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2

아줄레주 박물관

by 장재형

리스본 여행을 준비하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단어가 ‘아줄레주’였다. 제조 방법을 읽기도 하고 듣기도 했지만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쉽게 말하자면 타일에 그림 그려서 구운 거라고 보면 된다.


벨렝지구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옛 공장을 편집샵으로 꾸민 골목을 들렀다가 로마 수도교를 보러 갔다. 다른 지역의 것보다는 작다고 들었지만 처음 보는 내겐 꽤 인상적이었다. 리스본의 일상적인 차도가 아래로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걸 보니 역사적인 유물이라기보다는 그냥 도시 조형물 정도로 보이긴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도교’를 처음으로 본 순간이었다.


KakaoTalk_20241209_230938632.jpg


다시 버스를 타고 ‘아줄레주 박물관’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수도원이었던 곳에 아줄레주 유물들을 모아 박물관으로 꾸민 곳이다. 입장하는 문부터 박문관이라기보다는 정원이 예쁜 수도원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산뜻해졌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국가를 모두 쫓아냈을 때 당시 유럽인들은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미적 양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종교적, 민족적, 국가적 사명으로 몇 백 년간 전쟁을 했지만 결국 아름다움은 갖고 싶고 닮아가고 싶은 게 사람의 본성이었다. 포르투갈 여왕도 이슬람의 아줄레주를 접하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궁전과 성당에 이 양식을 쓰라고 지시를 내렸다. 포르투갈의 아줄레주가 유명해진 건 단지 중앙집권의 건물에만 쓰이는데 그치지 않고 상업 시설과 일반 주택까지 아줄레주를 썼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의 증거는 대중성이다.


시대별 아줄레주를 천천히 보고 있다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혼자 온 40대 한국 남자가 웃으며 보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몇 번이나 웃겼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KakaoTalk_20241209_230938632_03.jpg


아마도 이 타일 작업을 했던 사람들은 예술가보다는 월급 받고 일했던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수많은 타일 주문을 받아 복붙 해야 하는데 사람의 손으로 하다 보니 다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문된 대로 선 모양과 색깔은 맞춰서 전체적으로 보면 큰 패턴은 맞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 다르다. 서로 뭐가 더 낫다, 이게 더 맞다, 하며 떠들었을 당시 작업현장이 상상된다.


타일에 무늬가 아니라 사람이나 천사, 동물 그림이 들어가면 좀 더 난이도가 올라간다. 그런데 많이 그려야 하니 다소 대충 그리고 얼른 납품하려는 듯한 그림들이 발견된다. 통통한 천사는 눈이 졸린 상태에서 별로 여기 있고 싶지 않은 표정이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심슨 가족에 나올 법한 표정으로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다.


점점 시대가 현대로 가까울수록 기술이 올라가 전문 예술가의 손길이 닿은 것 같은 아줄레주가 보인다. 그러나 내 마음은 여전히 인간미 넘치는 타일 한 장 한 장에 더 가까이 있다. 포르투갈 민족성을 말할 때 파두를 꼽으며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처럼 말하던데, 사실 알고 보면 하루하루 재밌고 익살스럽게 사는 사람들 아닌가 싶다.


한 시간 넘게 보고 나와 작은 정원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셨다. 오늘 점심에도 아이들 떠드는 소리를 메아리처럼 들었는데 지금도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곧 노을이 도착할 시간. 집으로 돌아갈 시간. 아이들의 떠드는 활력은 여기가 역사에서만 머무는 도시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푸른빛의 아줄레주는 이후에도 포르투갈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고, 내 눈에 친근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언젠가 내 매장을 오픈한다면 꼭 아줄레주를 넣게 될 것이다.


KakaoTalk_20241209_230938632_01.jpg


KakaoTalk_20241209_230938632_06.jpg


KakaoTalk_20241209_230938632_07.jpg


KakaoTalk_20241209_230938632_02.jpg


KakaoTalk_20241209_230938632_04.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