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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3

너와 나와 저녁 식사

by 장재형

홀로 여행을 갔을 때 가장 소홀해지는 것이 음식이다. 딱히 혼자 먹는데 뭐 그렇게 좋은 곳에 가나 싶기도 하고, 좋은 식당에 혼자 먹을 때 큰 감흥이 없기도 하다. 이전의 나와 다른 여행을 해보기로 했던 나는 이번 여행에서 최소 몇 번은 맛집에서 식사하기로 결심했었다. 그래서 숙소에서 잠시 쉬던 나는 괜찮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알파마 골목을 따라 미리 구글맵에 저장해 놓은 식당을 찾아갔다. ‘Lisbon Tu e Eu’ - 번역해 보니 ‘너와 나’라는 뜻이었다. 골목의 갈림길에 있는 식당 주변엔 모두 일반 주택가였다. 거기서 홀로 빛을 밝히고 있었다. 식당 앞에 대여섯 개 놓여있는 테이블에는 가족과 연인과 여행자가 있었다.


작은 식당이지만 줄을 서는 걸 보고 마음이 더 설렜다. 그 정도로 맛집이구나. 도착했을 때 하늘에 아직 푸른빛이 남아 있었는데 금방 검은빛이 다 삼켰다. 가로등빛은 더 밝아졌고 와인과 함께 떠드는 소리는 건물의 벽을 타고 울려 그 공간을 아름답게 풍요롭게 채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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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행복해, 그래서 불안해. 폭풍 전 바다는 늘 고요하니까. 내가 들은 게 맞을까. 이 길의 끝에서 들리는 걸까. 어디서 시작된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혁오의 ‘톰보이’. 내가 들은 게 맞았다. 나와 같은 이곳의 한국 출신의 이방인이 자기 방에서 틀은 노래일 것이다. 여기서 이 시간에 이 노래를 들을 줄이야. 지금 이 장면을 동영상에 담으려다가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앞으로 이 장면은 내 말로만 내 글로만 이 세상에 남으리라.


내 차례가 되었다. 작은 식당 안으로 안내됐고, 나는 운 좋게도 2층 창가 자리에 앉았다. 식당에 딱 한 자리 있는 그곳에 앉은 것이다. 창밖을 보니 딱 로미오가 올려보고 자기 이름에 대해 수다 떨던, 그런 자리다.


수다쟁이 같은 직원이 왔고 나는 그녀가 추천하는 메뉴 2개를 시켰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리고 코카콜라. 여행에서 유난히 콜라를 잘 마신다. 세계 어느 곳이든 공통적인 그 맛이 내겐 안정감을 주면서 여행을 더 신나게 할 원료가 되어준다.


하나는 생선 튀김. 대구 튀김으로 추정된다. 다른 하나는 대구와 계란과 양파와 또 뭔가가 섞여서 볶은 듯한 메인 메뉴. 첫맛은 좀 특이하다고 생각됐는데 느끼하고 짠맛이 반복되니 다 먹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여행지에서는 끝을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금방 다 먹고 나오니 직원이 그거밖에 안 먹냐고 더 먹을 생각 없는지 묻는다. 디저트도 있고 다른 메뉴도 있다고 얘기했지만 혼자 먹는 식사로는 충분 이상으로 먹었다. 그녀는 거스름돈을 주며 굵은 마카팬을 주었다. 벽에 낙서하고 가라는 뜻이었다. 한국의 분식집처럼 모든 벽에 낙서가 되어 있는데 알고 보니 이 식당의 독특한 기념이었다. 좀 둘러봤는데 주로 라틴어 계열의 언어로만 낙서가 되어 있었다. 구석구석 다 보지는 못했지만 한글은 못 찾았다. 방탄, 동방신기, HOT 같은 이름은 안 보였다.


아내의 이름과 두 아들의 이름을 썼다. 그리고 사랑해.


혼자 여행하는 외로움은 리스본에서 두 번째 아침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열심히 돌아다니며 지금 여기에 충실하려고 했지만 고독은 내 심장과 배 사이 어디선가 고요하게 묵직해지는 게 느껴졌다.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돌에 쓰고 나니 마음이 탁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이곳에 다시 올 날이 있을까 싶었는데 이 돌의 주문이 나를, 우리를 부를 수도 있겠다 싶어졌다.


마카펜을 빌려줬던 그녀는 식당을 나가는 내게 See you tomorrow 라고 인사했다. 어디를 봐도 아시아에서 온 이방인이라고 보였지만, 그녀는 내일 보자고 인사한 것이다.


See you tomorrow. 당신은 지금 리스본에 살고 있다는 말 같기도 하고, 다시 이곳에 올 때까지 내일은 계속될 것이라는 시적인 말 같기도 했다. 나도 고맙다는 뜻으로 인사하고 작별했다. See you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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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편은 여기 있어요

https://brunch.co.kr/@realmd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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