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짝사랑

이 가능할까

by 벚꽃 리듬

<리미트리스>라는 영화가 있다. 3류 무명 작가로 빌빌거리던 주인공이 우연히 정체불명의 약을 얻어먹고 천재적인 두뇌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엄청난 소설 한 편을 가뿐하게 탈고한 그가 이내 시선을 돌리는 곳은 월스트리트. MIT 수학 천재를 뛰어넘는 수리력에 셜록 홈즈마저 울고 갈 만한 관찰력과 추리력, 잠깐 집중하는 것만으로 외국어를 마스터할 만큼 가공할 지능을 갖춘 그에게 브레이크 따위 있을 리 없다. 돈 버는 게 제일 쉬웠어요! 라고 광고하는 듯 그는 세상의 돈을 전부 쓸어담겠다는 기세를 보여 준다. 세계 제일의 두뇌에서 뿜어지는 세계 제일의 언변과 자신감은 강렬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그 사람들 중에는 집 주인의 아내와 자선 사업가로 유명한 여성 셀럽도 포함되어 있다). 몇 번이고 죽을 위기를 맞닥뜨리면서도 예의 천재적인 두뇌와 주인공 버프로 살아남는 그. 약 부작용도 있고 사랑하는 여자와의 이별도 겪지만(몸은 여러 여자와 섞어도 마음만은 여자와……) 마무리도 꽤 깔끔하게 매듭짓는 편이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희망 찬 판타지가 땡기는 분들이 계시다면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여하튼 이 영화엔 의미심장한 질문이 하나 숨겨져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부유해진다면, 과연 당신은 어떤 일을 할 것이냐는 질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때(한 백억쯤 하늘에서 떨어졌다 치고)도 계속 할 수 있겠는지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작가였던 이 영화 속 주인공의 경우 천재가 된 이후 쓴 소설이라고는 단 한 편뿐이다. 그 뒤로는 주식 투자다 인수합병이다 해서 소설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문예창작이란, 그에게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았음이 자연스레 증명된 셈이다.


이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려 두 가지나 되는데 첫째는, 소설이(나아가 문학이) 돈벌이가 되려면 창작자가 세계 제일의 천재 정도는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런 천재마저도 큰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소설 따위는 손절하고 월스트리트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개가 좀 이상해지는 것 같지만 계속해 보자.


새삼스럽지만 스티븐 킹이라든가 조앤 롤링 같은 소설가들의 성과는, 인간의 두뇌를 100% 활용하는 천재라고 해도 결코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천재가 아니라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소설 계약금으로 노름빚을 갚는다든가, 찰스 부코스키처럼 출판사에서 매달 돈을 받는 월급쟁이 소설가로 사는 것도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라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분이 계시다면, 한번 각자의 월급을 걸고 내기를 해봐도 좋을 듯싶은데.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단순히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다면(불과해도 되지만), 이런 자문(自問)을 한 번쯤 해봄직하다는 얘기다. 첫째,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수행자의 역량이 중간만 되어도 어느 정도 생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일인가'. 만약 아니라면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수익성 있게 탈바꿈시킬 만한 특별한 재능이 내게 있는가'.



소설가로 이름을 날리겠다고 한창 까불고 다녔던 시절, 우연히 경제학 서적 주변을 기웃거리다 주식 투자의 세계까지 흘러 들어간 적이 있다. 소설은 내팽개치고 한 2년쯤 주식에 빠져 살았다. 당구에 흥미를 붙여 보질 않아서 '밤에 자려고 누우니 천장이 당구대로 보였다'는 경지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채근담>에 적혀 있는 지혜로운 글귀들이 온통 주식 투자를 위한 조언으로 보일 때는 스스로에게 놀랄 지경이었다. 도박 중독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체감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한때 '중독'이라고 부를 만큼 헤어나오지 못했던 주식 투자도, 끝내는 스스로(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륵) 접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게도 성과가 없어서. 나란 인간이 주식 투자에 빠져들었던 건, 그 자체에 어떤 순수한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장밋빛 환상 때문이었다. 요컨대 의도부터가 불순한 짝사랑이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비록 실패했지만, 살다 보면 드물게 짝사랑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이 주는 선물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 오랫동안의 투자가 딱히 성과를 내주지 않더라도 매몰비용이니 기회비용이니 하는 것들을 아까워하지 않는 강인하고 쿨한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일터에서 하루종일 시달린 뒤 몸과 마음이 고단해져 돌아간 집에서도―스마트폰도 리모컨도 맥주 캔도 어딘가로 미뤄 둔 채―한 줌의 에너지를 쥐어짜 끝끝내 편이고 소설을 써내던 사람. 복권의 당첨 유무와 상관없이, 그것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동안의 설렘만으로도 모든 것을 보상받았다 여길 수 있는 자질이 그에겐 있었다. 생계니 재능이니를 떠나, 거기엔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납득시킬 만한 낭만적인 성실함이 언제나 깃들어 있었다. 말해 놓고 보니, 나와는 딱히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기본적인 삶의 태도라는 것이 어딜 가는 게 아니다 보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만나 보면서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에게 질척거려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취미도, 업무도 마찬가지. 바로바로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지 않는 일은 금방 포기하고 관두면서 무심한 척 지나쳐 왔다. 손절이 빠르다는 걸 장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낭만이나 희망을 입에 담긴 어려운 인생이었다는 것도 순순히 인정해 오고 있다.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기는 뭣하지만, 천재도 아니고 천재가 될 약도 없는 주제에 근래 들어 자꾸만 돈도 안 되는 일이 해보고 싶어진다. 심지어 그 이유란 큰돈을 벌고 싶어서다.


큰일났다.





2년간 주식 시장에서 허우적거린 결과는 대충 본전 치기. 아마 도스토예프키와 같은 글재주가 있었다면 출판사에 빚을 져서라도 왕창 투자했을 테고, 그 결과로 아마 요란한 깡통을 차게 되었을 터다. 소설에 재능이 없었던 게 지나고 보니 다행스런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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