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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9

첫날의 밤

by 장재형

여행은 첫날이 가장 무리하게 되는 것 같다. 아직 체력과 설렘이 가득한 상태에서 연애를 이제 막 시작한 연인처럼 처음 접하는 모든 광경들을 마냥 좋아하며 오늘 하루의 데이트를 최대한 꽉 채워서 달리게 된다.

여행책이 내준 숙제를 다 찾아 찍어야 할 거 같은 마음이다. 정작 가보면 겨우 이거였나 실망하는 찰나가 있어도 아직 안 가본 곳이 워낙 많아서 즐거울 수밖에 없다. 둘째 날부터 바로 권태가 시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 나는 그렇지 않았다.


리스본의 야경을 보고 숙소에 들어오니 밤 10시가 넘어갔다. 아침 7시에 걷기 시작한 발이 15시간이 넘어서야 신발에서 나왔다. 발이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고 느낀 건 즐거움의 카페인이 피로를 느끼는 신경을 막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밤에 글을 쓰는 시간을 꼭 가졌다. 하루 중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사진이 아닌 글로 새기는 작업이다. 그렇다고 그냥 평범한 글은 아니다. 아내에게 쓰는 편지였다. 오늘 하루 함께 있고 싶지만 함께 오지 못한, 나를 홀로 보내준(!) 아내에게 나의 하루를 주고 싶었다.

(며칠간 톡으로 편지를 보냈다. 아내는 현재의 여행에 더 집중하라며 더 이상 안 보내줘도 된다고 말해줬다. 여행 마지막까지 매일 편지를 썼고 다녀와서 A4 16쪽 되는 편지를 한 번에 건넸다. 아직 다 안 본 거 같다.)

글을 쓰면서 음악을 틀어놨는데 뜻밖의 곡이 흘러나왔다. 엘튼 존의 <로켓맨>. 가족을 지구에 두고 홀로 로켓을 타고 우주에 가는 남자의 독백이 담긴 명곡. 나도 그 곡처럼 홀로 집에서 먼 곳을 탐험하고 있었다.


많이 걸어서였을까, 낮에 많이 봐서였을까, 리스본의 야경은 감흥이 크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올 시간이 되니 고독 혹은 고립의 감정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 마음을 글에 담아도 녀석이 계속 손을 들고 있어 잠이 쉽게 들지 않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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