이 유튜브로 <알 수도 있는 사람>을 듣는다.


<알 수도 있는 사람>은 밴드 선데이서울이 2014년 발매한 첫 정규앨범 [SUNDAY SEOUL]의 수록곡이다. 내가 이 곡을 처음 접한 것이 언제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을 몇 분마다 들여다보던 그 당시의 내가 이 곡의 가사에 꽤 깊이 공감했었다는 점은 확실히 기억한다.


그 기억을 희미하게 떠올리며 재생을 눌렀다. 페이스북의 '알 수도 있는 사람'에 뜬 옛사랑에 대한 이야기. 귀엽다. 뭉클하다. 그땐 그랬지.


그땐 그랬지?


음악에 사용된 소재가 구식이 되면서 음악 자체가 현재성을 잃는 것은 조금 씁쓸하다. SNS 세대에게 이러한 현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찾아온다. 시대상을 담으며 참신함을 뽐냈던 음악들은 쓸쓸히 방랑하다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기 일쑤다. 그리고 그가 다시 재생목록으로 돌아왔을 땐 모든 것이 바뀌어있다.


에헴. 아직 살날이 지나온 날 보다 훨씬 많이 남은 내가 이런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 우스운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여러분도 모두 겪어봤다. 대서양을 건너 넘어온 서양의 페이스북 열풍이 우리의 전통 싸이월드를 침탈했던 그 시기에.


"너의 일촌 댓글 파도 타고~" - UV <쿨하지 못해 미안해> 中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네 홈피를 찾아가" - 곰PD <버릇> 中


싸이월드와 관련된 소재를 활용한 가사가 재치 있고 공감된다고 평가받았던 곡들은 그 각자의 독창적인 메세지를 잃고 그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로 귀결되었다.


이제 페이스북이 구식이 됐다. 그리고 <알 수도 있는 사람>은 우리가 별생각 없이 사용했던 페이스북의 차가운 기능에서 갑자기 떠오른 '너'가 나에게 주는 슬픔과 그리움을 센스 있게 그려내는 대신, '페이스북을 쓰던 시절엔 저랬었지'라는 서글픈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좋아했던 노래였는데 전만큼 감흥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다 여기까지 왔다.







'좁고 깊게' 듣는 레토르트 에디터 정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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