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1

벨렝탑

by 장재형

발견기념비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가면 ‘벨렝탑’이 있다. 예전에 요새였던 이곳은 대서양에서 들어오는 적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었다. 발견기념비에서 고작 5분 더 걸어왔을 뿐인데 바람에 해변의 모래가 녹아 있었다. 입장하는 줄이 있어 좀 기다려야 했는데 들어갈 때쯤엔 옷에 묻은 모래를 탁탁 털어낼 정도였다. 그만큼 대서양의 바람은 쉽게 요새에 들어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앞에 서있던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인 외국인 커플이 기억에 남는다. 옷차림과 영어 말투로 봤을 때 미국인 커플로 보였다. 어느 다른 여행객이 그 커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고 남자는 상당히 쿨하게 찍어주겠다고 말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찍었다. 그 모습을 보던 여자가 짧게 한 마디를 그에게 던졌다. “사진에 탑이 다 들어가게 했지?” 그는 순간적으로 ‘아, 맞다, 내가 또 사람만 찍었네, 배경 잘리게 찍었는데, 나한테 또 뭐라고 하겠네, 여기까지 와서 잔소리를 또 들을 수는 없지, 어서 다시 찍을게’라고 눈으로 말하고 곧바로 다시 돌아가 다시 사진을 찍어주고 다시 밝게 돌아왔다. 그녀의 한숨, 그의 멋쩍음, 나의 웃참.


KakaoTalk_20241209_164741535.jpg


벨렝탑에 들어가니 포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 바다를 통과하는 적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과연 여기서 몇 번의 전투가 있었을까. 중요한 요새이지만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크기가 크지 않았다. 어쩌면 실제 전투의 승리 보다 탑 존재만으로 적에게 위협을 준 건 아닐지 하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한국 가족을 보았다. 아빠는 심드렁한 표정의 두 아이와 선글라스를 쓰고 밝은 표정으로 웃는 아내를 열심히 찍고 있었다. 약간 동병상련 같은 마음이 들어 먼저 다가가 찍어드리겠다고 말을 걸었다. 사진 속에서 아빠가 제일 반가운 웃음을 보였다.


그는 몇 년 전에 나처럼 혼자 유럽 여행을 했고 이제는 가족을 다 데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온 가장의 뿌듯함이 느껴졌다. 중학생과 초등학생이라는 딸과 아들은 이게 뭐 재밌나 싶은 표정이지만, 아빠는 계속 밝게 설명하고 있었다. 가족을 지키는 요새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대포를 쏘지 않아도 꿋꿋하게 서있다. 그렇게 바다에서 추억을 지킨다.


벨렝탑에서 나와 천천히 걸어가 인근에 있던 리스본 현대 미술관으로 걸어갔다. 오락가락하던 비는 더 이상 오지 않고 하늘의 푸른빛이 눈앞까지 내렸다. 미술관 앞에 도착했을 때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을 때 더 야외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아마 여행 중에 비가 또 올 것이다. 그때 포르투갈의 미술관을 가보자는 마음이었다.


미술관에서 돌아설 때 멀리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지도를 보니 인근에 학교가 있었다. 아마도 점심시간 같았다. 떠드는 소리가 덩어리가 되어 멀리까지 울렸다. 옛 영광만 보고 갈 줄 알았는데 이 땅의 미래도 힘차게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KakaoTalk_20241209_164741535_08.jpg


KakaoTalk_20241209_164741535_04.jpg


KakaoTalk_20241209_164741535_02.jpg


KakaoTalk_20241209_164741535_05.jpg


KakaoTalk_20241209_164741535_03.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