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는 것도 실력입니다.

호심술의 다섯 레벨

by 벚꽃 리듬

어쩌다 보니 관계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변명이지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 적도 많았다(죄송합니다). 자연스레 나름의 관점이 하나 생겼는데, 상처받는 유형을 보면 그 사람의 심리 호신술, 줄여서 ‘호심술(護心術)’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심술의 레벨은 대충 최하수-하수-중수-고수-최고수 등 다섯 단계로 구분된다. 그런데 어디 한군데 소속된다고 해서 붙박이로 고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황 따라 하수가 되기도 하고, 상대 따라 고수가 되기도 한다. 잘 나가다가도 삐끗하고, 절뚝거리다가도 뛰어다니고. 여하튼.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실 거라 치고) 하나씩 설명해 보자면, 우선 최하수는 '때리지도 않았는데 맞는 사람'이다. 다른 건 몰라도 상처받는 것 하나만큼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사람. 의도 없는 한마디, 지나가는 한마디, 뱉은 사람은 켤코 기억 못 할 한마디에 구태여 자신을 들이대 상처받는다.


상대는 배려한다고 했는데 받는 쪽에서 민감하게 구는 경우도 있다. 자격지심, 열등감 등이 크게 작용하고, 이미 받은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특히 더 아파한다. 아무리 고운 붕대라도 아물지 않은 상처에 감으면 쓰라린 것과 같다.


한편 본의 아니게 상처 준 입장에선 이럴 때 오해라는 둥,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둥 이래저래 변명하고 싶은 욕구를 잘 참아 내야 한다. 억울한 마음은 알겠지만, 친절하게 설명해 봤자 오히려 '나는 얘기를 잘했는데 네가 병X같이 알아들은 거야.'라는 뉘앙스만 전달하게 되기 십상이다. 상대를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예민하기만 한 사람으로 취급하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면 억울한 누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본의 아니게'라고는 하지만 자신에게도 과실은 없었는지 돌아본들 손해는 아닐 것이다. 살결이 흐물흐물 보드라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질기고 거칠거칠한 사람도 있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므로, 아무 생각 없이 부대끼며 살다 보면 누군가는 피를 볼 수밖에 없겠죠.





두 번째, 하수는 '때리면 맞는 사람'이다. 기분 나쁘게 말하면 기분 나쁘게 듣는, 가장 일반적인 단계. 상처를 주는 이도 받는 이도 평생 여러 단계를 오가며 살아가겠지만, 아마 일생의 반 이상은 이 세계를 베이스캠프로 쓰게 되지 않을까. 전략이랄 것도, 요령이랄 것도 없이. 적어도 이 세계에 머무는 동안은 자극과 반응이 명확해진다. 내가 왜 속상하지? 저 자식이 속상한 말을 했으니까! 요컨대 자기 감정의 통제권을 타인에게 건네준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혹시라도 남을 놀리거나 괴롭히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걸리면 아주 훌륭한 과녁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도록 하자.





세 번째, 중수는 '때리면 막는 사람'이다. 기분이 나빠지면, 혹은 나빠질 거 같으면 일단은 잘 참을 수 있다. 이 단계에선 보통 인내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으며 '참을 인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라거나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라는 식의 명언 한두 개를 열심히 곱씹고 다닌다.


하수나 최하수보다 일견 사정이 나아 보이나 여기에도 고충은 있게 마련이다. 참아서 덜 아프면 다행인데, 결국 아프긴 아프다는 것이 문제다. 괜히 고통을 누르고 쌓으며 유예하다가 나중에 폭발하거나 한 방에 훅 가게 될지도 모른다. 터지면 크게 터질 수도 있는 포지션이다. 개인적으론 하수 및 최하수보다 더 걱정하게 되는 유형.





네 번째, 고수는 '때리면 피하는 사람'이다. 실질적으로 여기서부터를 '호심술'의 영역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수나 중수도 이따금 고수의 플레이를 따라할 수는 있겠지만, 막상 진퉁 고수의 한결같은 플레이를 목격하면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눈여겨보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눈에 띄게 된다고 할까. 아니, 이런 상황에서 웃어넘긴다고? 저런 사람이랑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일할 수 있다고?


흔히 말하는 '정신 승리'의 대가, '긍정적 사고'의 달인으로 볼 수 있다. 대상과 조건을 한끗 다르게 바라보는 '리프레이밍'에 능숙하다. 존경스러운 한편 너무 체제 순응적인 거 아니냐 비판하고 싶어질 때도 있긴 합니다만.


단점이라면, 잘 피하다가도 방심해서 한 대 맞을 수 있다는 것. 여럿이서 때리거나 계속해서 때리면 결국 언젠가는 지쳐서 한 대 맞게 된다는 것이다. 안 맞은 지 오래되다 보니 맷집도 약해져 충격을 크게 받을 수 있다.





다섯 번째, 최고수는 아마 의견이 분분할 텐데, 나의 경우 '맞을 짓을 안 하는 사람'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 봐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세상에 '맞을 짓'이란 객관적으로 존재하기가 어렵다. 누군가 '맞을 짓'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마침 그에게 사람을 때려도 좋은 명분, 자기 합리화가 필요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 '저 자식, 맞아도 싸지.' 라고 확신하게 될까.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선'이 있는 법이어서 누군가 이 선을 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정당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일종의 정당방위로서 양심의 가책 없는 보복 심리가 드는 것이다. 하여 뒤에서 욕도 하고 때로는 무리 지어 여론을 몰아가기도 한다. 당해 보면 알겠지만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최고수인 '맞을 짓을 안 하는 사람'은 이 '선'이라는 걸 절대로 넘지 않는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여러 사람 비위를 여러 각도로 맞추는데 박쥐 같기는커녕 자기 줏대가 잘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황에 따라 할 말은 또 하는데 그렇다고 원망은 사지 않는다. 결과는 전략적이고 계산적인데, 과정에서 느껴지는 지배적인 인상은 온통 평화적이다. 이러니 맞을 일이 없다. 설사 누군가 억하심정으로 얄미워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건드려 볼 건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분도 없이 이런 사람을 욕한다면, 아마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겠죠. 어딜 가든 무리 짓기와 뒷 담화를 사랑하는 취향들이 꼭 한 명씩은 있게 마련인데, 이런 분들은 호심술의 최고수를 만나면 멘탈이 탈탈 털릴지도 모르니 아무쪼록 조심하시길.




나는 대체로, 타인을 원망하는 마음이 우리의 행복에 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오고 있다. 하여 인간관계, 사회생활 등에서 사람 때문에 자주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이가 있다면, 누군가를 원망하는 대신 한 번쯤 자신의 호심술 레벨을 돌아보라고 권하는 편이다(그것이 또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경우에 따라, 미워하는 마음으로 투쟁적인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자기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이런 분들은 맞기 전에 먼저 때린다, 한 대 맞으면 두 대 , 세대로 갚아 준다, 때린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맞은 사람은 발 뻗고 못 잔다……는 등의 관점을 가지고 파이팅 넘치게 세상을 헤쳐 나간다. 어디 가서 욕 먹고, 혼자 속 끓이는 유형들과는 태생부터 다르다고 할까. 호심술 따위 듣고 있을 시간에, 가슴에 살심 한 번 더 품는 것이 더 유용하고 편안할 터다.


나는 생겨먹길 원체 뒷심이 약한 편이라 투쟁심과는 인연이 없다. 대신 미워하는 마음 없이, 의사가 환자의 배를 가르듯 정확하고도 (당장은 피를 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건강해질) 안전한 폭력을 구사하는 '나'를 이따금 상상한다. 호심술의 반대편 영역에는 어쩌면 그런 회복적 폭력의 최고수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대체로 평화로운 척하며, 게으름과 짜증을 양분 삼아 '다 널 위한 거야.'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 결과는 불순물이 많은 잔소리와 쓴소리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래저래 앙금이 남을 수밖에. 상처를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모두 고단한 일이군요.





영화 <록키 발보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얼마나 세게 치느냐가 중요한 게 아냐. 얼마나 심하게 맞고도 버틸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가 중요한 거야(But it ain't about how hard you hit. It's about how hard you can get hit. and keep moving forward)."


멋있어서 자주 인용하고 다니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인생이란 게 꼭 버텨야만 하는 건가 싶다. 처맞을 걸 뻔히 알면서도 아등바등 일어나느니, 그냥 한 대 맞고 大자로 뻗어 있는 것도 세상 편히 사는 요령이 아닐까. 1, 2, 3, 4, 5, 6, 7, 8, 9…… 그래도 굳이 일어나야만 한다면 심판의 카운트가 끝나기 직전, 이제 막 텐(10)이 뱉어지려는 그 순간의 순간까지 버티며 느긋하게 쉬어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혹여 비매너라고 욕을 먹으려나. 실제로 많은 복서들이 그런 요령을 부리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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