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반 진땀 반

죄송합니다.

by 벚꽃 리듬

농담, 좋아하시는지. 나는 좋아한다. 정말로. 어느 정도인가 하면, 휴머니스트와 유머리스트가 싸우면 더 웃긴 쪽을 응원할 만큼. 그러다 보니 평소에도 위아래 없이, 앞뒤 없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농담을 던지고 있다. 심각한 분위기에서도 어떻게든 웃겨 보려 말장난을 치기 일쑤인데, 일종의 광대 기질이랄까. 잘 먹히면 다행이지만, 안 먹히면…… 흐음.


솔직히 안 웃기네, 썰렁하네 정도로만 마무리되어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농담의 평가 기준이라는 게 절.대.적.으로 주관적이다 보니, 말장난이 말실수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불쾌하다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할 수 있다. 변론할 기회라든가 정상 참작의 여지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는 일이고, 즉결 심판으로 끌려가 뒤통수에 총을 맞게 된대도 말려 줄 사람이 있을까 싶다. 농담이 아니라, 입을 잘못 놀린 죄는 사회생활에서 그만큼 무거운 대가를 치르는 것 같습니다. 무섭죠.


실제로 사회생활 중, 말실수로 매장당할 뻔한 경험이 두어 번 있었다. 여차저차 오해가 풀려 구사일생할 수 있었지만…… 하마터면 깊은 밤 인적조차 없는 야산으로 끌려가 산 채로 묻혀 버리는 처지가 됐을지도 모른다. 휴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농담 따먹기나 할 줄 아는 가여운 어른인데, 어쩌다 이 모양으로 늙어 버린 걸까. 어쩌면 친구들이 말하는 대로 아직 욕을 덜 먹어서인지도 모르고, 아니면 우리 어머니의 말씀대로 아직까지도 철이 덜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그 말인즉슨 욕을 좀 더 먹고 철이 좀 더 들면, 배가 불러서든 어깨가 무거워서든 개그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는 얘기인데, 글쎄…… 어렸을 적의 나는 대체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 애초에 어른이 되고 싶긴 했는지부터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만,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역시 재미없는 어른보다는 철없는 아이 쪽이 낫지 않나? 라고 철없는 얘기나 하고 있다. 이러니 욕을 먹는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블랙유머로 유명한 소설가 커트 보니것이 에세이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비극적 장면은 불발탄으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필요한 요소들이 갖춰지기만 하면 비극은 반드시 감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농담은 무에서 시작해 쥐덫을 만드는 것과 같다. 터져야 할 때에 터지게 하려면 정말 피 터지게 노력해야 한다.”


영어 원문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웃겨 보겠다고 실소라도 ‘터’지게끔 피 ‘터’지게 맞춘 라임(운)이 권이다. 웃기는 게 어렵다는 취지마저 웃기게 전달하고 싶어 안달난, 작가의 애절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소설가는 아니지만 농담을 사랑하는 한 개인으로서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아니, 동질감을 느낀다고나 할까. 생산자의 입장에서 농담이란―비용 대비 편익 분석으로 전문 용어까지 써서 표현하자면―가성비가 떨어져도 너무 떨어지는 아이템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믿기지 않을 수 있어도, 비즈니스로는 밑질 수밖에 없는 장사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안 그래도 서러운 입장인데, 근래에는 ‘감이 떨어진 거 같다’, ‘아재 감성이다’ 등등의 비난까지 받고 있다. 웃을 땐 언제고 말은 또 왜 저렇게들 하는 걸까. 웃음이란 게 적금과는 성격이 달라, 열 번을 웃겨 봤자 한 번만 울려도 적자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 웃겨도 올드하게 웃기면 안 된다니…….


심각한 일이다. 배도 점점 불러 오고 어깨도 무거워지는데, 유머리스트의 길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커트 보니것은 또한 반전(反戰)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전우애를 느낀다. 농담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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