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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Nov 26. 2019

ADOY [VIVID]

ADOY의 신보를 듣고



ADOY - VIVID (2019)




1.

신스팝이라는 장르를 슬슬 세분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듣기 편한 신스팝이 힙스터의 영역을 넘어 대중적인 어필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점이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엔 ADOY가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장르에 편입될 수 있는 타 음악에 신디사이저를 끼워 넣기만 해도 신스팝이라는 명칭이 붙는 상황에서 ADOY를 신스팝의 대표라고 말하긴 다소 껄끄러운 측면이 있다.


ADOY가 세부적인 장르를 개척했다고 보긴 어렵겠지만, 극적으로 변화한 신스팝 장르의 유행을 빠르고도 정확하게 캐치해낸 것은 확실하다. 그 이전의 신스팝의 주요한 흐름은 Glen Check의 과거 작품과 WHOwho로 파악해볼 수 있다.


Glen Check의 과거 작품은 주로 신디사이저가 멜로디 라인의 중심을 이루며 그 아래층을 기타 스트로크로 채워주는 구성을 취한다.



glen check - addicted (2011)



WHOwho의 음악은 거친 기타 톤이 베이스가 되어 전반적으로 곡을 이끌어간다. 강렬한 신디사이저 멜로디가 구축되어 있지만 그것이 작품 전체를 채우기보단 필요할 때 앞으로 치고 나오고 빈 공간을 찌르기도 하며 공격적인 역할을 한다.



WHOwho - dance in the rain (2013)



두 음악은 강조되는 사운드가 다르기 때문에 전달되는 이미지 또한 다르지만, 중심이 되는 뚜렷한 리프가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강한 인상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ADOY의 신스팝이 가진 특징은 신디사이저가 중심이 되어 곡을 이끌어가지만 두드러지는 중심 리프가 없이 뿌연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기타 리프는 신디사이저가 조상한 분위기를 뚫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덕분에 귀에 거슬리는 요소 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다. 이 요소는 작품을 거듭할수록 ADOY만의 개성으로 자리 잡으면서, 구성에 있어서 점점 기타 톤이 신디사이저의 사운드를 유사하게 따라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첫 번째 EP의 <Grace>와 이번 앨범의 <Lemon>을 비교하며 들어보자.



ADOY - grace (2017)




앞선 두 아티스트와 ADOY 모두 신스팝으로 분류되지만 각기 다른 캐릭터를 갖고 있고, 이는 리스너의 취향에서 생각보다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따라서 이젠 신스팝을 락이라는 뿌리에서 뻗어 나온 하나의 줄기로 보기보단, 다육식물처럼 신스팝이라는 줄기를 다시 심어서 또 다른 줄기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신스팝 카테고리를 통해 ADOY 같이 듣기 편한 음악을 기대한 사람이 톡톡 쏘는 강렬한 음악을 만나게 된다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2.

(공중파 음악 방송에서 주로 다루는 음악을 대한민국의 '주류' 음악씬으로 설정한다면) 신스팝과 관련된 영역을 넘어 ADOY는 분명 현재 '비주류' 음악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ADOY가 소위 '듣기 편한' 음악의 유행을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그 유행의 한가운데에서 격이 다른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확실하진 않다. 아무튼 ADOY가 등장한 시점부터 그들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음악이 많이 등장했다는 건 사실이다. 원래 비슷한 음악을 하던 뮤지션이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하고,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하던 기존 아티스트가 ADOY처럼 변하기도 하고, 새롭게 등장한 신인들도 많다.


나는 근래 유행하는 '듣기 편한' 음악을 즐겨 듣는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음악엔 문제가 하나 있다. 생각보다 곡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종류의 음악들을 무작위로 담아둔 최근 플레이리스트의 몇 곡을 친구가 듣고는 노래가 다 비슷비슷하다는 평을 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ADOY의 신보 [VIVID]를 한 마디로 평하자면 '다소 아쉬운 앨범'이다.


앞선 앨범 [CATNIP]이나 [LOVE]의 경우에도 각 트랙 간 유기성이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약하게나마 앨범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의식이 느껴졌다.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기타 톤이 신디사이저 톤과 비슷한 결이지만 확실한 차이를 보이면서 메인이 되는 두 악기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었다. 이를 통해 ADOY는 '듣기 편한' 음악의 비슷비슷한 감성과는 다른 또렷한 인상을 각 곡에 남기면서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1번 트랙 <Lemon>부터 시작해 선공개됐던 싱글 <Pool>, <Someday> 등의 초반 곡은 앞서 언급한 '듣기 편한' 음악의 전형을 따른다. ADOY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음악이다. 다만 기타 톤과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뒤섞이면서 명확한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아 각 트랙의 개성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사이에 눈에 띄는 유기성도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발매한 트랙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동어반복적인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2년 간 발매됐던 두 장의 EP가 워낙 좋았던 탓에 ADOY의 정규 앨범이라는 기대감엔 조금 못 미치는 느낌이다. 혹은 ADOY 이후 나온 비슷한 느낌의 곡들이 꽤 준수하여 내 콧대가 높아진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처음 ADOY가 나타났을 때 느꼈던 충격보단 힘이 덜하다고 본다.





3.

만약 이번 앨범이 신스팝을 벗어나 새로운 개성 내지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ADOY의 시도라고 본다면 인상적인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오주환이 메인 보컬로서 대부분의 작품에 참여했으나, 베이시스트 정다영이 내는 목소리의 입지가 넓어진 것이 눈에 띈다. <Don't Stop> 등의 초반 작품에서 코러스 역할 정도의 약한 참여를 보였던 정다영은 <Wonder>에서 오주환과 곡 전체를 함께 이끌어갈 정도까지 발전했다가, 이번 앨범의 <Swim>, <Away>를 통해 한 곡을 홀로 온전히 이끌어갈 경쟁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래퍼 우원재가 함께한 <Porter (feat. 우원재>는 ADOY가 자주 시도했던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에 있어 죠지와의 <Blanc (feat. George)>보다 훨씬 의미 있다. 작사에 직접 우원재가 참여한 점과 그를 위한 자리를 음악의 주된 감정선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 아티스트가 한 아티스트의 작품에 숟가락만 얹거나, 이름값있는 아티스트를 위해 자신의 개성을 깎으면서 맞추어주려는 모양새 없이 서로가 서로의 작업물에 완벽하게 녹아든 모습이다.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최근의 신스팝이 다루지 않는 어두운 감정을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분명 차별화된 점이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스테레오 타입일 수 있지만 어쨌든 '청춘'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ADOY였기에 청춘 자체에 대한 시각과, 청춘이라는 주제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시선이 동시에 느껴지면서 자신들의 세계관을 넓히려는 시도를 볼 수 있었다.


한국어를 사용한 <Ever>는 ADOY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언어의 측면에서 ADOY를 따라온 다른 아티스트들이 보여준 한계는 한국어가 말랑한 신스팝에 가사로 사용될 때 어색한 기운이 돈다는 점이었다. 한국어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은 고등학교 때 배운 것이 전부라서 가타부타할 순 없겠지만 (된소리라던지 뭐 그런 거 아니겠나) ADOY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에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안전했을 것이라 본다. 명확한 주제 없이 어떤 이미지 내지는 인상만 제공하는 가사는 최근 신스팝의 큰 특징이다. 문제는 한국어로 이러한 요소를 살리고자 했을 때 어딘지 모르게 유치한 감이 있다는 것이다. <Ever>는 어두운 분위기의 곡으로 적당한 무게를 잡고, 반복되는 가사를 통해 균형을 잡아내며 적절하게 한국어를 사용해냈다. 이 시도가 이후 ADOY의 음악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게 될지 매우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독창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신디사이저 사운드다. 그 톤은 충분히 좋았던 이전 작품들보다도 한층 발전하여 '어나더 레벨'이라는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이상의 신디사이저 톤을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풍성함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다양한 악기의 소리를 곡의 공백에 활용한 것은 듣는 재미를 훨씬 높여주었다.


 


ADOY - Lemon (2019)




'좁고 깊게' 듣는 레토르트 에디터 정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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