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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0

벨렝의 발견

by 장재형

아침에 눈을 떠보니 리스본의 빗방울이 인사한다. 툭, 투두툭, 툭. 내 여행 일정에 맞춰 하늘의 비와 구름과 바람과 햇볕이 바뀌는 건 아니다. 리스본의 좋은 날씨만 보고 간 사람은 비 오는 리스본을 알 수 없다.

버스를 타고 벨렝으로 향했다. 벨렝은 리스본 중심에서 느린 시내버스로 30분 정도 서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타구스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 오래된 요새와 거대한 수도원이 있는 동네다.


버스는 느리게 왔고 느리게 달렸다. 사람들은 쉽게 무단횡단했고 버스는 자연스럽게 멈췄다. (그걸 보고 이후에 나도 자연스럽게 무단횡단을 했다) 가는 길에 가벼운 빗방울과 쌀쌀한 바람이 번갈아 창문에 툭툭 인사하고 무심하게 가버렸다. 거대한 강물에 점점 짠내가 올라오는 거 보니 벨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벨렝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에그타르트를 먹는 일이었다. 제로니모 수도원의 수녀들이 옷을 다릴 때 계란 흰자를 쓰면서 남는 노른자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만든 간식이 에그타르트라고 한다. 두 왕자가 왕위를 두고 싸우다가 동생이 졌던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동생을 지지했던 수도원들은 해체를 당했고 제로니모 수도원도 그중 하나였다. 수녀들이 수도원에서 나갈 때 에그타르트의 레시피를 수도원 옆에 있던 한 가게 주인에게 팔았고 그가 에그타르트를 열심히 팔기 시작하면서 대중화가 되었다. (...라고 들었다)


그러니 나는 벨렝에 와서 에그타르트의 원조를 먹는 일을 최우선으로 두었다.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자리에 앉아 에그타르트 두 개와 에스프레소 한 잔을 자연스럽게 주문했다. (이렇게 주문하는 걸 ‘세계테마기행’에서 봤다) 에그타르트가 화사하게 입안에서 달게 피어나면 에스프레소의 쓴 맛이 진정시켜 주고, 다시 에그타르트를 한 입 먹고. 또 먹고. 더 먹고 싶었지만 참아야만 했다. 그래야 다음 에그타르트가 또 기대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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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타르트의 단맛 덕분인가, 카페에서 나와보니 벨렝에 햇살이 찾아왔다. 첫 목적지는 제로니모 수도원. 멀리서 봐도 크기가 압도적이다. 포르투갈 와서 본 건물 중 가장 거대했다. 여행 오면 아기자기한 것도 좋지만 이런 큰 랜드마크의 맛도 즐기지 않고 갈 수는 없다.


다만,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정말 길었다. 그 줄이 너무 길어서 멀리서 봤을 때 사람들이 아니라 디자인 조형물인 줄 알았다. 가까이 가보니 모두 이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여행자들이었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포기했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에 다른 걸 하나라도 더 보자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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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을 등뒤로 하고 바다를 향해 걸어가니 ‘발견 기념비 Monument of Discoveries’가 금방이라도 비상할 듯 서있었다. 대항해시대를 그리워하며 세운 기념비로 당시 영웅들이 새겨진 거대한 탑이자 전망대다. 가까이 가서 보니 크기가 워낙 육중한데 대서양의 바다와 바람과 햇빛이 비석에 새겨진 영웅들의 얼굴에 닿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우러러보게 만든다.


한 사람 한 사람 조각이 금방이라도 살아서 움직여 바다로 향할 것만 같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내 마음에도 바다를 향한 웅장함이 꿈틀거리는 시간이었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서 대서양을 향한 비전을 꿈꾸고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간 사람들. 필부에 불과한 내게 그들의 꿈을 가늠하는 일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다만, 욕심은 났다. 대항해시대를 향한 꿈.


‘발견 기념비’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기념비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전망을 보러 올라가면 좁은 직사각형 모양의 공간에서 대서양과 마주한다. 마침 나는 52미터 위에 혼자 있었다. 바닷바람이 세게 불었고 협소한 콘크리트 옥상에 홀로 있으니 문득 두려움이 투두툭 심장에서 다리까지 번졌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혹은 극복한 척하고) 바다로 나간 사람들. 여기서 출발해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넘어가고, 인도까지 가고, 동티모르까지 가고, 마카오까지 가고, 브라질까지 가고, 그렇게 간 곳에서 향료와 금과 코끼리와 코뿔소와 노예를 데리고 온 그들. 그리고 1960년에 과거의 화려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 영웅의 시대를 회복하자는 뜻으로 만든 당시 포르투갈의 독재정권까지. 여러 가지를 떠올리고 상상하게 만든 ‘기념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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