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은 쉽고 편리하다. 평소라면 몰라도 글을 쓸 때는 확실히 그렇다. 도입으로도 좋고 중간중간 추임새로도 좋다. 특히 글을 끝맺으려는데 할 말이 없을 땐 더더욱. 게다가 겸손해 보이기도 하고 생각이 깊어 보이기도 하니 이미지도 쇄신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썼다가 '안이하다'고 욕을 먹었다.
버젓한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준 어엿한 현역 시인의 충고였기에 감히 웃기시네, 라는 말로 넘어갈 수도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반성했다. 그렇죠. 쉽게 반성하면 안 되죠.
화가 난 여자친구에게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음부턴 안 그럴게 라고 사정하면서도 뭘 잘못했는데? 라는 질문엔 말문이 막힌다. 겸손도, 깊은 생각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내가 썼던 반성이란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굳이 프로의 안목까지 갈 것도 없이, 누가 보더라도 모자란 남자친구 같은. 오래전 일이지만 새삼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반성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대신 난이도를 있는 힘껏 높여, 잘못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열심히 반성하고 있다.
……음?
그런데―처세라고 하기엔 뭣하지만―상대가 정말 진심으로 화가 난 것 같을 땐 무조건적인 반성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뭘 좀 모르겠더라도 일단 사과부터 하고, 무슨 말이 돌아오든 그저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게 정말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고, 어째서 사과해야 하는 거냐고 되묻기 시작한다면 이건 안이하네, 어쩌네 할 사안이 아니다. 분위기가 심각해진다.
다시 말해, 반성이 아니라 반항이 된다. 물론 반항에도 반성 못지않은 효용이 있긴 하다. 쉽고 편리하긴 매한가지로, 글을 쓸 땐 몰라도 평소라면 확실히 티가 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일단 욕먹을 이유가 없어 좋고, 그런데도 욕을 먹는다면 억울한 입장이니 정당하게 화를 낼 수 있어 좋다. 특히 상대방과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을 땐 더더욱. 만만해 보이지도 않고, 뭐 하나 양보할 것처럼 보이지도 않으니 배려받기도 수월해진다. 확실히 편하다.
다만 끝에 가서야 땅을 치며 후회할 수 있는데, 그땐 아무리 성심성의껏 잘못을 인정해 본들 소용이 없을 것이다. 뭘 잘못했는데? 잘못한 거 없다면서?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나요.
그러나 이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반항심이 한가득 필요한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자기반성만 하다 자기비하로 빠진 경우. 어깨가 축 처져서 땅만 보고 걷는 사람들을 보면 개인적으론 어쩌려고 저러나 싶다. 공연히 전봇대라도 부딪힐까 봐 걱정된다. 가슴을 내밀고, 턱을 치켜들고, 말빨을 세워 보기도 하라고 한껏 부추겨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삶의 균형도 맞고 결과적으로 반성도 더 잘(정확히) 하게 되지 않을까.사실, 남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바둑의 세계에는 복기(復棋)란 것이 필수적이어서, 대국(大局)의 승패와 상관없이 자신과 상대의 수를 하나하나 되돌아보며 복습하는 문화가 있다. 겸손하고 생각도 깊어 보인다. 다만 어떻게든 이겨 보겠다고 하는 반성이니 그 발상이 꽤나 반항적이랄까, 역시 전투적이다. 투지가 느껴진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나도 언젠가 한번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고 싶다는 의지가 솟구친다. 그러나 복습은커녕 진도를 따라가기도 벅찬 현실이라 어느덧 찔끔찔끔 고개를 숙이고 만다.
글렀다. 다음 생에선 이러지 말아야지.
시인 김영승은 선풍기를 발로 껐다가 선풍기에게 미안하다며 반성하는 시를 썼다. 시인 안도현은 연탄재를 발로 찼다가 반성하는 시로 TV 광고도 찍었다. 프로 시인쯤 되니 역시 반성의 클래스가 다르다. 안이한 구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